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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말 Apr 21. 2022

[행동] 재키로빈슨, 행동과 연대로 미국 사회를 바꾸다

재키 로빈슨 데이, 그리고 한국 사회가 바꾸어 나가야하는 것

“베이브 루스가 미국 야구를 바꾸었다면, 재키 로빈슨은 미국 역사를 바꾸었다”

미국 최초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들이 뛰는 메이저리그(MLB)에선 4월 15일이 되면 모든 선수가 똑같은 등번호를 달고 경기에 나선다. 그 숫자는 바로 ‘42’. 이 숫자는 바로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이자 최고의 야구 선수였던 재키 로빈슨의 등 번호였다. 미국에서 야구라는 스포츠는 백인들을 위한 전유물과도 같았다.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이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하물며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흑인이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는 것은 백인들에게 있어 모욕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흑인들은 오로지 니그로리그라고 하는 별개의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1868년 이래 미국은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흑인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차별이 아닌 평등을 위한 시대적 움직임을 보여왔으나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여러 주는 여전히 인종분리정책을 유지하였고 일상생활 중 흑백 간 분리(대중교통, 화장실 이용 등)는 너무나 당연하였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고 변화의 흐름을 가져온 사람이 바로 재키 로빈슨이었다.


재키 로빈슨은 천부적인 운동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야구뿐만 아니라 미식축구, 농구, 육상 등에서 우수한 기록을 냈다. 하지만, 그는 흑인이었고 그의 기록은 평가절하되었으며 어느 프로구단도 그의 기록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다행히,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흑인들로만 이루어진 니그로 리그에 제안받으며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니그로리그에 가서도 그의 야구 재능은 어김없이 발휘되었고 눈부신 성적을 내며 이윽고 메이저리그, 그중에서도 뉴욕을 연고로 하는 브루클린 다저스의 눈도장을 받게 된다. 그리고, 브루클린 다저스의 단장 브렌치 리키는 재키 로빈슨에게 니그로 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볼 것을 제안한다. 물론, 그의 제안은 결과론적으로 현재 미국의 역사를 바꾸게 된 역사적인 일이 되었지만 애초에 브렌치 리키가 인종차별을 타파하겠다는 정의감을 가지고 재키 로빈슨에게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흑인이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라는 것만으로 관심을 받고 이것이 곧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좀 더 속물적인 접근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그 의도가 어떻든 간에 그의 이런 제안을 재키 로빈슨은 용기 있게 받아들였다. 재키 로빈슨은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인종차별, 그리고 그와 연쇄되어 발생할 수 있는 온갖 부당한 일들을 말이다.


실제로 재키 로빈슨은 이후 온갖 살해 협박이나 위협에 시달렸고, 경기하는 와중에도 상대 선수들로부터 위협적인 태클에 걸리거나 대놓고 플레이를 방해하기도 했다. 팬들의 야유나 인종 비하는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오로지 플레이에만 집중하였고 엄청난 플레이를 선보이며 야구선수로서의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그의 행동은 조금씩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갔고, 팀 동료부터 홈 팬들이 재키 로빈슨과 ‘연대’ 해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연대는 재키 로빈슨을 더 이상 외롭지 않게 해주었고 그는 오로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게 된다. 재키 로빈슨을 위한 연대의 힘은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재키 로빈슨 데이.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이자 인종차별을 타파한 위대한 인물, 재키 로빈슨을 기념하기 위해 이 날은 모든 선수들이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였던 ‘42’를 달고 경기를 치른다. 세상에서 이보다 멋진 기념행사는 없다고 생각한다. 재키 로빈슨이라는 선수를 기리기 위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인종차별에 맞서고, 이를 철폐하기 위해 모두가 연대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수 중 누구 하나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 불평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재키 로빈슨 데이 그다음 날은 4월 16일이다. 미국인들에게 4월 15일이 각인되어 있다면 한국인에겐 4월 16일이라는 날짜가 각인되어 있다. 미국인의 4월 15일은 인종차별에 맞선 한 위대한 선수를 기리는 벅찬 날이지만 한국인의 4월 16일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올해는 세월호 8주기이기도 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8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많은 것이 달라지지 못했다. 여전히 많은 진실이 규명되지 못했고 피해자 유가족분들은 억울함과 슬픔 속에 하루하루를 지내고 계신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정치적인 이슈로만 받아들이고,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느냐’며 불평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도를 넘은 불평의 화살은 유가족에게 향하기까지 한다. 기억하는 것 자체를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잊으라고 강요한다. 우리가 이를 계속해서 기억하려고 하는 것은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방지하기 위함인데 어째서 잊으라고 하는 것일까.

우리는 잊어선 안된다

재키 로빈슨 데이인 4월 15일은 재키 로빈슨을 기억하는 것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인종차별, 그리고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부당함과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모두가 기억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4월 16일도 그래야만 한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이를 넘어 다시는 소중한 생명들이 억울하게 떠나지 않도록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민간의 차원을 넘어 국가가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그런 여러 가지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그래서 4월 16일은 우리에게서 일어났던 모든 비극적인 사건들을 기억하고, 반성하고, 바꾸어나갈 수 있는 날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라는 작은 사회 내에서 철저히 약자의 위치에 서 있었다. 초반에 그는 메이저리그 선수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서비스나 혜택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화장실도, 탈의실도 심지어 식당까지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 선수들과 철저히 분리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그는 바꾸어나가기 시작했다. 수없이 메시지를 던졌고, 행동했고, 연대했다. 그리고, 조금씩 인식이 바뀌어 나갔고, 그의 용감한 행동은 미국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첫 열쇠가 되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탈시설권(+이동권) 시위를 곱게 보지 않는다. 시위에 나선 이들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누군가 전장연의 행동을 내로남불 시위라고 비난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가 표현한 내로남불이 여기에서 쓰이는 것이 맞는지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그들의 시위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 시민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데, 그들도 한번 불편함을 느껴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현은 ‘틀렸다’. 장애인들은 매일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비장애인들이 시위 때 겪는 불편함의 배 이상으로 불편함을 겪고 있으니까. 내로남불이 아니다. 비장애인의 연대를 끌어내기 위해, 그리고 공감을 얻기 위해 자신들이 겪었던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는 것이다.


재키 로빈슨이 야구선수라는 신분으로, 메이저리그에 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교통은 시민들에게 이동에 대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지금은 그 시민의 범주에 장애인은 없고, 비장애인만 있으니까 문제이다. 재키 로빈슨의 동료들이 재키 로빈슨의 행동에 연대하였던 것처럼 우리들도 전장연의 행동에 연대하였으면 좋겠다. 약자의 입장에 서는 용감한 행동은 사회를 바꾼다. 재키 로빈슨이 미국 사회를 바꾸었다면, 전장연의 행동과 이에 대한 우리들의 연대가 한국 사회를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결코 욕심이 아닌, 당연한 것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연대는,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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