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없는 지식과 문화의 해외직거래 플랫폼, AI
소버린(Souvereign)은 '주권이 있는, 독립의'라는 뜻을 가진다. <소버린 AI>는 특정 국가나 기업이 빅테크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인 인프라와 데이터를 가지고 독자적인 AI 역량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버린의 중요한 목적은 AI 기술 개발 및 운영에 대한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넘기지 않고 직접 통제권을 갖기 위함이다. AI 기술은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갖기도 하지만, 사회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국가별 언어와 데이터, 문화를 반영한 AI 주권을 위한 개발이 <소버린 AI>다. 빅테크 기업이 내놓은 AI는 주로 미국 기업에서 영어 위주로 학습하므로, 미국의 가치관에 편향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실제 ‘근친결혼’이 유전자변이 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질문에 답변을 거부한 AI도 있었다. <소버린 AI>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국가와 사회는 동성애나 종교, 인권이나 인종 문제, 노동 의식, 역사적 관점, 영토분쟁 등에 대하여 지나치게 중립적이나, 이질적이고, 편향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문자를 넘어 이미지, 동영상, 데이터 등을 토대로 만화와 소설, 상담코칭, 논문, 영화 영역 활동하게 될 AI는 관세 없는 <지식과 문화의 해외직거래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타국가의 문화에 종속되기 쉽다는 점은 자명하다.
물론 AI는 문화의 다양성을 흡수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갖는다. 특히 문화 선진국의 장점을 빨리 받아들임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이 높아질 수 있다. 최근 모임에서 새로운 이성에 대한 외모를 칭찬하는 적절한 발언에 대해 AI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었다. 성 인지 감수성이 민감한 미국의 AI가 답을 잘해줄 것이라는 기대로 말이다. 미국의 AI는 상대에 대해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하라 조언했다. 상대에게 “예쁘다, 잘생겼다”라는 결과에 대한 평가보다 “오늘 스타일이 멋지시네요"라며 상대의 과정을 존중하라는 조언이다. 이렇듯 외국발 AI와 교류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긍정적 효과도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문화 및 사회의 독립적 가치관>이다. 서기 48년, 고대 최대 규모로 4만 권 이상의 책이 보관된 것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최초로 국경에 상관없이 그 당시의 모든 교양서적을 수집하여 세계의 지식을 취합하였다고 한다. 생성형 AI는 제2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프로젝트다. 1억 년이 넘게 차곡차곡 모아 놓았던 인류의 모든 지식이 이제 한 곳에 모이고 있다. 다만, 수없이 많은 데이터가 취합되면서, 데이터를 지식 화한 데는 <AI를 설계한 그들만의 정서적 기준>에 의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정서와 자국의 이익이 기준이 되어 AI의 매개변수가 매겨지고, 우선순위가 배치되고, 가중치가 가감되면서 사용자들에게 공유된다.
<소버린 AI> 개발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소버린 AI>를 갖추지 못하는 국가와 민족은 앞으로 영원히 문화적 종속의 늪에 빠지게 될지 모른다. 선생님이나 대학교수, 정치인의 말보다 AI의 말이 더 맞다고 느끼는 시대다. 아니 앞으로는 AI가 다 옳다고 느끼는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 우리 스스로 자연, 생명, 인생, 사회, 세계, 우주관 등에 대한 독립적인 ‘가치관’을 갖추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문화적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 AI 기업들도 <소버린 AI>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AI 주권을 위해서는 시스템과 데이터가 우선되어야 한다. AI 시스템은 기술을 개발하고, 참고하고, 도입해서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데이터다. <소버린 AI>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갖는 공동선에 대한 철학적 기준에 대한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야 적합한 데이터 마이닝과 학습이 이루어진다. AI 주권을 지키겠다 해놓고 한국 사회를 정의하는 철학, 역사, 인문, 사회, 과학, 문화적 노력 없이 바른 <소버린 AI>가 탄생할 리 만무하다. 허울만 AI 주권을 부르짖다 말 가능성도 있다.
이를 대학이 주도하면 좋겠지만, 대학은 이미 지식이 분야별로 파편화된 상태다. AI가 요구하는 지식의 융복합 수준을 소화하기에는 사실 버거운 상태다. 현재의 대학교육 시스템에서 물리와 수학, 과학, 예술, 철학, 심리, 사회학을 넘나드는 융복합 엔니지어 인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인물들을 탄생시킬 수는 없다. 더불어 주로 대기업인 AI 기업이 임의대로 <소버린 AI>의 기준을 만들어 학습시킨다면 이 또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문화나 시스템, 이데올로기, 발전단계가 서로 다른 국가들이 각자 민감해하는 동성애나 종교 문제, 富의 정의, 진보와 보수, 인권이나 인종, 난민, 노동문제, 역사 갈등, 영토분쟁 등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 주체적인 가치관이 없다면, 이미 AI 비서가 습관화되어 가고 있는 생활방식 속에서 우리가 외국식 가치관에 쉽게 종속되거나 흡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라도 <소버린 AI>를 위한 준비절차를 살펴보자.
[융복합 엔지니어 육성 인프라]
첫째, 인문 철학적인 인프라구축이 필요하다. 우선 제대로 된 융복합 엔지니어를 육성하기 위한 인프라 확보다. 특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융복합 엔지니어는 단순 AI 검색 스킬 차원의 테크니션이 아니다. 사실 고대 철학자들처럼 철학, 수학, 과학, 화학, 물리, 사회, 인문, 예술 분야의 멀티태스크가 가능한 역량을 요구받는다. 진정한 융복합 엔지니어는 가치 있는 AI의 매개변수를 찾아내고, 창조할 수 있는 ‘메타인지’라는 기초체력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한 체계적인 인력육성과 연구기관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아테네의 아카데미, 조선의 서원,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의 쇼카손주 쿠( 松下村塾)와 같은 학문 간 장벽과 전공이 없는 융복합인재를 육성하고, 연구할 수 있는 독창적인 연구 인프라가 필요하다. 전 세계의 지식을 담은 AI를 부리기 위해서 우리는 그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지식의 양으로는 AI와 비교가 될 수 없기에 메타인지를 기초로 한 창의적 인재육성이 필요하다.
[가치기준의 사회적 합의]
두 번째, 가치관에 대한 사회적 합의 노력이다. ‘사회적 합의’란 종교, 분쟁, 역사, 정치체제 등 민감한 내용에 대한 꾸준한 사회적 담론을 통해 동의와 계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지금은 사회적 갈등을 봉합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사회적 갈등 요소들을 묻어두고 심지어 회피하려 하고 있다. 자칫 비겁할 수 있는 이 결과가 결국 주권 상실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무엇을 지켜야 할지 모르는데 AI 주권이 있을 수 없다. 합의된 가치관이 <소버린 AI>의 진정한 시작이자 우리가 만들어내는 매개변수다.
[데이터 담론]
셋째로, 합의된 공동선이 매개변수가 되어 데이터가 취합되고, 고도화되어야 한다. 이제부터 사이버 전쟁을 넘어 소리 없는 <AI 데이터전쟁>이 시작된다. 역사나 영토, 경제, 사회, 종교 등 국가와 민족 간 갈등 요소들이 외교적 해결 노력과 동시에 국가별 AI가 갖춘 데이터와 매개변수를 기반으로 <데이터 담론>에서 결정 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지난 1억 년간 구축한 현 인류의 모든 지식이 통합됨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포스트-역사시대로 돌입했다. 산업혁명으로 미국과 유럽 기술이 전 세계를 뒤엎을 때, 옆 나라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6대의 항공모함을 갖고 있었다. 당시 구한말 주권을 빼앗긴 우리의 실기를 다시 반복할 수는 없다. 만일 <소버린 AI> 전쟁에서 또다시 주권을 빼앗기게 되면 이번에는 우리의 정신(spirit)마저 빼앗기는 사태가 올지 모른다.
상상해 보자. AI의 주권을 내어주게 되면, 우리가 지금 독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더라도 전 세계인들은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하지 않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흐른 후 우리 후손들은 더 이상 AI 상에서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기록하고 있는 데이터를 찾아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소버린(Souvereign) AI>에 대해 정부를 비롯해 온 국민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반려가족누림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한국디지털웰니스협회 부회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공)저서.
/ 더마켓(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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