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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항준 Danniel Park Feb 16. 2024

[박항준의 북칼럼] ‘자연에 이름 붙이기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자연의 질서를 찾는 ‘분류학’에 관련된 인문철학 책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 핵심포인트는 생물을 분류하면서 개체를 정의하는 분류학적 과정에서의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인지 그리고 이름 붙이기(정의) 과정에서의 바른 생명관(生命觀)을 습득함에 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면 보지 못한다. 분류학이 바라는 철학적 사고는 자연과 생명 그리고 인간에 대한 무관심을 경계한다.      


이 책은 재미있는 인사이트들이 몇 가지 숨겨져 있다.      


첫째, 인간의 분류학적 감각을 의미하는 ‘움벨트’의 존재다. 어린 아이마저 한두 번의 경험으로 개와 고양이를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선천적 감각을 ‘움벨트’라고 한다. 이 ‘움벨트’의 감각과 유전학적 기준인 ‘분기학’이 서로 갈등과 합의 구조를 통해 ‘분류학’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이 ‘움벨트’ 능력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관심이 클수록 높아진다.      


저자는 과학자들에게 지나치게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의존하다 보면 ‘움벨트’ 능력이 줄어든다고 경고한다. 자연에 대한 사랑도 식게 되기 때문이다. 식물이나 동물의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오래되었거나, “최근 6개월 동안 아픈 고양이 목소리를 들은 적 있나요?”라는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움벨트’라는 능력을 상실하고, 인간성마저 상실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는 곧 인간, 지구, 생명에 대한 관심도 식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동물과 식물은 린네의 분류기준에 따르면 ‘계문강목과속종’으로 분류된다. 이중 ‘계문강목과속’은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생물학적인 진화구조에 따라 나뉜다. 그런데 가장 세부기준인 종(種, Species)의 기준은 조금 독특하다. 인간은 호모 속(Genus), 사피엔스 종(Species)으로 분류되고 있다. 마지막 단계이자 기본적 단위인 종(種)은 ‘교배’가 중심이 된다. 다음 세대를 서로의 교배와 수정을 통해 낳을 수 있느냐가 잣대가 된다. 교배란 동물이나 식물의 두 개체 사이에서 수정이 행해지는 현상이다. 이 관점이라면 결혼과 출산을 꺼려하는 이들에게 출산 독려의 본질적 설득 소구가 될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셋째, 다윈의 ‘종의 기원’ 탄생 비화다. 분류학의 주류가 아니었던 다윈은 작은 것을 연구하고 자연의 질서에서 이것들이 차지하는 위치를 확실히 밝힘으로써 분류학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자는 생각을 했다. 이는 그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이 신뢰성을 갖추려면 꼭 필요한 일이었고, 신뢰성을 갖추는 것은 그가 진화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수 천년 간 내려온 신학과 과학의 패러다임을 뒤집으려 한다면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뉴노멀시대다. 학문이 전문화될수록 고도화된 학문이 사일로(silo)에 갇히게 되면서 인류는 자신의 지식만이 최고라는 관념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공자 등 4대 성인 이후 이렇다 할 성인들이 배출되지 못하고 있고, 베토벤 이후 제대로 된 교향곡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칸트 이후 현대 철학자들은 철학의 세분화나 선배 철학자들의 주석연구에만 힘쓸 뿐 자기만의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패러다임을 뒤집을 만한 용기와 처절한 고뇌가 부족했다 볼 수 있다.      


‘창조적 시선’의 저자 김정운 교수는 그의 저서 ‘에디톨로지’에서 철학과 교수들을 단 한마디의 질문으로 무너트린 적이 있다. “당신의 전공은 쇼펜하우어, 당신의 전공은 칸트다. 그럼 쇼펜하우어나 칸트의 전공은 무엇이었을까?” 수 백 년 전 철학자들의 경전해석에만 힘쓸 뿐 철학교수들에게 자기만의 철학이 없던 점을 비판한 내용이다.      


뉴노멀시대 새로운 시대정신과 이에 맞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류 동서양철학파의 전문가들로부터 눈 밖에 나는 다윈과 린네와 같은 프런티어가 탄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에서 다윈의 접근전략은 전공이 다르고, 비주류이기에 오히려 시대를 바꿀 철학이나 시대정신이 탄생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라는 껍질에서 벗어난 분열분석학자 질 들뤠즈나 원자론과 엔트로피로 유명한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들이 자살할 정도로 기존 전문가들의 압력을 이겨내야 하지만 뉴노멀 시대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다윈의 지혜로부터 읽게 되었다.     

다소 지루하다는 평이 있지만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단순히 분류학으로만 바라볼 때의 평가일 뿐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과학과 철학의 만남, 출산정책의 본질, 인간 분류의 기준, 시대철학을 만들어가는 프런티어 정신 등에 대한 풍부한 인사이트를 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갖고 있는 책이다.     


"최근 6개월 동안 고양이의 아픈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나요?"     

자연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신으로부터 받은 일종의 권한이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이 엄청난 권한과 권리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최근 6개월 동안 고양이의 아픈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나라는 물음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생명의 고귀함과 생물의 생명력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다. 아프고 한 이들의 소리에 귀 길울이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잡초 하나 들꽃 하나의 생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경이로움을 느끼는 삶은 분명 옳은 자연관과 생명관을 갖게 될 것이며, 이로써 바른 인생관을 갖추게 될 것 임에 틀림이 없다.                 

                                      



 박항준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공)저서

더마켓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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