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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Oct 09. 2021

편지

이 편지는 1992년에 시작된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생애 처음으로 편지를 써본 적은 유치원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어버이날 기념으로 다니던 유치원에서 시켰던 감사편지. 카드 안에는 어린아이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글씨체로 ‘엄마 아빠에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흔한 문구와 웃는 얼굴인가 카네이션인가를 그려 넣은 게 전부였던 첫 편지. 그리고 매년 어버이날에는 조금 더 길고 자세하게 감사하다는 말을 적곤 했다.

이후로도 편지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전달하기 위해 쓰였다. 비뚜름하게 찢은 수첩 위에 여전히 서툰 글씨로 '너를 좋아해'라고 쓰던 첫 고백에서, '이 편지는 1894년에 쓰여...'로 시작하는 행운의 편지를 지나, 정말로 '편지'라는 것을 쓰기 시작한 때는 좋아하던 친구가 대전으로 전학을 간 이후부터였다.


서로를 지워버리기 위해 매일같이 싸우던 부모 밑에서는 좋아한다는 개념을 찾을 수 없었기에 책이나 티브이에서 상상할 수밖에 없었는데, '너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어.'라는 말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때 그 친구를 보고는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건 사랑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친구가 전학을 간 뒤로 매일 같이 편지를 썼다. 누구랑 누가 뭘 했다더라 하는 심심한 일상 이야기를 재미있을법하게 약간의 과장을 넣어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 낯선 곳에서도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많이도 써서 보냈다.


중학교 3학년 처음으로 휴대폰이 생기면서-할머니와 같은 모델의 보급형이었지만- 11자리의 숫자를 적어주며 나도 휴대폰이 생겼으니 이 번호로 연락 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기다리기를 며칠. 드디어 너도 휴대폰이 생겼네. 축하해.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후로 문자는 종종 편지를 대체했다. 하지만 친구는 대체로 연락을 기다리게 하는 편이었고, 문자에 답신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고향을 떠나서 사는 것은 힘들고 치열한 일이겠거니 하고 우두커니 앉아 보낸 메시지 함을 뒤져보곤 했다.


어느 날인가 문득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던 때가 있었다. 그 친구의 생일 즈음이었나. 언제였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과 함께 동행하는 일 외에는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터미널에서 대전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은 것은 나름 특별하고 소중한 충동이었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부터 심장은 요동쳤다. 그때는 지금처럼 고속도로가 없어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는데, 음악 없이도 그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윽고 내린 대전터미널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대전에 왔어. 시간 되면 볼 수 있어? 갑작스러운 방문에 친구는 적잖이 놀랐다. 정말로 올 줄은 몰랐어. 어쩌면 대전에 놀러 오라는 말은 빈말이었는데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덜컥 와버린 것은 아닐까 할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이후의 일은 많이 흐릿해져 그 친구를 만났는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밥은 먹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다시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서 무겁고 슬픈 마음으로 울음을 삼킨 채 차창 밖으로 내리는 빗물을 바라보았던 것만 기억에 남았다. 대전을 다녀온 뒤 편지를 쓰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혼자만의 착각일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고등학고 2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그 친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낯선 타지에서의 생활을 적응하기 힘들었거나, 외할머니의 사정으로 같이 살지 못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일이 있어서 돌아왔는지보다 그저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들떴다. 그 친구는 다시 한번 낯선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같은 반으로 배정받았다. 친구와 같은 반 생활을 하며 편지는 거의 쓰지 않게 되었는데, 한 번은 집안에서의 고충을 담은 편지를 써서 보여줬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정신건강을 잘 살피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고민이 치부가 되는 것만 같아 부끄러우면서 편지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는 혼자만의 사정은 편지에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편지보다는 시 쓰기를 좋아했다. 짧고 은유적인 말로 그럴듯하게 적어놓은 것을 보면 아무도 해석할 수 없는 기호로 적어놓은 암호문 같았다. 편지와 시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있다. 흰 종이에 검은색 잉크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헤집고, 글자에 현재를 담고, 읽는 사람에게 도착할 미래가 담겨 있는 것이다. 다만 편지는 읽는 이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고, 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만 글을 쓰는 일은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종종 글로 누군가에게 읽힐만한 문장을 쓰곤 했다. 말은 직접적인 표현이고, 글은 2차적인 표현 수단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끔 말이라는 것은 주의를 하지 않으면 부주의하게 나올 때가 많아 말보다는 글이 더 편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종이 위에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보다는 손가락 두어 개로 화면을 터치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 한참 유행하는 SNS에 오늘의 날씨가 어땠다던가, 교수님의 과제가 많다던가, 맛있게 먹었던 저녁에 대해 쓰곤 했다. 세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세계가 드러나서는 안됐다. 그것을 들키는 순간 치부가 되어 두고두고 회자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것은 쉽게 잊히지만 글은 파괴되는 순간까지 유효한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받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없는 글자의 망령만이 떠도는 이 편지에 나를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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