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coming Nov 25. 2020

진짜로 올지도 몰라, 고기 없는 세상

정세랑 단편소설『7교시』



200여 년 전 사람들은 기쁠 때도 위로가 필요할 때도 서로 고기를 사주었다고 한다. '고기를 사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고 말하는 옛 영상 자료들을 보면 뜨악했다. 요리 프로그램 자료들은 그로테스크의 극치였다. 사람들은 온갖 동물을 온갖 방식으로 먹었다. 지금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얼굴로.

            - 정세랑, 『7교시』/ 책 [무민은 채식주의자] 중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세랑 작가는 <무민은 채식주의자>에 실린 단편 소설에서 지금으로부터 200년 후쯤의 세상을 그렸다. 수온 상승과 바닷물 산성화로 산호가 녹아 사라지면서 제일 먼저 어류가 멸종되고, 점차 파충류, 양서류, 조류, 포유류 순으로 소멸의 그림자가 번져간다. 생태계 파괴와 이상 기후,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의 3분의 1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머지 인류는 적극적인 환경주의만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200년 후의 세상에서는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지구 자원이 한정적으로 주어지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까다로운 인증과 철저한 계산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하하... 이 작가분... 상상을 스펙터클 하게 하시네...라고 치부하기에는 이 미래 세계에 대해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동안 각종 연구 발표와 기사들을 통해서 과학자, 기후학자들이 숱하게 경고해왔던 미래와 닮아있다. 마냥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 있을까?


 동물권을 주장하는 목소리 앞에서 나는 자주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부터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동물에게 마음 쓸 시간과 돈으로 먼저 돌보아야 할 사람들도 지천일 거라고. 나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그러나 사람부터 살기 위해 우리가 이룩해 온 세상을 돌아본다. 가축들이 집단으로 병을 앓으면 깨끗하게 처리하고 또다시 빽빽이 사육해서 끊임없이 먹을 줄 아는 회복탄력성, 플라스틱으로 지구의 숨통이 조여 오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저마다 한 무더기씩 플라스틱을 배출하는 해맑은 꾸준함(책상 위 생수병 때문에 뜨끔...). 멋을 위해, 치장을 위해, 편리하기 위해, 입 속 쾌감을 위해 성실히 질주해온 결과 모두 함께 사이좋게 맞이할 데드라인. 이건 사람'부터' 살자는 게 아니라 사람'만' 살겠다는 것 아니었을까? 사람만 사는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가능한다고 한들 과연 살고 싶은 세상일까? 내 이기심이 지나치게 근시안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세랑 작가가 소설에서 미래 세계를 200년 후쯤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서조차 '인심 많이 쓰셨네...' 싶어 진다.

 

 그래도 좀 억울한 생각이 든다. 맛있는 음식을 선전할 때 한 번이라도 접시 위의 이것이 어떤 환경에서 살다 어떻게 죽은 동물인지, 이 공정의 나비 효과가 동물뿐만 아니라 환경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알려주며 권한 적이 있나? 그저 기가 막히게 맛있으니까 먹으라고, 오늘 힘들었던 일은 다 잊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수많은 광고와 매체가 얼마나 귓가에 속삭였나. 플라스틱은 뭐, 내가 만들어달라고 했나? 이걸 쓰면 편하다고, 살기 쉬워질 거라고... 그래서 먹다 보니, 쓰다 보니 길들여졌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재앙은 아무것도 몰랐던 내 책임이 되어 있었고 죄책감에 마음이 자주 찌뿌둥해지고 만다.


 그런데 나에게 고기를 먹도록 유혹하고 길들여왔던 대표적인 기업들은 언젠가부터 고기 없는 메뉴를 은밀히 개발해왔다. 도미노피자, 피자헛, 파파존스 등 굴지의 피자 회사들이 비건 피자를 만들고 채식 메뉴를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버거킹은 식물성 임파서블 패티를 이용한 임파서블 와퍼를 출시했고, 맥도널드도 채식 버거 출시를 선언했으며, KFC마저도 비건 치킨을 개발하고 실험실 배양육으로 만든 치킨 너겟을 선보이겠다며 앞다투어 선전포고 중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비건 패스트푸드는 롯데리아의 미라클 버거와 어썸 버거, 써브웨이의 얼터밋 썹이 거의 유일하지만 곧 다른 기업들도 조금씩 영역을 확장하지 않을까. 한국 파파존스도 비건 옵션이 가능하긴 한데 기성 피자에서 치즈만 통째로 들어내는 차원이라 아직 인정 못해...)


 기업들이 이렇게까지 식물성 고기나 채식 메뉴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벌써 채식이 주류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직은 치킨이나 돼지고기, 소고기가 들어간 맛있는 신메뉴에 올인해서 가열하게 내놓는 편이 훨씬 잘 팔릴 것 같은데.


 아, 가장 활발하고 신속하게 육류를 취급하던 이곳들이 어떤 징후들을 먼저 발견한 건 아닐까? 이대로 계속 대량의 고기를 계속 공급하는 시스템이 더 이상은 불가능해질 거라는 걸. 고기가 없는 세상은 도래하고 말 것이고, 고기를 좋아했지만 먹을 수 없게 된 사람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짐을 은밀히 포착했기 때문에 서둘러 경쟁하는 중인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방금 전 단락은 나의 음모론이 조금 지나쳤던 것 같다. 흠흠... 아무튼 간에 식품업계에서 두드러지듯이 채식, 대체육, 비거니즘 등은 더 이상 아웃사이더로만 존재할 기세가 아니다. 미래 시대의 어떤 풍경을 확신하는 듯, 대중성을 염두에 두고 연구 개발과 설비에 투자를 하고 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분명히 지금만큼 동물을 대규모로 비윤리적으로 사육하며 소비하지는 못할 확률이 높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그런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줄어들 수도 있고, 도저히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이상 전과 같은 방식으로 동물들이 공급되지 않아서(계속 집단으로 질병에 감염되거나 환경이 지나치게 망가져버려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고기를 못 먹게 될 수도 있다. 기왕이면 전자가 좀 더 평화롭고 모두에게 덜 고통스러운 방식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런 세상이 예상보다 훨씬 늦게 오거나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짧은 소설을 읽다가 방치됐던 상상력에 발동이 걸려버린 어느 몽상가의 허황된 상상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기가 없으면 절대 멀쩡히 돌아갈 리 없던 기업들이 고기 없이 사는 법을 조금씩 모색 중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고기 없이는 절대 못 살 것 같던 우리도, 차츰 변해야 할지 모른다. 진짜로 올지도 모르니까. 고기가 사라져 버린 세상이.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데 왜 공원에 토끼가 사는 거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