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만 Sep 18. 2024

기댐도 밀어냄도 없이, 별자리처럼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새벽의 모든>

<새벽의 모든>(All the Long Nights, 2024)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의 새 영화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도 선정된 바 있는 <새벽의 모든>은, 세오 마이코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로맨스의 범주를 넘어선 사람들 사이의 고유한 관계를 들여다 봅니다. 평범한 누구나라도 얼마든지 마음의 병을 얻을 수 있는 현실을 반영하듯 각자가 속앓이 중인 아픔을 짊어진 주인공들이 교감하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을 찾기가 더 힘든 요즘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영화는 알 수 없는 계산을 거친 끝에 그 답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들이미는 게 아니라 고요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편안하게 말 걸듯 전함으로써, 그 고유하지만 보편적인 관계의 가능성에 대해 관객이 머리로 해석하기 전에 마음으로 느끼게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또 한번의 위로를 건네면서요.


월경전 증후군(PMS)을 겪고 있는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 모네)는 한 달에 한 번 참을 수 없는 짜증이 불시에 찾아오는 것이 커다란 고민입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에서도 그 증세로 인해 본의 아니게 난처한 상황을 일으키고, 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복용한 약 때문에 부작용까지 겪으면서 후지사와는 도망치듯 다니던 회사를 뛰쳐나옵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러, 후지사와는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작은 회사 '쿠리타 과학'에서 상품 관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매달 찾아오는 짜증도 살뜰히 챙겨주는 마음씨 좋은 동료들 곁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는 그녀의 옆자리에는 일부러 동료들과 섞이지 않으려는 듯한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가 있습니다. 하루는 탄산수를 즐겨먹는 그의 습관이 괜히 후지사와의 심기를 건드려 또 한번 짜증을 폭발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날 야마조에가 발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지게 되고, 후지사와는 야마조에가 극심한 공황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서로를 도와주면서, 서로가 지닌 아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면서 가까워져 가고 특별한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새벽의 모든>(All the Long Nights, 2024)


<새벽의 모든>의 두 주인공인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각각 월경전 증후군과 공황 장애라는, 심리적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말 못한 고통을 떠안고 있습니다. 이런 주인공을 다루는 이야기라면 보통 그들이 어떤 연유로 그런 병을 얻었고, 어떤 과정을 통해 그 병을 극복하게 되는지에 주목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 두 가지 다 다루지 않습니다. 후지사와가 월경전 증후군을, 야마조에가 공황 장애를 앓게 만든 배경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두 사람에게 그 병들은 마치 사고처럼 까닭없이 들이닥친 듯 합니다. 아마도 마음의 병을 앓는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계기 없이 불현듯 그 병들을 떠안았을 겁니다. 아마도 그들이 그런 고통을 앓게 된 것은 어떤 사건보다도 그들이 돌파해야만 하는 사회, 짊어져야만 하는 삶 자체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러니 원인이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중요한 것은 말끔히 리셋될 수 없는 이 병을 떠안고 현실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것일 겁니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이처럼, 명확한 원인도 치료법도 알 수 없는 마음 속 아픔을 기약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주인공들의 일상입니다. 그 일상에서 병이 말끔히 사라지고 기적적인 성취를 이루는 식의 극적인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지만, '버텨내야만 하는 것'에서 '살아갈 만한 것'으로 변화하게 되고 이 변화는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고유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이루어집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별과 별 사이 같은 관계 말입니다.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공통분모는 남들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할 마음의 병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백했다간 사회적 결격 사유로 취급받을까봐, 더 이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고 판단될까봐 숨기고 있었던 그 비밀을 그들은 서로에게 비로소 털어놓습니다. 남자인 야마조에가 후지사와의 월경전 증후군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어하는 후지사와가 야마조에의 공황 장애를 겪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서로가 세상 속에서 잘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게 하는 고충을 외롭게 떠안고 힘겨워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감의 영역에 있진 않으나 이해의 영역에는 있는 그들은 딱 그만큼만 서로에게 도움을 줍니다. 후지사와는 집 밖으로 나가기 꺼려하는 야마조에를 찾아가 머리를 잘라주고, 야마조에는 후지사와가 마음껏 짜증을 낼 수 있도록 혹은 최대한 짜증을 삭힐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그 도움들은 불완전할지언정 적어도 이 삶이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은 아니라는 것을 서로가 깨닫게 해 줍니다. 연인은 당연히 아니고, 친구라고 하기에도 서로 거리를 좀 두는 듯한 이 관계가 저는 개인적으로 일종의 '전우애'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다는 명확한 목표가 없음에도 끊임없이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하는, 사람들과 부대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점점 '전쟁'이 되어가는 현실은 일종의 '전쟁터'이고, 이런 세상에서 비슷한 고충을 짊진 채로 서로의 고뇌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며 그 싸움을 이어가게 하려 노력하는 그들은 일종의 '전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새벽의 모든>(All the Long Nights, 2024)


영화에서 아동용 과학 키트를 제조 및 판매하는 주인공들이 신규 프로젝트로 다루는 아이템은 플라네타륨, 즉 '천체투영기'입니다. 별자리 등 각종 천체의 형태를 감상하고 공부할 수 있는 이 제품을 다루면서 영화에서는 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별의 형태가 어쩌면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맺는 관계에 대한 좋은 비유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별자리는 여러 개의 별들이 모양을 지어 만들어낸 무리를 일컫지만, 그 별들 각자는 따로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지구에서 육안으로 봤을 때도 서로 떨어져 있으니 실제로 그 별들이 떨어져 있는 거리는 얼마나 멀지 가늠도 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듯, 그 별들이 뿜어내는 빛은 최초로 빛이 쏘아올려진 후 수백년이 지난 뒤에야 우리가 목격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수백년 전 과거의 산물을 현재의 우리가 지켜보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멀찌감치 서로 떨어진 그 별들이 모양을 이루어, 까마득한 과거로부터 출발한 빛을 따라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별들이 우리 코 앞에 있었다면 절대 그만큼 아름다울 수 없었을, 오히려 지극히 위험하고 파괴적이었을 빛을 전하면서 말이죠. 이렇듯 별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섬처럼 각자가 고립되어 있는 사회 속에서 강요된 친밀함이나 일방적인 단절이 아닌 또 다른 방법으로도 서로에게 유의미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야마조에를 연기한 마츠무라 호쿠토와 후지사와를 연기한 카미시라이시 모네는 그처럼 무작정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도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둔 채로 맺어지는 관계의 저력을 차분하고도 사려깊게 보여주며 눈치채지 못한 사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비단 후지사와와 야마조에 뿐만이 아니라도, 영화를 보다 보면 저마다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생각보다 도처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때로는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찾아온 그 상처는 나 스스로는 물론 타인들에게도 해코지가 될까 하는 걱정에 나로 하여금 침묵하게 하고 감내하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새벽의 모든>이 별을 바라보며 별을 부르며 우리에게 전하는 어떤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저마다 시름시름 앓는 이 세상에서 기대지 않아도 힘이 될 수 있고 밀어내지 않아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사이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적어도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바라보기라도 한다면 칠흑같은 어둠 속에 빛나는 별이 있음을 알 수 있듯,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만 서로의 시야에 우리를 두듯. 미야케 쇼 감독이 별에 투영하여 전하는 이 관계의 해법은 또 하나의 넉넉한 위로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새벽의 모든>(All the Long Nights, 202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