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 작 하는 그녀 Dec 30. 2020

12월 30일, 뒤통수를 맞았다

오피스 소설 1화

12월 30일은 부서 송년회를 하는 날이다. 부서 경비를 아껴 오랜만에 한우 등심과 와인을 먹기로 식당에 한 달 전쯤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강지호씨는 신사업팀에서 한 해 동안 부대끼며 함께 일한 동료들과 즐거운 수다를 떨 생각에 기분이 들떠있었다.


그녀가 다니는 회사는 매년 이맘때쯤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을 시행한다. 내년도 경영 전략에 맞춰 조직 체계를 검토하여 새로운 부서를 만들거나 기존 부서들을 통폐합하는 과정 속에 각 부서에 맞는 직원들을 재배치한다. 매년 하는 연말 의식과도 같다. 조직 구성이 어떻게 바뀔지, 직원들 스스로 다른 부서로 이동이 될지 기존 부서에 있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긴장감과 궁금즘이 동시에 맴돈다.


조직 개편 발표 이전에 일부 직원들은 잡 포스팅(Job Posting) 제도를 통해 본인이 원하는 부서로 이동 신청을 하여 인터뷰를 보기도 하지만 결과는 전체 인사 발령 당일에 함께 발표된다. 본인이 희망을 했기 때문에 부서 이동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2천여 이상의 직원이 다니는 대기업에서 그러한 예상 범위는 1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인사팀에서 퇴근 직전에 회사 게시판을 통해 발표를 하는 순간까지 누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발표 일정만 일주일 전쯤 파악이 가능하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한 달 전에 잡은 부서 송년회와 회사의 조직 개편 발표 날짜가 같다는 사실을 불과 3일 전에 알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부서 직원 중에 이동 발령자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송별회 겸 송년회가 될 참이었다.


강지호씨는 부서에서 해외 법인의 현안을 파악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해외 주재원들과 한국 본사에서 지원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거나 함께 전략적 방향성을 검토하는 일을 주로 했다. 해외법인과 공동으로 8월부터 시작한 TF의 주요 구성원 중 한 명이었고, 현재 부서에서 일한 지 2년 정도 되었기 때문에 발령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날도 해외법인의 한 직원과 전화로 심각한 업무 논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첩에 메모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인사이동 발표시간인 오후 5시가 되었는데도 회사 게시판은 볼 생각도 못한 채 말이다.


그때 주변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로 6시간 떨어져 있는 국가의 전화 너머로 들리는 직원의 영어 말소리에 집중하느라 영어 듣기 시험시간엔 작은 소음에도 민감해지듯 강지호씨는 그 웅성거림이 상당히 거슬렸다. 무사히 영어 듣기 시험을 끝낸 홀가분한 기분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입사 동기의 메신저가 PC 화면에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웬 발령?"

"무슨 소리야?"

"게시판 좀 봐."


강지호씨로서는 뜬금없는 인사 발령이었다. 다른 팀원들도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머뭇거리는 표정이었다. 강지호씨는 어리둥절한 채 업무를 마무리하고 조직 개편안과 인사 발령 명단을 보며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데 박 대리가 일어서며 작지도 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회식 갈 시간입니다."


팀원 전체 15명 중에 팀장과 10여 명이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사무실을 나갔다. 강지호씨는 영화를 보고난 감동의 여운이 남아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처럼, 모니터 한 가운데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있었다. 그녀 책상 주위로 그녀와 친한 선후배들이 다가갔다.


"괜찮아? 네가 나가겠다고 한 건 아니지?"

"전혀......"

"강과장님 가시면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어떻게 해요."

"이해가 안되네. 지난 번 팀장이랑 면담할 때 내년에도 이 팀에 계속 있겠다고 했는데, 내년 사업계획 중에 내가 추진할 부분도 말하......"


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두 달 전 일이 강과장 머릿속에 스쳤다.


강지호씨가 근무하는 한국 본사의 해외법인 자회사는 총 8개였다. 그래서 국가마다, 법인마다 관리하는 담당 직원을 나눠 한 달에 한 번씩은 각 법인의 경영 실적과 이슈에 대하여 집중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달 전 그 회의에서 그녀가 맡고 있는 해외법인의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올라왔다. 강지호씨는 지난해 6개월간 현지에서 파견 근무를 한 경험이 있어 해외법인 직원들과 친분이 두터웠고 현지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날은 해외법인에서 제시한 내년도 재무목표와 사업계획이 적정한지를 두고 토론이 오고 가고 있었다. 강과장이 담당하고 있는 법인은 올해 목표도 못 채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강화된 정부 규제와 현지 매니저 직원들의 갑작스러운 단체 이직이 문제였다. 그러나 이 공식회의에서 김 팀장은 갑자기 그녀를 질타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벌써 10월인데 올해 당기순이익 목표 달성률이 70퍼센트밖에 안되고 말이야, 신상품도 개발 착수는 커녕 아직도 제휴사와 논의 단계라며? 올해 도대체 자네가 한 게 뭐야?"


현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본부장급인 해외 주재원들이 이직해서 공석이 되어버린 매니저 업무까지 떠안은 터라 낮에는 쉴 새 없이 현지 직원들과 작고  사항들에 대해 검토하고 의사 결정하느라 바빴고, 저녁에는 한국에 보낼 보고서를 쓰느라 거의 매일 밤을 새우고 있었다. 하반기에 들어서는 기존 사업 계획 대비 추진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강지호씨 현지의 상황을 팀장에게 지속적으로 보고했고 팀장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듯했다. 올해는 조직을 안정화시키고 성장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시스템 구축이 최우선이기에 가시적인 성과는 내년에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합일점을 이룬 듯 보였다.


"언제까지 그렇게 해외법인을 싸고돌 거야? 당장 성과를 내라고! 아니면 다같이 관두던지!"


김 팀장은 전략기획팀 출신인 강과장이 시스템 개발과 운영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평소에도 시시콜콜하게 현지 진행상황을 물어보며 즉각적으로 답변하지 못하면 그녀 기존 커리어를 문제 삼으며 현재의 부족한 점을 쑤셔댔다.


강과장은 그 분야에 경험이 적은 점에 대해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동료들과 별도의 스터디 모임까지 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녀의 업무적인 강점은 문제의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고 부서 간 협업을 통해 의견을 모으고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팀장 앞에서 장점은 수면 아래 묻히고 단점만 뾰족하게 솟아올랐다.


리더십의 대가 존 맥스웰의 저서 ‘누가 최고의 리더가 되는가에서는 5단계 리더십을 제시하고 있다.가장 낮은 단계인 지위 리더십부터 관계 리더십, 성과 리더십, 인재 개발 리더십, 가장 높고 어려운 단계인 인격 리더십까지.

<존 맥스웰의 리더십 5단계 >     이미지 출처: 폴인

박 팀장의 리더십은 1단계와 2단계 즈음에 위치해 있었다. 올해 초 현재 부서에 발령받았고 팀장 직책도 처음 맡게 되어 실무를 파악하는데 급급했고 조직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해 보였다. 아직 조직 차원의 성과를 만들어내기에도 팀 특성상 여러 가지 난제가 존재했다. 팀장으로서의 ‘지위’로 팀원들에게 업무 지시는 명확하게 하는 편이었다. 기존에 안면이 있었던 몇몇 팀원들과는 이미 형성된 그들간의 좋은 ‘관계’를 바탕으로 식사도 편하게 업무 얘기도 편하게 하지만, 낯가림이 있는 팀장 유형이었다. 반면, 부서에 와서 처음 만난 직원들에 대해서는 일 년이 지나도록 개인적인 관심이나 이들의 업무 고충에 대하여 별로 귀 기울지 않았다. 코칭형 리더는 아니었던 것이다.


김 팀장은 본인의 승진을 위해 다급했다. 입사 동기들은 이미 작년에 한 단계 높은 직위로 승진한 상태인 데다가, 팀은 아직 이렇다 할 성과도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해외 법인의 성과 부족은 강과장의 성과 부족으로, 그것은 곧 그녀 기존 커리어와 단점의 문제로 연결된 것이다. 이러한 팀장과 함께할 경우, 성과는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직원의 성장은 담보하기 힘들다.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자원으로 활용되며, 성과로만 평가받게 된다.


강지호씨는 김 팀장에 대한 서운한 마음과 프로젝트를 마무리하지 못하는 아쉬움, 해외 법인을 더 이상 도울 수 없게된 무력함이 범벅된 채 그해의 연말과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후배들이 따르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제시한 4단계 이상의 리더십을 갖출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중을 받을수 있지 않을까. 팀원 개개인의 강점과 약점에 관심을 기울여, 강점은 활용하되 약점은 보완시키도록 응원해줄 수 있는 그러한 리더를 만나기를, 스스로도 성장하여 그러한 리더가 되기를, 강과장은 새해 소망으로 적어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