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영화를 고르고 싶은가? 나의 원픽은 단연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다. 온갖 달콤한 것들이 찬란하게 만발한 마을에서 옴파룸파들과 함께 '윌리 웡커~ 윌리 웡커~' 찬양하며 초콜릿 폭포 속에 몸을 풍덩 날려보고 싶다.
그렇다. 나는 지독한 달다구리 중독자다.
대충 채식주의자이지만 언제나 목표만큼은 온전한 비건을 지향하기에 육류뿐만 아니라 일부러 우유를 사 먹거나 카페에서 라테류를 주문하거나 계란을 먹거나 하는 일은 되도록 참아내고 있다. 완벽하다고는 못해도 열 번 중 아홉, 여덟... 일곱 번 정도는 이겨내는 편이다. (임신과 출산을 거쳐야 우유와 알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동물이 어떤 과정을 거치기에 쉬지 않고 끊임없이 우유와 계란을 생산할 수 있는지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우유와 계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날 이때껏 부드럽고 달콤한 케이크류 과자나 초콜릿 가공 식품들의 노예로 살아온 탓이다. 그 중독성의 정도란, 아마 틈만 나면 담배를 찾는 흡연자와 유사할 것 같다.
다행히 조금만 검색하고 인터넷 주문을 잘 활용하면 우유, 계란, 버터 등을 함유하지 않고도 맛있는 비건 간식을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꼭 비건 인증을 받거나 표시가 된 식품이 아니라 하더라도 마트나 편의점에서 식품 뒷면의 성분표를 확인해서 동물성 성분(우유, 계란,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등)이 있는지 확인한 뒤 재량껏 즐기는 요령도 생겼다.
그럼에도 오래 혀를 길들여왔던 '할미 입맛'류 폭신하고 달콤한 과자나 초콜릿을 보고 입맛이 폭주하는 바람에 덜컥 논 비건 과자를 집어 들어버리는 때도 여전히 있지만... (고백합니다...) 이 기세로 계속 간다면 조만간 간식 영역에서도 동물성 성분과 이별할 날이 머지않겠다고 낙관했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해온 사실이 있다. 애초에 그 모든 달콤한 것들에 빠짐없이 충실하게 들어있는 설탕이 비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제 설탕'은 비건이 아닐 확률이 높다.
사탕수수즙을 정제해서 설탕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탄화 골분' 즉, 숯으로 태운 동물의 뼈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소금도 마찬가지라고) 설탕의 경우 주로 소의 뼈가 이용된다고 한다. 비건은 생활 영역의 전반에서 동물에 대한 착취를 거부하는 만큼 동물뼈를 사용해 정제한 설탕 역시 비건으로 보기 어렵다. 순진하게 요리할 때 황설탕이나 흑설탕으로 대체하면 되려나 생각했는데 이것들은 정제 설탕에 색을 입힌 격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한 기억이 있다. (*정제 설탕이지만 동물성 물질이 사용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다만 내가 먹는 음식들에 들어있는 정제 설탕이 어디 출신? 인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울 뿐...) 직접 설탕을 고를 때는 원당이나 마스코바도와 같은 비정제 설탕으로 대체할 수 있다.
정제 설탕은 '단 것'들에만 들어있지 않다. 틀림없이 비건 성분으로 알고 있었던 최애 카레가 설탕 때문에 비건으로 여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되어 절망한 일이 있다. 즐겨 먹어오던 비건 대체육, 가공식품들에도 거의 빠짐없이 정제 설탕, 정제 소금이 들어있는데 이것을 다 일일이 확인하고 다시 목록을 만들어야 하나?
솔직히 이런 마음이 들었다.
'설탕까지는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그래도 일단 육류와 동물성 성분을 식단에서 제외하는데 도움이 되는 식품들에 설탕까지 꼼꼼히 따져야 할까?'
내가 경험해온 채식은 살아온 이력과 내가 속한 사회 역사의 상당 부분을 전복시켜야 하는, 작지만 생각보다 큰 단위의 운동이었다. 아마도 촘촘해진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온, 자연스러움과 꽤나 멀어진 상태의 인간이었기에 더욱 그랬을지 모른다.
처음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렇고, 그다음 우유와 계란을 줄이거나 플라스틱 쓰레기에 신경 쓰기 시작했을 때, 더 나아가려는 순간마다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다. 이제 겨우 엉덩이 좀 붙이고 안정적이라고 느끼게 된 상태에서 또 한발 휘청거리는 그물에 발을 딛고 중심잡기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전과 또 다르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사실은 미리 벅찬 감정을 안겨주기도 한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아무리 동물에 대한 대우가 심각하다고 해서 내가 입에 넣는 음식까지 하나씩 신경 쓰면서 살아야 하나?' 설탕의 문제 앞에서도 버겁다는 이유로 나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을 때 그나마 내가 가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부터 조율하는 일이다. 그것마저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이 나아지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영역부터 바꾸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내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질 수 있다.
설탕의 문제에 관해서 한 번에(아마 평생) 완벽하게 걸러내지는 못할 거라고, 여전히 나약한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려고 한다. 내가 어떤 문제에 공감하고 작은 행동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잘한 확인들이 내 안에 쌓아 올린 긍지. 그것이 나를 전보다 훨씬 더 단단한 사람으로 길러주었으니까.
가장 잘 들르는 채식 식품 커머스 채식한끼에서 조만간 구매하려고 했던 두 식품의 정제 설탕과 정제 소금에 대해 문의했다.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본사에 문의 후 구체적인 답변을 남겨주어 고마웠다.
언제 하나씩 다 물어보고 확인하나 앞길이 구만리처럼 깜깜하기는 하다.(더 좋은 요령이 있으신 분은 알려주셨으면...) 애초에 한국비건인증원 같은 곳의 인증제도가 있으니 비건이라고 출시되는 식품들의 설탕, 소금 등까지 확인하고, 기업들은 인증 마크를 적극 활용해주면 어떨까? 소비자들이 덜 고통받으면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쉬워지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