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
"좋은 작가가 되기위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요?"
어느 작가 지망생이 유명한 작가에게 물었다. 그 유명한 한국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휘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니까 남들이 쓰지 않는 단어를 찾아 그 뜻을 익히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한국작가들의 책 속에는 그런 종류의,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보통의 상황에서는 잘 쓰지 않는 희귀한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당연한 얘긴지도 모르지만, 번역문학 속에서는 이러한 희귀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외국 작가들은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어느 틈엔가 조금씩 많아지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시나브로 많아지고 있었다."라고 번역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아주 가끔 한국 고유어를 특별히 사랑하는 번역자가 등장해서 이런 식의 번역을 하기도 한다.)
그 유명한 작가가 얘기한 희귀한 단어를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일은 번역 문학에서는 불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평범한 어휘력 수준의 번역 문학은 실제로 국내 문학 작품보다 훨씬 많이 읽히고 그만큼 많이 팔리고 있다.
이 현상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순한 생각이 때로는 무엇보다 정확하기도 하니까.) 좋은 작가가 되고 좋은 글을 쓰는 건 어휘력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인다.
스티븐 킹Stephen King은 좋은 작가가 되는 방법으로 어휘력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영감을 얻는 방법과 그것을 글로 옮기는 동안 영감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천재적인 작곡가들이 때로 자신의 작품을 '신의 음성을 받아 적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점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스티븐 킹이 말하는 것처럼 영감을 밑천으로 글을 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영감이 신에게서 온다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신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는 차치하고, 무의식과 의식을 초월한 상태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한 편의 글이 예술이 되느냐 아니냐의 중요한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물론 결과론이지만, 자신의 작품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킬 영감을 얻는 방법은 어휘력을 기르는 훈련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러니까 영감은 몰입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점이 중요한 핵심 포인트다. 핵심은 어휘력이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영감을 얻으려면 몰입해야 한다. 그리고 몰입하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필수다. 영감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바로 영감을 얻는 방법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스티븐 킹은 자신의 뮤즈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지하실에 살고있는 거만하고 까칠한 성격의 우락부락한 남성 뮤즈를 찾아간다.
뮤즈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가 여러분의 집필실에 너울너울 날아들어 여러분의 타자기나 컴퓨터에 창작을 도와주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주는 일은 절대로 없다. 뮤즈는 땅에서 지낸다. 그는 지하실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여러분이 뮤즈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내려간 김에 그의 거처를 잘 마련해줘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낑낑거리는 힘겨운 노동은 모두 여러분의 몫이라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이 재미있는 책,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를 읽다 보면 마치 모든 종류의 인생이 영감이라는 단어로 귀착하는 느낌이 든다. 무슨 일을 하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 내는 사람은 언젠가는 성공하게 된다는 인생 성공 공식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쓴 여행기 '먼 북소리遠い太鼓'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그의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다. 심지어, 글쓰기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읽어도 자신의 삶을 영감 가득한 인생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점이 이 책의 진짜 소중한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그의 책에는 희귀한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그의 책에 희귀한 단어 따위는 필요 없다. 평범해 보이는 단어로 만들어진 쉬운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특별한 감동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