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덴의 영화읽기 20] <일 포스티노>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 파블로 네루다의 시 <시(詩)> 중 1연 -
어느 날 갑자기 시가 그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시인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파블로 네루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시인이다. 그에게 어느 한 우편배달부가 물어본다.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20년 전 우리를 찾아왔던 명작이 다시 찾아오다
1996년에 처음 국내 극장가에 개봉을 했으니 햇수로는 21년만에 다시 우리 관객을 찾았다. 이탈리아 아트 무비의 진수로 꼽히는 <일 포스티노>의 개봉이 왠지 반갑다. 메말라가는 감성으로 점점 표정이 없어지는 이 도시에서 다시 이탈리아 시골 청년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
'일 포스티노(Il Postino)'는 이탈리아어로서 그 뜻은 영어로 ‘The Postman', 우리말로는 우편배달부에 해당한다. 주인공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시)는 백수다. 어부인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기엔 아무래도 적성도 소질도 없다. 하루는 영화를 보러갔는데 그 곳에서 파블로 네루다라는 칠레의 시인이 마리오의 시골 동네로 망명을 온다는 소식을 접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화관 옆 건물에는 우편배달부 구인 공고가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하라는 아버지의 충고가 떠올라 그는 우체국을 찾아간다. 공교롭게도 그 우편배달부의 일은 바로 그 영화관 뉴스에서 본 인기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오는 편지만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시골 청년과 스타 시인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마리오는 시인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전부 여성이라는 사실에 시를 쓰면 여성에게 인기가 많아질까하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시인을 귀찮게하기 시작한다. 마침 마을의 주점에 마리오의 혼을 빼놓아버린 여성이 나타났다. 연애시의 대가에게 마리오는 묻는다. 어떻게 시인이 되었냐고. 그리고 대시인은 답한다.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감상해보게.”
메타포를 알게 되다
시를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해변을 걸으라고 한다. 마리오는 도통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 하겠다. 그래도 일단 해변을 걸어본다. 그리고 시인의 시를 읽으며 되뇐다. 하루는 편지를 배달하고 시인 앞에서 그의 시를 인용하며 멋진 말을 해본다. 시인은 자신 앞에서 ‘메타포(은유)’를 사용하지 말라며 충고한다. 본인이 메타포의 대가이니 자신 앞에서 젠체말라는 것일까. 의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마리오는 메타포가 뭔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뜻을 시인에게 묻고 설명을 듣는다.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은 말인 은유. 마리오는 조금 더 해변을 걷기로 한다.
하루는 해변에서 수영을 하려는 시인이 순간 떠오른 심상을 시로써 마리오에게 들려준다. 그 시를 들은 마리오는 대시인의 시가 이상하다고 답한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한 시인에게 마리오가 말을 이어간다.
“단어가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아요. 바다 위의 배가 단어들로 이리저리 튕기는 느낌이에요.”
“방금 자네가 한 말이 뭔지 아나? 그게 은유야.”
그렇게 마리오는 시인이 되었다.
원작 소설과의 비교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일 포스티노>는 원작인 소설에 기초를 둔 작품이다. 칠레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그 원작으로서 현재 우리말로 번역이 되어 출간되어 있는 상태기도 하다.
영화는 소설의 중요한 장면들을 따와서 각색을 했기에 이야기의 구조는 같아도 상황 설정이나 결말 등 부분적으로는 소설과 완전히 같지 않다. 소설은 배경이 파블로 네루다의 고향인 칠레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독재자 피노체트의 등장 이전 혼란스러운 칠레의 정치적인 상황이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는 배경을 이탈리아로 바꾸고 초점 자체도 시인을 통해 성장해가는 한 순수한 시골청년의 이야기에 맞춰져있다.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한 관객이라면 소설 역시 훌륭하니 한 번 읽어볼만도 하다.
영화 외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이 슬픈 사실이 영화의 감동을 더 진하게 만든다. 영화의 주인공 우편배달부 마리오를 연기한 마시모 트로이시는 영화 촬영 당시 심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촬영을 위해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촬영이 종료된지 정확히 12시간 후 그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인생의 역작을 찍어놓고서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버리다니. 메타포를 깨닫고 수줍게 미소를 지어보이던 마리오의 선한 인상이 지워지질 않는다.
시는 설명하지 않는 것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 뿐이야.”
대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우편배달부 마리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 편의 시와 같은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이 길어지면 안 될 것 같다. 그저 진부해질 뿐이다. 리마스터링되어 20년 전보다 더 선명해진 나폴리 해변이 마치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같다. 직접 영화를 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