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을 잃은 남편을 위해 지난밤 지누아리를 무친 것을 맛보라며 내어주셨다. 한 입만 맛보려던 것이 두 입이 되고 세 입이 되었다. 간장 물로만 졸였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접시에 담아주신 전부를 다 먹어 버렸다. 뭔가 마법의 양념 소스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더 보탠 것이 없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만드는 법을 설명해주는 이야기 속에서 엄청 중요한 걸 하나 알게 되었다.
보통 ‘불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물에 불리는 것으로 많이들 생각한다. 지누아리를 먼저 불려야 한다고 들었을 때 으레 물에 불려야 한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하마터면 치명적인 실수를 할 뻔했다. 지누아리는 절대 물에 불려선 안 된다. 간장물에 지누아리를 불려야 한다.
간장물에 끓여서 펄펄 끓여서 넣어야지. 설탕, 물, 간장 팔팔 끓여서 넣어야지.
"거기다가 한 김 나가면 그때 넣으면 돼. 이건 뜨거울 때 넣어야 돼. 안 그러면 느른해져 버려. 가만히 있으면 차츰차츰 붉어지면서 불는다고. 그때 이렇게 저어줘야지. 마늘 넣고, 물엿도 좋고. 고추장 넣으려면 넣고. 1년 놔둬도 안 망가져요."
건조된 것을 보통 물에 불렸던 기억밖에 없는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요리한다는 것이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 지누아리는 그래야만 했다. 지누아리를 물에 불리는 순간 색이 변하면서 망가진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손님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전화가 오더라고. 빨리 나오라는 거야. 나갔더니 지누아리를 썩은 걸 팔았다고. 돈을 내놓으라고 하더라고. 썩은 걸 팔았으니 돈을 달래. ‘아줌마 얼른 가져가요. 망신당하지 말고.’ 보니 새빨간거야. 민물에 불려서 묻혀 온 거지. 딱딱해서 민물에 불렸대. 그리고 얼렸대. 냉동실에. 불렸더니 거품이 그렇게 나더래. 거품이 나면 맛이 없어. 말린 상태 그대로 해야지. 민물로 하면 빨개져서 못 쓴다고.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니 그다음에 와서 미안하다고 하더라고."
혹시 지누아리 무침을 시도했다가 예전 맛이 아니었던 이유, 지누아리 맛을 살리지 못했던 이유가 어쩌면 이 실수 때문이 아닌지 싶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짚어주셔서 다시 한번 더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한순복 해녀 선생님의 짭조름하면서도 달짝지근했던 지누아리 무침이 아른아른거린다.
현재 영진해변엔 그녀를 더해 5명의 해녀가 있다고 한다. 일흔을 넘긴 한순복 해녀가 막내다.
60대 때는 펄펄 날았어.
그녀의 한 마디에 웃음꽃이 핀다.
“물건을 해서 가지고 오는 건 괜찮은데. 운반하기가 힘이 들어서. 우리 아저씨도 (운반을) 같이 하는데. 이제 몸도 안 좋고 이러니. 바다 가면 사람이 욕심 있잖아. 물건이 많으니까. 가지고 육지에 들어오면 집까지 가져오기 힘들어. 리어카 싣고 와야 하니 힘들지. 바다 일이 진짜 힘들어요. 남 보기엔 우스운 거 같아도.”
더 이상 물질을 배우는 사람도 없는 상황. 그녀는 고생스럽기만 한 일 뭐 좋은 거라고 배우냐며 명맥이 끊길 위기를 덤덤히 이야기할 뿐이었다. 바닷속에서 자라는 지누아리는 해녀만이 채취할 수 있는 일. 해녀의 명맥이 끊긴다는 건 지누아리 채취가 끊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누아리가 돋는 바위에 한 개도 없다가도 머리 같은 게 야들야들한 게 올라온다고. 길이가 요렇게 올라오다가 이만해지고. 파도치고 하면 또 이렇게 길어지고. 속에서 나오는 거라 좋아. 진이 이렇게 나오잖아. 그래서 이게 좋은 거야. 그렇게 올라오는 거 보면 신기해요.”
40년이 흘러도 지누아리가 바위에 돋아나 커가는 과정을 보는 일이 여전히 신기하다고 말하는 한순복 해녀. 지누아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느끼고 돌아오는 길. 지누아리에 대한 생각이 더 애틋해지는 날이었다.
*3편에 걸친 마법의 단어, 지누아리
한순복 해녀와 함께 나눈 이야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이든 팀의 <지누아리를 찾아서>
여정의 일부를 전했습니다.
연재글로 전하지 못한 이야기는
연말에 작은 책을 통해 전할 예정입니다.
책이 나올 무렵 소식 전하겠습니다.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습니다. 무단 도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발견될 시, 법적 책임을 묻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