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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람 Oct 23. 2017

의식 없이는 현실도 없다

1Q84, 색채가 없는... /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

1Q84가 처음 나왔던 2009년, 이전 어느 작품보다 세계적인 대중의 관심이 대단했던 걸로 기억한다.


언제나 진지하고 심각한 기존의 주류 일본 소설과 달리 그의 작품은 '진지하긴 하지만 심각하지는 않은' 약간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작가의 분위기와 철학이 모든 작품을 관통하고 있었기에 독자층이 세계적으로 형성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1Q84는 뭐랄까, 타협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건 완전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1Q84가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내 관점에서 1Q84는  '양을 쫓는 모험'으로부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거쳐 '해변의 카프카'에서 완성한 듯한 그의 무의식과 환상의 세계에서 두 발짝쯤 벗어난 느낌이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일련의 환상이 등장한다. 그 환상은 무의식 속에 각인된, 그러니까 본인의 주관적이고 적극적인 '그 무엇'과는 정반대의 요소다. 그 어찌할 수 없는 '운명'같은 요소에 주인공들은 대부분 저항한다. 그리고 변화를 시도한다. 결국, 자살로 끝이 나기도 하지만, 그런 저항이 우리 삶의 가치를 찾게 만들어준다는 식의 '느낌'을 꾸준히 유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재미있다. 위의 설명처럼 뭔가 복잡할 것 같고 무거워야 마땅한 주제를 하루키만의 유머와 상쾌한 묘사로 '재미'를 만들어 낸다. 아마도 이런 점이 그의 매력이 아닐까?


1Q84에서는 그의 세계가 변화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독자들이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마치 '지금까지 제 세계가 어렵다고 느낀 분들에게 알맞은 형태로 변화를 주었습니다' 같은 느낌이다.

한편 2013년 발매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하루키의 다른 모습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1Q84'로 이어지는 그의 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꿈과 같은 밤의 모습이라면 이 작품은 현실적인 낮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부터 대표적 성공작인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이어가는 그의 현실 이야기의 최신 버전인 셈이다.

하루키는 현실과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의식의 이야기를 각각 다른 작품에서 다룬다. 관점이 극단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다른 작가의 작품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의 현실 속에서도 의식은 환상으로 등장하고 작용한다. 반대로 의식 속에서도 현실은 존재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현실 없이는 환상도 없으니까. 의식 없는 현실은 없으니까.


과연 의식과 현실을 어떻게 균형을 맞춰나갈지가 숙제다. 그의 작품에서 항상 던져지는 문제다. 

흥미진진하지만 반복되는 주제. 독자들과 거리를 좁히는 듯한 요즘의 작품을 보면 그가 이미 70세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실감한다. 1949년 생인 그가 60년 이상을 살아온 현실 세계, 그리고 거기서 만난 독자들과의 소통. 그의 의식에 대한 통찰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후련하게 전달되기는 어렵다는 걸 자신도 알게 된 걸까? 그래서 두 발 정도 독자들의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본 걸까?


확실히 '1Q84'와 '색채가 없는...'은 전작들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그의 진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읽고 거기서 삶의 근원이 되는 의식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감지하기를 독자의 한 사람으로 소망해본다.


오늘, 매력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는 여행기 '먼 북소리'를 다시 꺼냈다. 어찌 되었든 하루키를 통해 보는 세상이 내가 직접 보는 세상보다 재미있다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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