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시간에 만났던 갈라파고스에 다녀오다(물 위)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 나의 마음이 그 결정에 대해 49에서 51로 넘어간다면 이후 나의 모든 사고는 나의 결정이 합당하다고 결론을 내준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구 반대편 여행을 결심했을 그때, 회사 선후배들은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굉장히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일단 복잡한 모든 이유를 제쳐두고, '회사 그만두고 갈라파고스에 가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갈라파고스는 나에게는 현실에서 벗어난 해방과 자유로움의 상징이었다.
수년전,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다녀온 어떤 이가 가장 좋았던 장소로 갈라파고스를 꼽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 막연히 갈라파고스를 동경하게 되었고, 결국 나도 그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갈라파고스를 가게 되었다.
갈라파고스 제도, Islas Galapagos는 에콰도르령으로 태평양의 화산섬과 암초들로 이루어진 섬들이다.
지구 반대편 여행을 계획했을 때, 에콰도르를 가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갈라파고스를 가기 위해서였다.
나의 갈라파고스에서의 9일은, 너무나 짧디 짧게, 쏜살같이 지나갔다.
바다사자를 동네 개처럼, 이구아나를 길냥이 보듯 볼 수 있는 곳
학창 시절 다윈의 진화론을 배우며 갈라파고스를 생에 처음 접한 것 같다. 찰스 다윈 연구소도 있고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관리 사무소는 물론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하여 철저하게 생태계를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곳이다. 그만큼 육지에서 보기 힘든 동식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 모든 동식물들을 만나기 전에 명심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갈라파고스의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 동물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갈라파고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도, 내려서도, 들어오면서도 계속해서 강조되는 것이다.
갈라파고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거북이
가장 먼저 만난 것은 공항에서 숙소들이 밀집해있는 항구 쪽으로 내려오다 만난 거북이. 거북이 서식지가 따로 있지만, 차를 타고 가는 길에서부터 거북이를 만났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3개의 큰 섬, 산크리스토발/산타크루즈/이사벨라 섬 모두 다른 종의 거북이가 산다고 한다.
거북이 서식지에 가면 정말 가까이서 거북이를 볼 수 있다. 육지에서 서식하는 거북이도 거북이지만, 바다 거북이 또한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산타크루즈 섬의 거북이 서식지, 엘찬토에서는 거북이 서식지를 관광지처럼 꾸며두어, 내가 거북이가 되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멕시코에서도 바다거북이를 많이 봐서 신기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거북이 짝짓기 하는 장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바다에서 짝짓기 하는 장면은 아마 다시 보기 힘든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네 개처럼 널브러져 있는 바다사자
갈라파고스에서 만났던 신기했던 장면은 바다사자가 동네 개처럼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 모습에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면 갈라파고스에 입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인증하는 꼴.
이 섬에서 2~3일만 지나다 보면 알게 된다. 부둣가에 나가면 동네 개만큼이나 바다사자를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을.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도시에서, 빌딩 안에서 각박하게 살던 내가 떠오른다.
보란듯이 늘어져있는 모습은 물론이고 어쩐지 해탈한듯한 표정은 도시에 쪄들어있던 나를 향한 표정인 것 같다.
배를 타기 위한 길목에 바다사자가 누워있었다. 내가 다가가도 전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유의 끄억끄억 소리를 내며 나보고 돌아가랜다.
사실 가이드도, 섬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바다사자(Sea lion)라고 불렀지만 물개인지 바다사자인지 정확한 구분은 못하겠다. 저 평온한 표정 아래 이름이 얼마나 중요하리. 갈라파고스 강치가 있으니 바다사자라고 하자.
가장 많이 만난 것은 이구아나
바다사자보다도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구아나였다.
해변에 누워 있으면 내 옆에 이구아나가 다가온다. 내가 식겁해서 도망가지, 이구아나는 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방문한 시기가 또 마침 이구아나도 짝짓기 시기라고 한다. 이구아나는 짝짓기 시기에만 구애를 위해 화려한 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다른 시기에 오면 회색 빛깔의 이구아나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거북이에 이어 이구아나까지! 사랑이 넘치는 갈라파고스였다.)
너무나 귀여운 파란 발 부비새
갈라파고스에서 만난 생물들 중 귀여움을 맡은 녀석은 갈라파고스에서만 관찰된다는 파란 발 부비새.
가까이서는 보지 못하고, 투어 중에 떼 지어 있는 새들을 만났는데 어찌나 발이 새파랗던지 너무 신기했다.
파란 발 부비새라니, 내가 지구를 반 바퀴를 날아 갈라파고스에 들어왔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갈라파고스에선 다양한 조류들을 볼 수 있는데, 조류들 역시 사람을 크게 무서워하지 않았다. 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중에 먹이를 낚아채려고 날아드는 모습에 내가 무서워 피했달까.
우리나라에선 보지 못했던 식물들이 가득했다.
동물에 대해서도 자세히 모르지만, 식물은 더더욱 문외한인 나에게 갈라파고스는 사실 동물들만 보기에도 바쁜 곳이었다.
파충류, 포유류, 어류, 조류.. 숙소 밖, 가는 곳마다 동물원에서도 보기 힘든 생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식물학자가 아닌 나에게 사실, 식물들은 눈길을 끌진 못했다.
하지만 화산섬인 갈라파고스의 독특한 지형들, 우리나라에선 보지 못했던 식물들을 내륙지역에서 볼 수 있다.
숙소 근처에 있던 Tortuga Bay, 또르뚜가 베이는 관리사무소에서 바다까지 가는 길이 꽤 멀다. 길에서 만난 갈라파고스 현지인이자 스쿠버다이빙 및 서핑 강사 무리들을 만났는데 벌레를 쫓는 식물, 굉장히 좋은 향이 나는 식물, 씹어먹어도 되는 식물 등을 걸어오는 긴 길에서 보일 때마다 가르쳐주었다.
더운 지역이어서인지 선인장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던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식물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갈라파고스의 동식물 이야기를 이렇게 짧게 끝내긴 아쉬워, 2편에 나누어 쓰려고 한다.
다음 편은 물 속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