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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람 Jan 05. 2018

#4. 이사 가던 날

세상은 예상하지 못한 우연이 연속되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꿈을 만난 순간의 기억. 어떤 사람은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수많은 기억 가운데 하나 정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 기억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느 날, 꿈을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동을 품은 기억. 음악을 꿈으로 만난 그 날들. 그 기억을 꺼내봅니다. 그리고 그 찬란했던 순간을 다시 살아봅니다.


#4. 이사 가던 날


어렸을 때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친구가 되었던 걸까? 당시엔 정말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었던 걸까? 그 친구들을 지금도 여전히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영호는 한동네에 살던 친구다. 영호네 집은 우리 집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커다란 회색 철대문에 높은 담장, 잔디가 깔린 마당이 넓은 2층집이었다. 영호네 집에 가면 이상하게 주눅이 들었다. 그게 큰 집 때문이었는지, 높은 담장 때문이었는지, 혹은 동네에 하나뿐인 자가용 승용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거대한 검은 셰퍼드가 사납게 짖어댔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모든 게 전부 내겐 불편한 점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편한 것들과는 상관없이 영호와는 가깝게 지냈다.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가까운 건 분명했다. 영호와 나는 학교가 끝나면 같이 돌아오곤 했다. 내가 운동장에 앉아서 생각에 빠진 건 아마도 그 일 이후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이른 봄날, 나는 여느 때처럼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내 마음처럼 맑은 날이었다. 이사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나는 영호에게 학교가 끝나면 우리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오늘 이사하는 새집에. 


이사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전에는 이사 같은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집을 옮기는 거니까. 거기 담긴 의미나 감정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내 일이 되고 나니 이상한 감정이 생겨났다. 며칠 전부터 날짜를 세게 되고 가슴이 콩닥거리곤 했다. 그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어떤 모양일까, 어떤 색깔일까, 어떤 느낌일까, 나는 날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이사 준비에 분주한 모습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형과 동생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사하는 날 아침, 내겐 하늘과 바람과 영호의 기억만 남아있다.


들떠있던 내가 약도를 들고 앞장섰다. 어머니는 내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약도를 아주 상세하게 그려줬다. 학교 정문에서 오른쪽엔 어제까지 살던 동네가 가까이 있었다. 학교에서 나와 정면에 있는 큰길을 건넜다.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약도에 그려진 길을 찾아 걸어갔다. 짧고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언덕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학교가 보였다. 학교의 높은 벽돌담 너머로 운동장과 건물이 보였다. 전에 살던 곳보다 확실히 높은 곳이었다. 어제까지 살던 집은 장마철이면 굵은 물줄기가 생기는 작은 하천 근처에 있었다. 주변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큰비가 오면 물이 넘치곤 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였다. 그해 여름, 하천을 채우고 넘친 물이 우리 집 대문을 지나 영호네 집 근처까지 흘러갔다. 계핏가루를 섞은 것처럼 붉은 황토색 물이었다. 나는 방 창틀에 올라서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거센 황토색 물줄기가 길을 가득 채운 채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 집 마당에 물이 넘쳐 들어올까 봐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엔 어머니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그 시기의 거의 모든 장면에는 어머니뿐이었다. 어머니는 흐르는 물을 걱정스레 바라봤고, 나는 두려움보다 아주 조금 더 큰 호기심을 느끼며 창틀 위에 서 있었다. 집에는 어머니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도 형도 없는 집에 큰 물이 들어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때 느낀 감정은 불안감이라기보다는 외로움이었다. 


언덕 위엔 곧은 길이 이어졌다. 길 양쪽으로는 주택이 서로 가까이 붙어 있었다. 골목은 우리 동네보다 좁았지만, 확실히 비가 많이 와도 잠기지는 않을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새로 이사 가는 집이 벌써부터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새집은 2층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넓은 마당에 커다란 자동차가 서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 사라진 강아지 메리가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높은 담에 대형 철재 대문이 달린 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호가 우리 집을 보고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여러 개의 ‘어쩌면’이 내 마음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어쩌면'은 확실히 그렇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런 종류의 기대감은 처음이었다. 


약도에는 중학교가 그려져 있었다. 새로 이사 가는 집은 그 중학교 정문 바로 앞에 있었다. 나는 영호보다 한 발 정도 앞서서 걷고 있었다. 저 멀리, 약도에 그려진 중학교 정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문 옆으로 작은 문구점이 몇 개 있었고 그 건너엔 주택이 하나 있었다. 짙은 남색 페인트를 칠한 대문은 아주 높아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그 주택 바로 옆으로 작은 골목이 있었다. 골목은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이었다. 그 주택은 내리막길에 축대를 높이 쌓고 그 위에 담을 세웠다. 담장 안으로 커다란 유리를 달아 놓은 3층 건물이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심장 소리가 북소리처럼 귀에 들렸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그건 기대했던 것을 뛰어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집에 마음을 빼앗겨 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집의 모양이 선명하게 보였다. 담장 위로 붉은 덩굴장미가 가득했다. 담장은 옅은 회색이었고 주택은 그보다 조금 짙은 푸른빛이 살짝 감도는 회색이었다. 창문은 모두 검정색 새시였다. 유리와 새시 모두 잘 닦여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지붕은 매끄러워 보이는 푸른색 기와로 덮여 있었다. 보이지 않는 담장 안의 분위기가 신비롭게 느껴졌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이름 모를 영주의 성을 바라보는 여행자가 된 것 같았다. 세상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집이 있었던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주변의 초라함 덕분에 더 빛이 났다. 


주택 옆, 가파른 작은 골목이 시작되는 곳에는 허름한 집이 한 채 있었다. 문구점 간판이 달린 낡은 기와집이었다. 그곳에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남자 셋이 짐을 나르고 있었다. 이삿짐이었다. 트럭에서 짐을 내려서 안으로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집과 같은 날 바로 옆집에도 이삿짐이 들어오다니. 나는 이삿짐이 실려 있는 트럭의 낡은 모습에 눈이 갔다. 원래는 흰색이었을 더러운 트럭은 여기저기 녹이 슬고 군데군데 힘없이 부서진 곳도 제법 많이 보였다. 전조등마저 하나가 깨져있었다. 트럭에는 이제 짐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트럭에 가까워지자 짐을 나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한 사람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그 얼굴이 내 작은 숙부라는 생각이 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우리 아버지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작은 숙부가 낡은 트럭 기사와 함께 짐을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문구점 간판이 걸린 허름한 그 집이 보이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영호가 나를 따라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았다. 내 심장은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큰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 머리는 기능을 멈추고 말았다. 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 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침내 생각이 의식 표면에 떠올랐고, 우리가 새로 이사하는 집이 바로 이 허름한 문구점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얇은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 갈게.”


영호가 하는 말에 잠시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영호를 잠시 쳐다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영호는 그렇게 서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알았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서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영호가 떠난 뒤로도 그냥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지금 그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당시의 내 모습은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집안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어떻게 상세하게 그려진 약도를 들고도 우리가 이사 가는 집이 큰 주택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을까? 어찌 그리 철이 없었던 걸까?


나는 큰 기대가 절망감으로 변하고, 그 감정이 내 온몸을 물들이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절망감은 그날 이후 내 안에서 자리 잡고 더 크게 자라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절망감은 영호에 대한 열등감으로 변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그날 이후로 영호와는 서먹해졌다. 결국,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식에서조차 사진 한 장 같이 찍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날 이후, 나는 학교 운동장에 혼자 앉아서 내가 가야만 했던 커다란 3층 주택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건이 결과적으로 내가 밴드부에 들어가고 또 태권도부에 들어가게 된 계기였다는 건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예상하지 못한 우연이 연속되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걸 그때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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