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머리숱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생각이 종종 들긴 했었지만, '아직은 괜찮아...'하고 애써 외면해 왔었는데, 얼마 전 아내가 제 정수리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야 약을 먹을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 나온 건 참아도 머리카락 없는 건 못 참는다.'라는 말이 있죠.(참 나쁜 말입니다) 저는 10년 넘게 어머니께 '살 좀 빼라' 라는 말을 듣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올해는 정말 독하게 마음먹고 살을 많이 뺐는데, 이제 더 중요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제 정수리 사진을 본 날은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남자로서의 매력이 점점 더 떨어져 간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내가 그 사실을 제일 가까이서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저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부관계는 다른 가족관계와 달리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고 남남으로 살아왔던 두 사람이, 세상 어느 관계보다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가까운 스킨십을 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죠.
그래서 부부관계에서는 인간적인 친밀감, 신뢰감도 중요하지만, 이성적인 호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열심히 운동을 해서 건강한 몸을 만들어가고, 탈모약을 먹는 것도 이성적인 호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겠죠.
매력적인 배우자가 되려면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탈모약 처방도 받아야 하고, 다이어트를 위해 최소한 하루 1~2시간을 운동하는 데 써야 하죠. 좋은 옷도 입어야겠죠. 머리스타일도 너무 촌스럽지 않게 헤어숍을 주기적으로 방문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능력 있는 배우자'가 되는 것도 이성적인 호감을 유지하는 한 요소가 됩니다. 직장생활을 한다면 직장에서도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여유 있을 정도의 수입을 거두는게 좋죠. 그러기 위해서도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의 투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면에 집중하다 보면 정작 '가정적인 배우자'가 되기는 어려워집니다. 가정적인 배우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고, 나를 위한 투자는 아껴야 합니다.
운동하거나 직장에서 야근을 할 시간에 아이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아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것을 함께 먹어주고, 좋은 옷을 살 돈을 아껴서 가족을 위해 더 투자해야 하죠.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가정을 보면, 아이들을 키우는데도 모두 매력적인 외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보며 스스로가 작아지기 쉽습니다. 아이들을 챙기기도 벅차고, 직장에서 그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만' 일하려고 해도 시간과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그러다 보니 살이 찌고, 점점 편한 옷만 찾게 됩니다. 저도 그렇게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저씨가 되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잉꼬부부로 유명한 모 연예인이 TV에서 대략 이런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남편이 저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부럽다고 하는데요, 제 남편은 일을 하지 않잖아요. 하루종일 직장에서 힘들게 서로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정하게 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겠죠. 그렇게 못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
아이들이 어리고 사회 초년생일 때는 직장에서 자리 잡느라, 어린아이들을 돌보느라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조금씩 스스로를 돌보고, 아내에게 더 많은 관심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가정적인 남편이면서, 아직은 아내에게 남자로서도 매력적인 멋진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이 둘의 조화를 이루는 일, 마냥 쉽진 않지만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