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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지강씨 Sep 03. 2023

아름다움의 어원


15세기 문헌 석보상절에 이르길 당시의 수행자들은 '아름답다''아답다(我답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아(我)는 나라는 뜻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말은 곧 '나답다'로 바꿔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생각해 보면 아름답다는 말은 절대적 정답이나 진리가 있는 단어가 아니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대상과 남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든다면 보기에도 좋고 아름다울 것이며 내 기준과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라면 남들 눈에 아무리 아름다워 보인다고 한들 그게 무슨 대수랴? 이렇게 놓고 보니 아름다움의 기준이란 결국 나 스스로에 있는 것이므로 '나스럽고, 나다운 건' 아름다움과 통하게 되어 있다. 아하, 수행자들은 결국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깨달음의 시초로서 아름다움을 논한 것이었구나.



아름다움의 정의에 대해 파고들다 보니 어떨 때 내가 이 말을 쓰게 되고 무엇을 대상으로 쓰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해질 무렵의 한강, 누워서 바라본 9월의 하늘, 여행지에서 우연히 들어선 기대이상의 공간, 축구하는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낸 팀 골, 관객 10명이 채 안되어 발 뻗고 즐길 수 있는 심야의 영화관, 차 안에 혼자 크게 틀어 둔 음악과 고성방가, 다양한 경험과 시각 지성이 부딪히는 토론의 장, 되새겨 읽게 되는 유려한 문장과 밑줄 친 글귀 한 줄, 수개월 함께 노력한 프로젝트를 자축하는 2차 맥줏집 구석 어느 테이블, 편한 친구에게 실없이 걸어 본 전화 통화(미래에 대한 걱정도 지금은 즐거워),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꼭 안아줄 때 느껴지는 체온과 심장의 두근거림, 우연히 퇴근시간이 들어맞아 온 가족 함께하게 된 어느 평범한 저녁 식사.


어떤 대상을 보고 겨우 예쁘지 아니하고 아름답다 느끼며 호감을 가질 수 있는 형태의 것, 개념적인 것들이 인생에서 점점 많아진다는 건, 한편으로 이 세상에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동안 만들어지고 인위적인 아름다움에 천착해서 나를 잃어가는 시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 시기를 결국 어떻게 극복했더라? (극복이 다 된 건 맞을까? ㅎㅎ) 너무 애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나를 스스로 마음껏 사랑해 줄 수 있을 때 궁극적으로 바라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다시 되새겨 본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 안아주고자 하는 마음일 수도 있으며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자신답게 사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임을. 눈앞의 것에 취하지 않고 좀 더 멀리 보고 깊게 사유하는 나다운 내가 될 수 있길 다시금 깨달은 어느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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