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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Aug 29. 2019

f(x), goodbye summer

조각글

f(x), pink tape(2013)





“졸업 축하해.”

“너도.”

“우리 촌뜨기, 이제 서울로 학교가면 도시 남자 되겠네.”


그럼 이제 우리는 멀어지겠지?


말 뒤편에 가려진 의미를 헤아리지 못한 우재는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몇 시간 전까지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던 강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희연과 우재가 걸터앉은 무대 뒤편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졸업식 현수막이 너저분하게 걸려 있었다. ‘제 8회 대웅고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고개를 돌려 눈으로 글자를 따라 읽던 희연은 졸업이 정말 축하할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너는 대학생 되면 제일 하고 싶게 뭐야?”


공허한 적막을 먼저 깬 건 우재였다. 이제 겨우 스무 살. 새로운 시작이 낯설기는 우재 역시 매 한가지였다.


“글쎄.. 생각해둔 건 많은데 막상 기억이 안 나네. 너는?”

“바보. 나는 여행 많이 다녀보고 싶어. 운전도 배워보고 싶고.”

“좋은 계획이네.”


희연은 의미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 밖 너머 주황빛 노을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


“희연아.”


신발 앞코로 바닥만 툭, 툭 차던 그녀의 발이 멈췄다. 붉게 상기된 우재의 얼굴에서는 소년의 총기와 성년의 우직함이 함께 느껴졌다. 우재를 응시하던 희연의 가슴이 묵직하게 저려왔다.


“만약 내가 좀 더 솔직했으면, 우린 달라졌을까?”


뜻밖의 말에 희연의 눈은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어쩌면 그는 희연이 가장 기다렸던 말을 꺼내려고 하는지도 몰랐다. 희연은 자신의 심장 소리가 우재에게도 들릴까 덜컥 겁이 났다. 우재 앞에서 그녀는, 자꾸만 망설이고 자꾸만 할 말을 잊었다.


“그랬다면 우린 달라졌을까?”


우재의 표정을 읽던 희연은 맥이 탁, 풀렸다. 우재는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의 눈은 심연과도 같아서, 희연을 생각의 틈으로 가두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속에 일상적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뙤약볕 아래 땀 흘리던 우재를 몰래 바라봤던 체육시간, 자율학습 전 우재와 함께 산책하던 운동장, 친구들의 놀림에 서로 손사래 치던 쉬는 시간까지. 자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빈 교실에서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던 날은 어제처럼 선연했다. 희연은 늘 우재와 함께하고 있었다.


“희연아, 좋아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제야 말해서 미안해. 담담한 우재의 음성은 짙고도 달았다.


..우재가 그랬던 것처럼, 희연에게도 온전한 용기가 필요했다.


“나도 좋아했어, 우재야.”

“..”

“그리고 네가 어디에 있든 앞으로도 널 좋아할게.”


희연의 손 위로 커다란 손이 포개어졌다. 눈물이 왈칵 날 만큼 따뜻했다. 그 순간 희연은 영원을 꿈꿨지만,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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