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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Oct 10. 2023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면

미끈한 마음을 안고



노트에 끄적끄적 글을 쓰다가 책상 끄트머리에 있던 볼펜이 저항 없이 툭 떨어졌다. 너무 당연해서 느끼기도 힘든 중력이 이 세계에는 작용하고 있었다. 순간 머리 옆으로 큰 트럭이 지나간 것처럼 어지러웠다. 나와 닿을 수 없는 연이라고 해도 슬픔을 잠재울 수는 없다. 눈을 감으면 나도 모르게 그의 마지막이 떠올라서 선잠을 자다 깬 것처럼 몇 번이나 고개를 가로 휘저었다. 마지막이 그렇게 씁쓸하고 괴롭지만은 않을 것이라 되뇌어도 그래도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듬성듬성한 마음 사이로 걱정이 스쳤다. 내가 인정해야 하는 것만은 그의 부재뿐만이 아니라 ‘그가 없는 매일’이었다. 그의 최측근도 아니면서,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슬픔의 무게가 과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공백이 외려 더욱 크게 와닿았다. 남은 사람들이 그에게 쓴 편지를 하나하나 읽으며 실은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인지 매 초마다 눈으로 확인했다. 흰색에 파란색 물감을 더하고 더하고 더해서 더 짙은 파랑을 만들어내듯, 내가 좋아했던 웃음을 볼 때마다 내가 그를 통해 얻은 기쁨의 범위가 점점 또렷하게 확장되고 있었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행동이 따라가지 못하니 마음에 검은 테두리가 생겼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나는 모두가 지향하는 성격은 되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기가 뼈아팠다. 혼자가 편하다고 다독이면서도 혼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시간보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백색 소음을 차단하는 게 익숙했던 시기. 나는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과 자기 연민을 솔직하게 표현한 음악을 좋아했다. 인정하는 게 지는 거라고 여기던 시절이었기에 내가 차마 할 수 없는 말들을 타인의 입을 통해 발화하고 싶던 마음이라고 지금은 이해한다.


올해 봄이 시작될 무렵. 큰 마음을 먹고 좋아하던 밴드의 공연을 다녀왔다. 2017년에 좋아하기 시작한 밴드의 공연을 2023년이 되어서야 처음 가본 셈이었다. 고작 공연 하나 보러 혼자 서울에 다녀오는 것조차 겁이 날 만큼, 무리 속에서 혼자인 나를 견디기 힘들었던 거다. 내가 항상 같은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아무도 모르는 안온한 곳에서 그들의 노래를 듣고 라이브 영상을 봐왔던 식이다. 무수한 망설임과 두려움을 지나고 커다란 공연장 앞에 서있는데 마음이 물큰해졌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무대로 올라오는 멤버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서, 노래가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누구도 알 필요 없는 눈물을 남 모르게 조금 흘렸다. 공연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미끄러지고 잔잔해졌다가 가속도를 붙은 것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롱부츠를 신고 4시간이 넘는 동안 서있어도 발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같이 서있고, 같은 마음으로 한 팀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 마음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같은 구간에서 뛰고,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훌쩍였다. 공연이 끝나고 아롱지듯 떨어지는 실내 폭죽을 보면서 이런 기억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큰 도움닫기가 되는지 깨달았고,

그 순간 뜬금없게도 그를 떠올렸다. 행복에 집착하고 싶지 않은데, 역시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해봐야 사람은 이렇게 행복해지는 거구나 싶어서. 내가 내년에 서울에 살게 되면 이제는 미루지 말고 너를 실제로 꼭 한 번은 봐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일 후 그의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한 공간에서 같은 추억을 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래 묵혀뒀던 다짐을 이제야 조금씩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를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네가 보고 싶었는데. 게으른 나는 항상 핑계만 많고 이유가 뒤따르고 그래서 결국 후회만 남는 식이었다. 왜 당연한 건 없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면서도 그와의 시간이 무한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을 고쳐먹기까지 ‘덕분에’ 가능했던 것들이 많다. 뭐라도 해보자며 미적대며 추레한 옷을 겨우 걸쳐서 동네 헬스장으로 길을 나선 날.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마음이 뭉그러져서 길에서 눈물이 나왔던 날,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그들의 노래는 여름볕만큼 따뜻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힘을 내보겠다고 원동력을 얻었다. 가장 찌질한 시기에 알게 된 가장 빛나는 사람들. 나는 그와 멤버들을 그렇게 기억한다.


각 계절은 고유한 냄새를 가지고 있고, 봄이 오면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길 바란다던 그였다. 또 하루의 계절이 지나고 있었다. 소속사에서는 추모 기간과 공간을 확대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토록 염원하던 서울에서 그를 만나야만 했다. 더 이상의 후회를 멈추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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