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기나긴 공백기를 맞이하며
퇴사하고 고시생이 되었다. 닉네임을 고영이라고 지은 것이 내 앞날에 대한 암시였나 싶다.
놀라우리만큼 즐거웠던 유튜브 작가 생활을 마무리하고 광고대행사의 에디터로 잠깐 일했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에디터로서는 또 처음이었던지라 광고주가 원하는 스킬을 습득하기까지는 나름 재밌었다. 그렇지만 그 재미는 어떤 배움이든 간에 초반에만 잠깐 찾아오는 신선함, 그뿐이었다. 일에 익숙해지고 나니 늘 같은 주제로 찍어내듯 쓰는 글이 지겨워졌다. 늘 형식적인, 비슷비슷한 글이었음에도 광고주는 쥐어짜서라도 피드백을 줬다. 어떻게든 별 다섯 개를 주지 않는 것이, 별점 반 개라도 깎아 내는 것이 광고주가 가진 명분이라도 되는가 보다. 그래봤자 맨날 똑같은 글인데. '쓰는' 직업을 선망해서 찾아 들어간 곳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쓰는 일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첫 회식을 했다. 입사 후 3개월이 되도록 내내 수줍어 보이던 그룹장은 혼자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더니 순식간에 개가 되었다. 개가 된 그룹장이 별안간 두툼한 가죽 지갑에서 오만 원 권을 꺼냈다.
"여기서 나한테 제일 어필하는 사람이 이거 가져가는 거야."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어필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개 그룹장이 이번에는 유리잔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그럼 이거 원샷하는 사람한테 오만 원 준다."
'저게 지금 뭐 하는 짓거리지?'
다같이 싸해질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막내 디자이너가 냉큼 유리잔으로 손을 뻗었다. 어린 나이답게 평소 언행이 가볍고 주량 조절을 못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도전!"
'그래 뭐... 네가 정 원한다면 먹고 죽어라.'
순간 다른 손이 날아와 막내 디자이너의 손을 쳐냈다. 팀장이었다. 자기가 원샷하고 돈을 받겠단다. 그룹장의 오만 원이 욕심이 난단다. 거슬렸던 포인트는 팀장도 디자이너도 여자였다는 것이다. 그룹장이 현상금을 내건 글라스 소주를 서로 마시겠다고 옥신각신하는 두 여성을 보는데 내가 어디에도 맞지 않는 퍼즐조각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내 인생에 왜 이리 빌런이 많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의 지난날들을 곱씹었다. 하루종일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그래도 밥은 제때 챙겨 먹었다.) 싫은 소리를 못하는 호구같은 내 성격 탓은 아니었다. 잦은 이직 때문도 아니었고 사주팔자 때문도 아니었다. 문제는 '어렵게 취업하지 않아서'였다. 내가 원하는 풀에 들어가고 싶다면 수능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높은 허들을 넘어야 하는구나.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퇴사를 결정했다. 부디 이게 내 인생 마지막 퇴사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게 고시 생활을 시작했다. 고 사이 몇 달간 감정의 폭풍을 겪었다. 공부도 만만치 않았지만, 공부가 문제가 아니었다. 답답한 독서실 벽을 마주할 때마다 이제껏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의 막막함으로 숨이 막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온갖 안 좋은 기억들이 끊이질 않고 찾아왔다. 책갈피를 넘기듯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시작해서 다섯 살 때 기억까지 모조리 생각났다.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시계태엽 오렌지>처럼 강제로 눈앞에 상영되는 스크린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력으로 멈출 수가 없어서 매일 두 번씩 울었다. 끝내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요즘에는 요리를 시작했다. 미숙하지만 하루 세끼를 열심히 차려 먹는다. 도시형 리틀 포레스트를 찍는 기분이다. 요리를 처음 배우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길까, 그런 생각도 든다. 물론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능한 얘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