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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Nov 11. 2023

낮에 뜨는 달

비를 맞진 않았는지, 길을 헤매진 않았는지 기약 없는 물음만 던지면서.

먼지 쌓인 신발을 오랜만에 신고 외출했던 날, 집에 돌아오니 발뒤꿈치 살갗이 발갛게 부어있었다. 언젠가 잘 입지도 않을 원피스를 사던 날 같이 신겠다며 거금 5만 원을 주고 덜컥 구매한 구두였다. 신발장 구석에서 미미한 존재감을 뽐내는 이 구두를 신은 기억이 채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않을 정도인데, 그날은 한 시절을 함께했던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난다는 이유로 약간의 무리를 했다. 불편함을 알면서도 나는 굳이 그 신발을 신어야만 했고, 귀가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발에게 이제 그만 아파도 된다는 듯 연고를 덧대어 발라주는 것뿐이었다. 작은 상처였지만 씻을 때나 걸을 때, 신발을 신을 때도 따끔거려서 몇 번을 멈춰야 했는지 모른다.


나는 아플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너를 반추했다. 우리가 우리였던 적은 없지만 한때 네가 누구보다 제일 큰 존재였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점 하나 찍기도 두려웠던 나, 매일 선을 긋고 있던 너. 언젠가 한 번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너는 나를 잘 살고 싶게 만드는 무엇이라고 꼭 이야기해 주고 싶었는데.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거기에 항상 그는 머물러있다. 반면에 댓글은 이 세계를 잊지 말라는 듯 연민으로 가득하다. 그런 말이 이제 와서 다 무슨 의미가 있나. 마지막이 어떻든 나는 그의 크고 작은 행복을 안다. 처음으로 1위를 한 후 앵콜무대에서 눈물을 참아가며 불렀던 기쁨의 노래를 알고, 멤버의 작은 실수 하나에 땅을 치고 웃던 순간을 안다. 예쁜 단어를 골라 직접 쓴 시를 팬들에게 들려주는 사랑을 알고, 같은 일을 하는 동생의 춤 영상을 보고 초 단위로 조언을 해줄 만큼 자신의 일을 애정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안다. 가끔 그는 우울했겠지만, 이따금 조금씩 오래 행복했을 것이다. 빛나던 삶의 순간을 한쪽으로만 재단해서는 안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조금은 눈물이 났다. 내 청춘도 어쩔 줄 모르면서, 그렇게 충만하게 빛나던 그의 청춘이 그렇게 아쉽고 아까워서.




6월 6일, 그가 떠난 지 49일째 되던 날. 다음 날 연차를 내고 서울에 갔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기 위해. 처음 가보는 길, 가장 가까운 꽃집을 찾으려고 검색창에 소속사 이름 뒤에 ㄱ을 붙였더니 연관 검색어에 ‘근처 꽃집’이 가장 먼저 나와서 의외로 눈물이 핑 돌았다. 지도 앱을 켠 채로 몇 번이나 헤매서 도착한 곳에는 그의 상징색인 보라색 꽃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제 보니 꽃이라는 거 마음 전하기에 참 좋은 거구나. 나도 처음으로 꽃을 샀다. 사장님은 나 같은 사람을 숱하게 봤을 텐데, 마음을 담아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예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보라색 사이로 사지 않은 작은 꽃들이 채워져 있었고,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꽃다발에 묶인 리본은 보라색이었다. 가까운 지하철역 꽃집은 아예 노래 제목을 떡하니 붙여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던데, 생각하지 못한 따뜻함에 왜인지 다시 눈물이 좀 났다.

점심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옥상은 일찍이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볕은 내리쬐고, 하늘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소란하지만 적막하고, 한 켠에서는 눈물을 흘리지만 한 달 너머의 시간 동안 웃으며 그를 추억하는 방법을 배운 이들도 있었다. 생경한 장면이었다.


전부 다른 곳에서 같은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리운 사람을 기렸다. 꽃다발 옆에는 그리운 사람이 이제는 먹지 못할 음식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아마 그를 모르는 사람도 이 공간에 온다면 고인이 생전에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말을 자주 해왔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괜찮지 않을 거면서 팬들이 남긴 메시지에는 충분하다, 잘 했다는 말뿐이었다. 영겁으로 멈춰있을 것 같아도 시간은 지나고, 그 모든 상황을 뒤로하고 고인에 대한 애정을 빈틈없이 채워놓고 싶은 마음.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는 것도 어느 순간 조심스러웠다. 공감받지 못할 슬픔에 너무 유난처럼 보일까 봐서다. 나에겐 애끊는 슬픔이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겐 응, 안타깝네. 왜 그랬을까,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삶에서 여러 모양으로 이미 경험해 보지 않았나. 그래서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했다. 뒤에 일정이 없다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뜨거운 볕이 저물 때까지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웃고 있는 사진 반대편에는 팬들이 준비한 간식거리와 휴지, 물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울지 말라는 불가능한 말 대신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슬퍼하던 사람들은 울다가도 물을 마시고, 그러다 다시 울고, 가끔씩 천막 그늘 아래에 앉아 그가 좋아하던 사탕을 우물우물 입안에서 굴렸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고인은 공연장에서 다 함께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결국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있으니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단다. 혼자 공연에 간 사람이 사랑을 말미암아 쭈뼛대며 팔 한쪽으로 옆 사람과 반쪽 하트를 만들게 했던 그 사랑스러운 짓궂음은 결국 이렇게 서로를 향한 또 다른 연대와 사랑으로 표현이 된다.


처음 내가 작은 화면 속 그를 만나 좀 더 잘 살고 싶다고 희구했던 그때처럼, 나는 여전히 밤마다 그의 영상을 본다. 그곳에 가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불편한 신발을 신듯, 조금은 저릿할 걸 알면서도 아직은 어쩔 수 없는 습관이다. 나는 이제 그가 없어도 그를 좋아하는 방법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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