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을 앞두고 끄적이는 이야기
나는 38년 만에 독립을 시도하고 있다.
처음 발을 디딘다는 건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혼자 살아본건 처음이다.
이전에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도 누군가와 방을 함께 공유해서 썼고, 다양한 인종들이 모인 쉐어하우스를 사용했었다.
오로지 혼자 사는 건 처음이다. 사실 혼자도 아니다 나의 반려견이자 노견 강아지를 데리고 나갈 생각이다.
어제 보증금의 10%를 가계약금으로 입금했다.
입금한 계약금의 집주인은 98년생으로 한창 어렸고 나와 띠동갑을 넘어선 나이였다
그동안 나는 뭐 했지?라는 생각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그렇다고 내가 막산 것도 아니고 계획 없이 산 것도 아닌데 나의 삶의 방향이 이렇게 흘러갔다
역시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
내가 독립을 시도 한지 3번째 만에 진짜 독립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2018년 암이 걸리기 직전이었다
엄마와의 관계가 더 이상 좋지 못하였고 회사 근처인 서울 쪽으로 알아봤다.
그렇게 알아보고 다니다가 흐지부지 되었고 19년 1월쯤 가슴에 덩어리가 만져졌고 5월에 진단을 받았다
두 번째는 암에 걸린 후인 20년 09월이었다
엄마와 사소한 주제로 말을 하다가 엄마는 점점 언성이 높아졌고, 프라이팬을 들고 집안 집기들을 부셨고 강아지 밥그릇까지 발로 걷어차는 등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였고
나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아빠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하지만 현실적인 벽(경제적 문제)에 부딪혀 이것 또한 흐지부지 되었다.
이번에는 24년 4월 12일이었다.
나는 현재 회사로 인해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는 상태였고 30일 퇴사를 앞두고 있었다,
“강아지 목덜미에 혹이 생겼어 병원 좀 가봐”
벌써 5번째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물론 설명은 해주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 혹은 주사 맞으면 일시적 뭉치는 현상이었고 마사지해 주면 사라지는 혹이었다.
나도 예민했다
“아니 그러면 엄마가 일 끝나고 강아지 데리고 병원 좀 가봐”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을 싹수없게 하네? 깐족깐족거리면서”
그러더니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고 현재의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쏟아내며 나의 인신공격과 더불어 성격을 들먹이며 네가 그 모양이니 회사에서 그렇지, 네 친구들도 널 싫어할걸? 네가 나한테 용돈을 줬으면 날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라는 둥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순간 무서웠다. 정신병자 같았다.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살았다
아빠에 대한 불만을 항상 나에게 쏟아냈고 어린 나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쏟아부었다.
난 그래서 아빠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경제적인 능력도 없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하지만 머리가 커가고 다양한 사람들은 만나면서 실질적인 문제는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부간의 사이는 좋지 않았고 별거를 오가다가 아빠는 집에서 쫓겨났고, 동생 또한 엄마의 히스테리컬 한 성격과 배려 없는 행동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집을 나가게 되었다.
이제 나 혼자 남았다.
나는 맏딸이었다.
사실 엄마가 정상은 아니지만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정말 끊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고 자식이 아닌 원수로 나를 대하고 있었고 인신공격과 더불어 모진 말로 나의 마음에 대못을 받아 두고 있었다
너무 슬펐다. 아니 슬프다 못해 우울감이 밀려왔고 엄마라는 사람이 딸에게 저렇게까지 모진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도 힘든 일인데 실제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렇다 나를 낳고 키운다고 해서 진정한 엄마는 아니었다.
그녀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이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그녀는 내 범주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을 하였다
내 마음은 서서히 닫혀갔고 지금은 완전히 닫혔다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에 나는 이제 그녀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나이 40에 엄마와 산다는 건 죄가 되었고 좋은 영향을 받지 못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도 하려한다.
나는 이제 그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