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크림떡볶이
채식을 하고 가장 많이 찾게 된 것 중 하나는 마라소스이다. 애초에 마라샹궈라는 요리가 있다는 것을 인스타그램에서 채식하는 분들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대부분의 마라샹궈집에서는 볶아지는 재료를 고를 수 있어서 고기류를 제외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비건으로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힙한 채식 메뉴로 각광을 받았고 한동안 내 인스타그램 피드는 온통 마라향 가득한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강남에서 유명한 마라음식점에서 마라샹궈를 처음 접하고 느꼈던 그날의 미각 충격은 아직까지 얼얼하게 각인되어 있다.
한동안 꽂혀서 친구들만 만나면 마라샹궈를 먹으러 가자고 하는 열혈 전도사였건만 언젠가부터 마라 음식점으로 향하던 내 발길은 뚝 끊겼다. 시중에 마라소스가 판매되면서 집에서 언제든 간편하게 해 먹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이금기 마라소스를 살 때마다 '오뚜기 사랑해요' '이금기씨 부자되세요(나중에 알고 보니 이금기가 이름은 아니었지만...)'를 외치며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마라샹궈의 행복을 주기적으로 만끽 중이다. 식당에서 파는 만큼의 구성이나 맛에는 다소 못 미친다 하더라도 오직 볶을 재료와 마라소스만 있으면 그럴싸한 맛을 내는 요리, 또는 한 끼 밥반찬이 탄생한다!
마라소스는 여러 채소와 당면, 건두부를 넣고 볶는 마라샹궈 외에도 다양하게 변주가 가능하다. 채수나 물에 풀기만 하면 훠궈를 해먹을 수도 있고, 고추장과 물을 잘 배합해 마라떡볶이로 먹어도 맛있는가 하면, 두유를 섞어 마라크림리조또나 마라크림떡볶이도 만들 수 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녀석이다.
얼마 전엔 코로나 때문에 친구 집에서 셋이 모이기로 했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배달 음식은 쓰레기도 많이 나오고, 비싸기도 해서 내가 마라크림떡볶이를 해주겠노라 선언했다. 어디 가서 뽐낼 정도의 요리 솜씨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메뉴만큼은 소스와 두유가 다 하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입맛에도 아주 적당했고, 채식을 하면 자극적인 음식은 못 먹을 것이라 생각했던 친구는 이 메뉴가 비건이라는 것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얼마 전 마라음식점에서 먹은 메뉴보다 더 맛있다는 극찬까지!
달큼하면서도 매콤한 향이 은은한 떡볶이를 맛있게 쩝쩝대며 서로의 연애 고민 이야기도 나누고, 새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에 대해 격려도 받고, 주식 얘기,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 얘기... 나이만큼 다채로워진 주제 스펙트럼을 넘나들었다. 좋은 음식점에서 만나는 것도 좋지만 직접 만든 요리를 먹으며 이야기 나누니 음식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먹는 시간까지가 다 우리의 것이어서였는지 이야기의 밀도가 좀 더 높게 느껴졌다.
이 날 나는 두 가지 정도를 증명(?)해낸 것 같아서 왠지 조금 기분이 좋았는데, 비건이나 채식메뉴도 자극적이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한 가지쯤 요리는 휘리릭 해줄 수 있게 됐다는 것.
인생이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근사해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마라크림떡볶이 2~3인분>
준비물 : 양파 반 개, 생버섯(종류는 상관X), 건표고버섯(강추), 양배추(이외에 넣고 싶은 생채소 재량껏 가능...), 고구마(호박이나 당근, 브로콜리 같은 단단한 채소도 하나쯤), 두부면, 마라소스, 두유 200ml 한 팩
1. 건표고버섯 한주먹이 적절히 불 때까지 물에 담가 둔다. 버섯물이 우러나온 물도 사용할 예정이니 버리지 말 것
2. 기름에 양파를 먼저 좀 달달 볶고, 양배추, 고구마, 생버섯 등 야채들을 넣어 거의 익도록 볶아준다.
3. 불렸던 버섯, 물에 담가 뒀던 떡도 넣고 조금 더 볶다가 마라 소스를 뿌려 다 함께 볶는다.
4. 표고버섯 불린 물과 두유 한 팩을 1:1 정도 비율로 넣고 잘 섞어준다. 떡에 간이 베어 들 때까지 끓이며 살짝 졸여준다.
5. 물에 헹군 두부면을 넣어 휘리릭 섞어주고 접시에 담아 후추나 허브를 뿌려주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