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5 - <머티리얼리스트>
<머티리얼리스트>는 장편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로 아카데미까지 사로잡은 한국계 미국 감독 셀린 송의 두번째 장편 연출작입니다. 감독은 전작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과 미국의 경계에 선 인물의 정체성 고뇌와 선택을 '인연'이라는 한국적 개념을 빌어 고유한 이야기로 풀어냈는데, 이번 <머티리얼리스트>는 역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마찬가지로 인물의 정체성 고뇌와 선택을 다루면서도 이를 한층 더 보편적인 이야기로 그려냅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었다고 해서 금세 감독의 개성이 희석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뜻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 + 삼각관계 로맨틱 코미디처럼 다가오는 스토리라인을 이성과 감성의 균형 속에서 세밀하게 그려나가는 감독의 손길은 여전한 개성을 드러내면서, '사랑이야기'가 아닌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서 이 영화를 한층 명석한 결과물로 완성시킵니다.
20대 때 배우의 꿈을 꾸었지만 30대인 지금은 그 꿈을 접은지 오래인 루시(다코타 존슨)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인 매칭 매니저는 천직인 것만 같습니다. 외모, 직업, 재력, 교양 수준, 종교, 정치성향, 인종까지 무슨 프랑켄슈타인이라도 만들어 내놔야 할 것 같은 고객들의 별의별 요구를 찰떡같이 충족시키며 만남을 주선한 결과 그 혼자서만 무려 9쌍의 결혼을 성사시켰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온갖 명시적 조건을 근거로 '운명적인 사랑' 운운하며 만남을 주선하면서도, 그 만남 이후에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당연하게도) 누구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자신만만하던 루시는 이내 그 딜레마를 몸소 경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됩니다. 사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타인들을 중매시켜주면서도 자신은 '자발적 독신주의'를 고집하던 루시는 고객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해리(페드로 파스칼)에게 순식간에 빠져듭니다. 사모펀드 가족기업에서 일하는 금수저남인 해리는 특별한 기념일이 아닌 아무떄나 최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갈 수 있고, 루시가 일생의 여행으로 꿈꾸는 목적지로 가는 비행기표를 즉시 끊어줄 수 있는, 자신이 바라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이른바 '유니콘' 같은 남자입니다. 그런데 그때 하필 루시는 옛사랑 존(크리스 에반스)과 재회하니, 과거에 함께 배우의 꿈을 꾸었고 지금도 연극 무대에 오르며 배우의 꿈을 이어가는 한편 생계를 위해 뷔페 알바를 겸하고 있는 존은 가장 초라했던 시절 그 초라함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헤어졌던 연인입니다. 비로소 자신이 이상적으로 바라보던 세계에 진입했다고 생각한 지금, 자신의 이상을 만족시키지 못해 헤어졌지만 자신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와의 재회로 인해 마음이 다시 흔들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셀린 송 감독은 전작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때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생의 전환점이 있음을 곱씹었었습니다. 이번 <머티리얼리스트> 역시 감독 자신이 실제로 잠시 몸담았었던 매칭 매니저 업계를 소재로 하여 사랑과 결혼이라는 또 다른 생의 전환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에만 몰두해도 좋을 사랑에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결혼으로 넘어오는 무렵에 대해서 말이죠. 일단 감독은 전작에 비해 훨씬 대중적인 터치를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이름난 할리우드 배우들이 주연으로 캐스팅되었고, '평범한 첫사랑 남자와 부유한 새사랑 남자, 그리고 현실적인 여자의 삼각관계'라는 익숙한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자칫 결말이 정해져 있는 진부한 로맨틱 코미디로 보일 수 있었던 이야기를, 감독은 날카롭고도 섬세한 연출로 '잊혀질 만한 어떤 이야기'가 아닌 '고유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먼저 영화는 루시가 종사하고 있는 결혼산업의 단면을 감각적으로 스케치합니다. 자신의 남은 일생을 함께 할 사람의 조건을 말함에 있어서 만나 보기도 전에 연봉, 키, 나이 등의 수치적인 부분을 먼저 따지는 고객들과 그런 고객들의 니즈에 부응하며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야겠다는 농담까지 불사하며) 프로 정신을 발휘하는 매칭 매니저의 모습을 담아내죠. 이 단면은 속물적일 수 있지만 영화가 이를 그저 비판하진 않습니다. 태고적부터 이어져 왔을 결혼 제도가 개인의 인생을, 나아가 가문의 운명을 건 이벤트로서 더 이상 이상만 따지고 감정만 따라갈 수 없도록, 갖은 현실적 조건을 따져야만 하도록 변화해 온 결과 형성된 '결혼 산업'의 한 얼굴로서 보여줄 뿐입니다. 만남과 결혼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이 산업의 고객이자 상품으로서, 대우받는 동시에 평가받습니다. 결혼까지 이어지면 우수 실적으로서 축하를 받는 한편, 주선 실패가 거듭되면 고객은 '처리'가 난망한 애물단지가 됩니다. 문제는 이 산업에 만남이라는 시작에 대한 책임과 결혼이라는 결과에 대한 평가만 있을 뿐 그 사이에 있는 '사랑'에 대한 개입은 있지 않다는, 아니 어떤 방법으로도 있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결혼 산업이 작동하는 영역은 서로의 배경과 물질적 조건, 서류에 쓰여진 성향을 통한 적합성 판단을 거친 끝에 만남이 주선되기까지만입니다. (제목 속 '머티리얼'(Material)은 '물질', '서류'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선된 만남을 통해 시작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변수들로 채워지죠. 영화는 잔잔하고도 진진한 리듬으로 우리의 예상을 언뜻언뜻 빗나가며 긴장감을 형성하는 대화 장면들을 통해 그러한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불확실성을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당면하는 질문은, '관계의 불확실성을 물질의 확실성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까?'라는 것이죠. 이처럼 이정표가 명확하다고 믿었던 관계의 바다에 드리운 불확실성의 안개를 헤쳐나가는 루시의 이야기는, '누구와 맺어질까?'보다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설령 누군가와 맺어지는 결말로 이어진다고 해도, 관객은 '누구' 이전에 '왜'를 궁금하게 하게 될 것입니다. 존과 해리는 루시가 인지해 왔고 깨달아가고 있는 관계에 관한 진실의 서로 다른 부분을 증명하고 있을 뿐,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보다 우위에 있다거나 옳다고 판단할 수 없는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세 사람은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환경과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지점에 서게 되면서 삼각구도를 형성한 것일 뿐 인위적으로 설계된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관계는 아닙니다. 그 속에서 루시는 정해진 답을 습득해 가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한 성장 속에서 자신이 믿는 답을 발견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루시가 발견하는 답은 언뜻 빤해보이지만, 영화는 이를 '진실한 사랑'의 판타지에 가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루시가 겪어온 세계의 역학에 따라 해석하죠. 영화는 '진실한 사랑'이 아닌 '사랑의 진실'에 대해 얘기합니다. 절대적인 답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그 셀 수 없이 많은 사랑의 형태를 관통하는 진실이 있음을 얘기하는 것이죠. 그 '사랑의 진실'이란, 사랑과 결혼은 판타지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동화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을 마주하고서 던지는 제안이자 뛰어드는 투자이며 오고가는 거래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신성한 개념에 투자, 거래 같은 세속적인 인식이 끼어드는 것을 영화는 굳이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제안, 투자, 거래가 성공을 완전히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사랑과 결혼에 한해서는 물질적 조건도, 갖은 증명 서류로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성 앞에서 거절하기보다 무모하게 뛰어드는 게 인간의 본성임을, 그리고 그런 본성이 인류의 역사를 형성해 온 하나의 축이었음을 부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염세주의라기보다 '현실적 이상주의'로서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달콤한 듯 날카롭게 탐색하는 영화는 매력적인 배우들의 연기로 채워져 있기도 합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상업영화 속 얼굴로 익숙한 루시 역의 다코타 존슨, 존 역의 크리스 에반스, 해리 역의 페드로 파스칼은 감독이 직조한 단순하지 않은 감정의 결 사이를 부드럽고도 예민하게 누비는 인물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패스트 라이브즈>에 이어 이번 <머티리얼리스트>에서도 셀린 송 감독이 견지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시선은 흥미롭습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게 마련인 '생의 챕터'가 존재하고, 전작에서 보여준 국적의 이동과 이번 작품에서 보여주는 관계의 변화 등 그 챕터의 방식은 무척 다양하죠. 그 챕터의 경계는 거슬러 갈 수 없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스르거나 아우를 수 있는 진실과 현실로 규정되기도 합니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보여준 경계가 전자였다면, <머티리얼리스트>가 보여주는 경계는 아마도 후자겠죠. 그래서인지 보다 빤하고 타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갖은 모습으로 형성된 경계 사이를 누비며 세상을 탐색하는 감독의 시선은 이번 영화를 통해 더욱 뚜렷이 다가오며 흥미를 키워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 연봉, 집값 등 물질적 조건이 중시되는 극중 배경의 특성상 가치 체감이 용이하도록 원어의 달러화가 자막으론 원화로 환산되어 표기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환율론 저것보다 더 나갈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