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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Aug 15. 2024

스펙터클만큼의 책임감을 아는 재난영화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트위스터스>

<트위스터스>(Twisters, 2024)


1996년 영화 <트위스터> 이후 28년만에 토네이도를 소재로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 <트위스터스>는, <트위스터>와 마찬가지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총지휘를 맡고 마이클 크라이튼 작가가 정립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므로 28년만에 나온 <트위스터>의 느슨한 속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다행스럽게도 그 긴 세월의 간격만큼 눈여겨 볼 만한 진화를 보여줍니다. <미나리>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정이삭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는 훌쩍 진보한 테크놀로지가 전하는 스펙터클의 압도감은 물론, 가정된 미래가 아닌 실재하는 현실의 재난을 다루는 재난영화로서 마땅히 필요한 윤리의식 또한 갖춘 작품이 되었습니다. 과거 재난영화의 전성기에 만끽했던 스펙터클을 다시금 유감없이 재현하면서, 동시에 지금의 재난영화에게 요구되는 책임감을 함께 갖춘 영화랄까요.


5년 전 기상학도였던 케이트(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동료들과 함께 토네이도를 대상으로 야심찬 도전을 시도 중이었습니다. 화학물질을 토네이도 한가운데로 올려보내 토네이도의 동력이 되는 수분을 흡수, 토네이도를 소멸시킬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은 토네이도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고, 그 결과 케이트는 실험을 함께 하던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맙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뉴욕 기상청에서 분석관으로 일하고 있는 케이트에게 당시 실험을 함께 했던 친구 하비(안소니 라모스)가 찾아와, 그때의 실험을 다시 실행에 옮기게 할 획기적인 기술을 마련했다며 그때 좌절되었던 도전을 다시 시작하고 제안합니다. 죄책감에 다시 돌아갈 엄두가 선뜻 나지 않는 케이트는 일주일동안만 하비 일행과 함께 하기로 하고 5년 전의 상처가 있는 오클라호마로 또 한번 향합니다. 수많은 토네이도 헌터들이 현장에 뛰어들어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케이트는 그곳에서 유명 인플루언서인 '토네이도 카우보이' 타일러(글렌 파월)를 만납니다. '좋.댓.구'에 혈안이 되어 토네이도에 맞서 어떤 위험도 불사하려는 듯한 그의 모습이 케이트는 마뜩잖지만, 그럴수록 그와 부딪히는 상황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런 가운데 또 다시 일대를 초토화시킬 초대형 토네이도가 닥칠 것임이 감지되고, 그들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를 그 현장으로 떠납니다.


<트위스터스>(Twisters, 2024)


작품성 높은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재능이 블록버스터로 원활히 이식되지 않는 경우를 왕왕 봐 온 터라, <미나리> 같은 영화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이 <트위스터스> 같은 재난 블록버스터를 잘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트위스터스>는 무엇보다도 재난 블록버스터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볼거리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그 우려까지도 싹 '날려' 버립니다. 너무나 거대해서 공포스러울 정도인 자연을 향한 경외감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시각적으로 우직하게 구현해내는 저돌적인 스펙터클은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는 순도 높은 최상급의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스크린을 뒤덮어버리고 나아가 뜯어버릴 듯한 토네이도의 시청각적 재현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필요한 피해를 전시하면서 힘을 과시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타협 없는 스케일로 펼쳐지며 관객을 압도합니다. 특히 4DX 포맷과의 궁합이 완벽에 가까운데, 바람, 안개, 빗물 등 풍성한 기상효과는 물론이거니와 모션효과는 가히 디스코팡팡을 타듯 팔걸이를 부여잡고 봐야 할 만큼 강력한 수준을 자랑합니다. 그 효과를 힘주어 만끽하다 보니 보고 나서 뒷목이 뻐근할 정도였던 이 영화의 4DX 효과는 <아바타>, <드래곤 길들이기>, <알라딘>, <탑건: 매버릭> 등의 영화에 이어 역대급 4DX 포맷 사례로 꼽을 만합니다.


그러나 <트위스터스>가 다른 재난영화들보다 더욱 신중해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다루는 재앙이 가상의, 미래의 재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 혜성 충돌, 지진해일 등 다수의 재난영화 속 소재가 실재하는 재난을 바탕으로 극단의 미래적 설정을 가미해 전개되는 데 반해, <트위스터스>의 소재인 토네이도는 (한국에서는 여전히 영화 속 일이라고 해도) 미 대륙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재진행형 재난입니다. 영화 속에서 초토화되는 마을의 참상은 불시에 들이닥친 토네이도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실질적인 피해를 보는 현실 사회의 모습을 더도말고 덜도말고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토네이도로 관객을 압도하는 스펙터클을 자랑하면서도 그저 관객이 흥밋거리로만 소비하게 해서는 안되는 책임을 영화는 부여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수의 재난영화들이 재난과 상관없는 인물들의 개인적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 재난(과 그것이 낳는 수많은 피해들)이 소모하곤 하는데, <트위스터스>는 영특하게도 그런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토네이도로 언제 모든 것을 잃을지 모를 농장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의 삶, 그러므로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토네이도에 그토록 매달릴 수 밖에 없는 현실, 그 의지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성공을 위함이 아닌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함이어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 그에 대한 공감으로 인해 비로소 형성되는 인물들 간의 교감이 긴밀하게 그려집니다. 현실과 이상, 상실과 극복 사이에 있는 인물들의 드라마가 토네이도라는 재난으로부터 풍성하게 파생되고, 이를 통해 재난은 배경으로 소모되지 않고 극의 축을 이루며 동시에 인물들의 이야기 또한 들러리로 물러서지 않고 재난을 돌파하는 현재에 관한 것으로서 고유의 동력을 얻는 것입니다. 


<트위스터스>(Twisters, 2024)


<트위스터스>에서 토네이도는 인물들에게 정복의 대상이 아닌 극복의 대상입니다. 재난과 마주할수록 그것은 너무나 거대하며 인간이 그것을 넘어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만 분명해질 뿐이고, 그런 경외감 혹은 무력감은 공포스러우리만치 거대하여 스크린 너머 관객들까지 압도해 버리는 스펙터클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여실히 나타납니다. 그러나 영화는 자연 재해의 거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인간을 유약한 존재로 그리지 않습니다. 얕은 쾌감도 거창한 사명감도 아닌 각자의 생애를 위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생애를 위해 토네이도에 접근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자연 앞에 한없이 작은 존재일 수 밖에 없지만 언제까지나 지치지 않고 그 한계를 돌파해나가는 인물들의 서사에 자생력을 부여합니다. 아픔을 딛고 잠시 멈추었던 성장을 지속해나가는 인물을 강인하게 연기하는 케이트 역의 데이지 에드가 존스, <탑건: 매버릭> 속 '행맨'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하면서도 한층 깊고 인간적인 인물을 그려내는 타일러 역의 글렌 파월, 학도로서의 진실성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진중하게 연기하는 하비 역의 안소니 라모스 등 준수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의 호흡이 더해져 <트위스터스>는 압도적인 자연의 힘을 과시하면서도 인물들 역시 소모되지 않고 자기 힘을 발휘하는 재난영화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정이삭 감독의 전작인 <미나리>와 이번 <트위스터스> 사이에 공통점이 없지 않은 게, 바로 주인공이 미국의 농장 사회에서 성장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지침 삼아 고유의 힘을 얻어 살아가는데, <미나리> 속 주인공들이나 <트위스터스>의 주인공들 모두 방법은 다를지라도 자신이 보고 겪고 배운 것을 양분으로 하여 살아가고 성장해 나간다는 점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정이삭 감독은 그처럼 경험에서 오는 삶의 동력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듯, <트위스터스>를 훌륭한 스펙터클과 그만큼 가져 마땅한 인간의 도리와 의지를 함께 지닌 영화로 완성했습니다.


<트위스터스>(Twisters,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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