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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oming Nov 12. 2020

그 후, 상사는 막내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조아야~ 커피 다섯 잔만!"


 작가들이 모여 앉아있는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상사님(*직함을 밝히지 않기 위해 어색한 방식으로 호명하겠다)이 말했다. 엘사가 렛잇고라도 열창하고 지나간 듯 순식간에 우리 모두가 얼어붙었다. 방송국 내에서 가장 막내 작가이자 당사자인 조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이 동그래진 채 일시정지 모드가 되어있었다. 갑자기 커피 심부름을 시킨다고? 21세기에? 지금 한참 일하고 있는 작가한테?


  그 자리를 거쳤던 어느 누구도 그런 요청을 한 적은 없었기에 조아를 중심으로 앉아있던 작가들 사이에서 어이없다는 수군거림이 새어 나왔다.


"뭐야 자기가 타 먹든가"

"작가를 진짜 뭘로 생각하는 거야?"

"볼수록 가관이다 가관이야"


 그렇지 않아도 제작비 절감을 이유로 틈만 나면 휴방을 시키고(*작가들은 방송 회차별로 급여를 받기 때문에 방송을 하지 않으면 페이가 없다. 방송이 한 번 죽으면 월급의 4분의 1이 날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윗 연차 작가들의 고료를 깎으려 들어서 작가들에게 쌓아둔 덕이 없는 상사였다. 당황했을 막내의 마음도 달랠 겸 우리는 좀 더 오버해서 반응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아가 커피를 준비하지 않게 하지는 못했다. '커피 몇 잔'은 별 것 아니라서 괜히 더 불쾌하면서도 곧바로 저항하기엔 좀 애매한 파장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볼수록 상사의 느닷없는 커피 부탁은 문제인 것이 맞았다.


 일단, 방송작가의 업무 시간에는 자신이 해야 할 본연의 일이 있다. 커피 몇 잔이 크게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업무 중인 사람에게 업무 외의 부탁을 하려면 좀 더 부탁처럼 말했어야 하지 않나. "내가 지금 손님이 오셨는데 혹시 누가 마실 것 좀 준비해줄 수 있나?" 정도의 성의만 보였더라면 나라도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투에는 '자신의 손님' -> '커피' -> '막내 작가'라는 사고 회로가 이미 형성되어 있음이 묻어 나왔다. 막내 작가에게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면 문제였다.


 둘째, 이 심부름은 일회성에 그칠 기세가 아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지난번에도 상사님을 찾는 손님들이 왔을 때 조아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었다. 이번엔 문 열자마자 자신 있게 조아를 찾는 것을 보니 앞으로도 그의 손님들이 올 때마다 이 일이 반복될 것이었다.


 셋째, 여러 사람 사이에서 굳이 막내 작가를 지목했다. 당시 7~8년 차였던 나였어도 쉽지 않았을 텐데, 막내 작가라면 그러한 명령을 가장 거부하기 힘들 법한 위치에 있는 대상이다.


 작은 부당함이라고 할 지라도 조아가 길들여지지 않기를 바랐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고 등하교를 하면서 보니 거리의 쓰레기가 계속 눈에 띄었다. 이제 나도 다 컸다는 호기로운 에너지로 가득했던 7살의 나는 엄마에게 부탁해서 비닐봉지를 하나씩 챙겨서 등교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책가방을 멘 등이 푹 젖도록 열심히 쓰레기를 주웠다. 힐끔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자리가 깨끗해져 있는 것이 여간 뿌듯한 게 아니었다. '얼마나 가나 보자' 싶었던 부모님이 몇 달 후 집게를 지원해줬을 정도로 나의 유사 '플로깅(*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 요즘 우리나라에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은 꾸준하고 제법 오래갔다. 하지만 2학년에 들어서면서 딱 끊었다. 매일 줍는데 매일 더러워지는 거리를 보면서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이런다고 세상 안 바뀌는구나...'



 그 후로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거나, 끼어들면 귀찮아질 것 같은 일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편이 되었다. 될 일은 어차피 되기 마련이고, 안 될 일이라면 굳이 내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이런 방관적인 태도로 산다고 해도 큰 문제가 생긴다거나 인생이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은 그렇게 지내는 동안 나도 속이 덜 시끄럽고 몸도 더 편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타고 있는 차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는데도 계속 손을 놓고 있으면 결국 나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동물과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접하면서부터다.


 다만 채식 생활은 아무리 열심히 지향해도 먹는 것, 쓰는 것, 바르는 것, 입는 것 어느 하나 '완벽'해질 수 없었다. 그래서 욕심내지 않으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실천하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내가 얼마만큼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면밀히 살피며 무리하지 않되, 변화시키고 싶은 상황을 외면하지는 않도록 끊임없이 중심잡기. 이것이 채식 생활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를 좌우하는 관건인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채식 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나는 이 중심잡기를 자연스럽게 단련하게 되었다.


 무리가 되지 않는 임계점이 너무 하찮아서 도무지 세상을 발꿈치만큼도 못 바꾸겠다 싶을 때도 자주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일단 뭐라도 하면 내 마음이나마 덜 찝찝할 수 있으니까. 동물이나 환경을 생각하면서 '할 수 있는 만큼은 뭐라도 해보자' 했던 삶의 자세는 점점 의식주 외의 다른 영역으로도 번져오기 시작했다.




 '커피 사태'를 목격하고 며칠 후였다. 출근해서 막 자리에 도착했더니 조아가 또 커피 여러 잔을 타고 있었다.


 "이거 상사님 방 가는 거지?"

 "네..."

 "컵도 여러 갠데 같이 가자"


  사실 겨우 네 잔이라 쟁반에 받치면 한 사람이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같이 두 잔씩 들고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이건 잘못된 거라고 따져 물을 그릇은 못 되었다. 한 문장을 다 마치기도 전에 목소리가 벌벌 떨렸을 것이고, 그 후에 혼자 괜한 걱정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에 대해 고민해봤다. 민망할 정도의 소극적인 방법이지만 조아가 커피 심부름이라는 사소한 부당함을 혼자서만 감당하지 않도록 도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또 상사님이 시키면 나도 불러. 같이 하자. 혹시 내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다른 작가들한테도 너랑 같이 좀 하자고 얘기해 볼게"

 

 커피를 들고 상사님 방으로 내가 먼저 성큼성큼 들어갔다. 아무런 내색은 안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의 눈을 아주 똑바로 응시했던 것도 같다. 상사님 얼굴에 뭔가 '어라?' 하는 표정이 잠시 스쳤다. 커피 네 잔을 두 사람이 부산스럽게 나눠주고서 정중히 인사하고 문을 닫았다.



 그 후, 상사님은 조아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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