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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블리 Nov 04. 2019

어른이 된다는 것

- 초등학교 때 다 컸다고 생각한 애늙은이였지만


'다 컸다고 생각했었다'


 태어날 때부터는 아니었겠지만 제법 아기였을 때부터 내 방이 있었다. 너무 잘 자서 함께 잘 필요가 없었다고 부모님은 우스갯소리로 말을 했지만 그만큼 독립적으로 키워졌다. 유치원 때는 갓난쟁이 동생들이 태어나 왕언니가 되었다. 부모님이 동생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도 혼자 씩씩하게 잘 컸다. 그리고 IMF와 함께 부모님이 맞벌이 전선에 뛰어든 이후부터, 마치 집안의 가장인 양 동생들을 부렸다. 아마 그쯤부터 '다 컸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요즘 말하는 중2병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이런저런 상황에 힘입어 일찍부터 스스로를 '다 컸다'라고 어른이라고 여겼다.


 30살이 넘어선 지금, 멋모르고 성숙한 척하던 그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왠지 웃음이 난다. 쪼그마한 게, 세상 물정 따윈 하나도 모르고, 제대로 된 이별도, 제대로 된 실패도 해보지 않고, 어른인 척하는 풋내기 같은 생각이 든달까. '어른'이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부모님 도움 없이도 씩씩하게 잘 있으면 되는 건지 알았는데, 진짜 어른이 되어가다 보니 이불 킥 하게 할 만큼 그때가 오글거리기 때문일까. 아무튼 진짜 어른이 된다는 의미를 익혀가는 삶, 그게 30대의 삶인 것 같다.




 어렸을 때 나는 나만 열심히 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믿었었다. 열심히 해서 결과가 명쾌하게 나오는 일들을 좋아했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몰아세우던 때도 있었다. 도와주지 않는 환경을 원망하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거듭하면 할수록 나만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를 도와줄 사람, 주어진 시기, 약간의 운 그리고 그제야 빛날 수 있는 나의 노력, 소위 말하는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줄 때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었다. 반복된 실패를 통해서 나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여야 삶이 빛나는 것을 깨달을 때쯤 좀 더 성숙해졌었다. 


 지금보다 사랑에 애송이 일 때 서로 좋아하는 감정만 있으면 뭐든지 표현해도 되는지 알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매달려도 보고, 떼어내도 보면서, 예의 없는 이별을 해보면서, 사랑은 감정만으로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나의 감정이 존중받아야 하듯이, 상대방의 감정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나의 슬픔이 아프고 힘들듯이, 곁에 있는 사람의 슬픔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만큼 서로에게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아가는 중이다. 이제는 나의 감정을 몰라준다고 떼쓰는 어린애가 아니라 한 발 물러서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해보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알았을 때,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는 어린애가 아니라, 못 사주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됐을 때, 그때가 한 발 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큼이나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마음이 아플 때는 오히려 몸을 건강하게 해야 한다는 것, 나와 평생 살아갈 사람들을 챙겨야 인생이 풍요로워진다는 것, 상실은 진짜 상실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것, 작은 일에 기뻐할 수 있어야 큰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 인생의 어려움들을 겪어내 가면서 쌓인 삶의 경험칙들이 쌓여가는 것, 돌이켜보면 마냥 기쁘고 즐거운 세월은 아니지만 한 순간이라도 겪지 않았으면서 지금의 내가 없음을 알게 되는 것. 그게 30대의 내가 느끼는 어른이라는 감정 같다.



 

 가끔 진짜 '어른'은 어떤 것일까를 상상해볼 때가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바라보는 나는 얼마나 풋내기 같을지, 많이 내려놓은 것 같지만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 나를 얼마나 귀엽게 여기실지, 내게 닥쳐올 얼마나 많은 문제가 남아있고 그것들을 나는 또 어떻게 헤쳐나갈지, 가끔은 숨이 막히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지만 많은 난관들을 지혜롭게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 '진짜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12가지 지혜' 같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전파하면서 한결 여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마치 지금의 내가 좀 더 어린날의 나를 바라보면서 귀엽게 여기듯이.



by. 쏘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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