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5 - <위키드: 포 굿>
'1년간의 인터미션'이 비로소 끝나고 영화 <위키드>의 두번째 이야기이자 최종장인 <위키드: 포 굿>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극장에서는 한 자리에 앉아서 3시간 만에 다 보는 이야기를 1년을 사이에 두고 반으로 나눔으로써 적잖이 감질나게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1년간의 인터미션만큼 쌓인 기대를 영화가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걱정 또한 교차했습니다. 원작 뮤지컬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원작도 유명한 넘버들이 1막에 주로 배치되어 있음은 물론 흥과 감정을 한껏 고조시키는 역할 또한 1막이 책임지는데, 그에 비해 2막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톤인데다 비교적 침착하게 감정선을 좇던 1막에 비해 급작스레 휘몰아치는 이야기에 관객이 사뭇 당혹해 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원작이 보여준 1막과 2막의 완성도와 만족도의 편차를 이번 영화 <위키드: 포 굿>도 결과적으로 완전히 극복해 내는 데까진 이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보다 넉넉히 확보된 시간, 사라진 상상력의 제약을 바탕으로 그럼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잡아내는 데 성공하며 기대한 감동에 이릅니다.
오즈의 마법사(제프 골드브럼)에 관해 알게 된 진실 앞에서 엘파바(신시아 에리브)와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고, 그렇게 그들의 빛나는 우정에도 불구하고 추억 어린 친구로서의 시간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양자경)의 합작으로 공포와 혐오에 기반한 질서가 들어선 오즈에서, 엘파바는 그림자 뒤에 숨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저항하는 길을 택한 반면 글린다는 찬란한 빛에 둘러싸여 두려움에 떠는 오즈민들에게 안정과 행복을 주는 길을 택한 것이죠. 오즈의 마법사에게 접근하기 위해 은신 속에서 길을 헤매는 엘파바, 오즈민들 앞에서 보이는 언제나 밝은 모습 뒤로 엘파바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을 떨칠 수 없는 글린다, 지금은 글린다의 곁을 지키고 있지만 엘파바를 향한 감정을 떨칠 수 없는 피예로(조나단 베일리). 서로를 너무나 그리워하지만 함께 하는 순간 위험해지는 그들의 행보는 세계를 유지하려는 자들의 계략과 맞물려 그들을 뜻밖의 운명으로 이끕니다.
원작 팬들 사이에서도 1막에 비해 동력이 약하다고 평가되는 2막을 아예 독립적인 영화 한 편으로 완성한다는 것은 새삼 도전처럼 느껴집니다. 애초에 영화판 <위키드>는 원작 뮤지컬을 재해석하기보다 무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충실히 영상화하는 데 목적을 두었으므로, 이런 원작 2막의 한계를 아예 지워버리는 것 역시 어려웠을 겁니다. 전편처럼 시간을 넉넉히 두면서 서사와 감정을 보다 차근차근 풀어갔더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그런 와중에도 영화는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두 가지를 끝까지 지켜나갑니다. 바로 뮤지컬 영화로서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엔터테인먼트와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이 전하는 정서적 울림이 그것입니다. 뮤지컬 1막의 'Popular'나 'Defying Gravity'처럼 흥을 돋우는 경쾌한 넘버나 벅찬 감동을 주는 대작 넘버가 뮤지컬 2막에는 별로 없는데, 영화는 오케스트라 편곡과 시각효과를 풍성하게 더하여 그 취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했습니다. 엘파바의 분노와 자책이 담긴 넘버인 'No Good Deed'는 다채로운 시각효과를 가미하여 엘파바의 내적 갈등을 보다 강렬하게 이미지화하여 전하고, 잔잔한 러브송 느낌이었던 'As Long As You're Mine'도 마법의 이미지와 함께 격정적인 감흥을 더했습니다. 영화를 위해 추가된 오리지널 넘버 중에서는 글린다의 솔로 곡인 'The Girl in the Bubble' 장면이 마치 비누방울이 떠다니는 듯 원테이크로 연출되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뮤지컬에서 가장 감동적인 노래라 할 수 있는 'For Good' 역시 보다 풍부한 볼륨의 편곡으로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한 감흥이 한껏 만개하게 해 줍니다. 덧붙여 전편에서는 '언리미티드'로 음차 번역됐던 가사가 '한계는 없어'로, 원작 뮤지컬에서 '너로 인해 달라졌어, 내가'로 번역되었던 가사가 '너로 인해 달라졌어, 영원히'('for good'은 '영원히'라는 뜻입니다)로 다시 번역되는 등 개선된 번역 또한 노래에 대한 몰입을 도왔습니다.
이런 장치들 속에서 우리가 끝까지 눈여겨 보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엘파바와 글린다의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우정인데, 영화는 그 우정의 때로 얄궂고 모질기도 하지만 끝내 영원히 가슴에 남고 마는 얼굴을 세심하게 그려냅니다. 그들의 우정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며 1막이 마무리되었지만, 2막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우정은 생각보다 위태롭습니다. 몸이 멀어지며 마음이 멀어지고,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선택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죠. 그런 그들의 심리적 간극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만 하는 그들의 우정을 이야기하기 위해 일단 영화는 엘파바와 글린다를 더 자주 만나게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어떤 갈등을 빚든 그 기저에 절절한 우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죠. 예전 같으면 어린아이처럼 짜증내고 질투했을 순간 앞에서 진심으로 가슴아파 하고, 예전에는 서로 잡아먹을 듯이 임하던 싸움이 이제는 그렇게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임을 느끼며 미소를 머금게 될 때, 예전 같으면 나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만 애썼을 이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모든 변화는 그들이 소중한 친구가 되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에게 영원한 변화를 가져다 주는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서로에게 본이 될 만한 좋은 사람이기 이전에 서로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임을, 그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 곁에 나란히 서기로 결심한 뒤에 비로소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었음을 배우게 되는 것이고요.
'오즈의 마법사' 원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오버랩되면서 '이게 이렇게 된다고?'나 '저 사람이 저렇게 된다고?' 같은 질문 속에 급진전되는 서사 속에서도 엘파바와 글린다의 감정선은 그렇게 설득력을 갖추어 갑니다. 오즈가 싫어서가 아니라 오즈를 사랑하기에 진실을 외치는 엘파바의 마음이 담긴 'No Place Like Home', 영롱한 거품이 가져다주는 환상에 갇혀 있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글린다의 'The Girl in the Bubble' 등 영화를 위해 추가된 단독 넘버들도 그런 점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내고요. 전편에 비해 유머러스함이 한층 줄어든 이야기 안에서 엘파바 역의 신시아 에리보와 글린다 역의 아리아나 그란데는 요동치는 서사 속에서도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전하는 데 성공합니다. 신시아 에리보는 세상으로부터 숨어 진실을 외치는 혁명가이면서도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향한 사랑과 믿음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엘파바의 입체성을 목소리의 폭넓은 변화로 표현하는 한편, 아리아나 그란데는 더 이상 전편의 철없는 소녀가 아니게 된 글린다의 떨리는 내면을 진지한 감정 표현을 동반하여 그려내는 호연으로 기대 이상의 울림을 줍니다. 두 배우의 연기에 힘입어 단지 외적으로 극명한 캐릭터 대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언제까지나 지지하겠다는 믿음과 그리움의 감정으로 연결되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원작소설부터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이 이야기에는 차별과 착취, 저널리즘, 증오와 공포에 기반한 정치 등 현대 사회를 향한 다양한 메타포가 담겨 있지만, 영화 <위키드: 포 굿>은 이런 함의들을 확장시키기보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이라는 하나의 주제 안으로 함축시킵니다. 미시적인 접근이라 아쉬울 수 있지만 두 편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기도 할 것입니다. 서로 마냥 좋아하기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다른 점들이 무척 많음에도 끝내 서로로 인해, 서로를 위해 변화해 가는 개인 간의 우정은 곧 수많은 개체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증오와 혐오로 인한 균열을 딛고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며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 다름의 균열을 극복한 끝에 맞이하는 공존은 더없이 찬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