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에 대한 대화

by 안온재관리소장


지금은 직장 때문에 지방에 살고 있지만, 1년에 2번 정도 대학 친구들과 서울에서 모임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 모임이 있었습니다.


멤버는 저까지 총 5명인데, 그중 근로소득이 압도적으로 높은 친구인 A가 있습니다. 대학시절에도 공감능력이 좋고, 말을 잘해서 그 친구에게 상담을 받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그중 한 명이었죠. 각자 취업 준비를 하면서 로스쿨이다, 공무원이다, 대기업이다 하며 남들 눈에 그럴듯해 보이고, 하한선이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만 쫓고 있을 때, A는 작은 회사 인턴부터 시작해서 이직을 거듭해 가며 본인의 몸값을 높여나갔습니다. 그 결과로 지금은 제 기준에선 정말 많은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술잔이 한참 돌았을 때, A가 문득 우리를 향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희는 계속 직장인으로 살 거야?"

부동산, 주식 이야기에 이어 언제나 그렇듯 대학생활 흑역사를 서로 들춰내며 낄낄대고 있다가 갑자기 정적이 맴돌았습니다.


"로또만 되면 당장 그만두지!", "아냐, 요즘은 로또 돼도 그만둘 정돈 아니던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때, A가 다시 말을 꺼냈습니다.


"난 아이들에게 직장인으로서 아빠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게 맞는 건지 요즘 의구심이 들어."


순간 정적이 맴돌았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듯 말듯했기 때문에 A가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눈치 빠른 A가 곧바로 입을 열었습니다.


"진취적으로 도전하고, 내 사업을 꾸려나가는 아빠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고, 더 많은 물질적, 정신적 자산을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 벌고도 부족하냐? 하여간 욕심하고는..."

다른 친구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A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아니, 조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아빠보다는, 작더라도 내 사업을 꾸려나가고 키워나가기 위해 애쓰는 아빠의 모습이 더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을 거라는 거지."


문득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을 하는 모습, 저는 이게 당연한 아빠의 모습인 줄 알았거든요. 제가 아는 아빠들은 대부분 그랬으니까요. 지금의 저를 포함해서요.


다음날 숙취에 시달리면서도 A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은, '지금의 나의 모습이, 아이들이 보고 자랐으면 하는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하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특출나게 잘하는 것은 딱히 없었습니다. 세상만사 다 관심이 많았지만, 어느 하나 깊게 파고드는 것도 없었죠.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중간만 하면...', '이 정도면 뭐 나쁘지 않지...',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남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것들을 쫓아왔습니다.


지금의 제 삶이 특별히 불만족스럽다거나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저처럼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조금 더 도전적이고 특별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런데, A의 말을 듣고 보니, 제 스스로가 보이지 못한 모습을 아이들에게 기대한다는 것도 모순이더군요. 그러다 보니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는 장인어른께서는 예전부터 자녀들에게 물려줄 최고의 자산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신앙은 지성을 가진 인간이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인어른 말씀대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수도 있겠죠.


다른 이들은 가끔 이런 말도 합니다. 아이들 공부 많이 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는 것보다, 좋은 대학 안 가더라도 먹고살 걱정 안 하게끔 많은 돈을 물려주는 게 더 좋다고. 이 부분은 이미 저는 틀린 것 같네요. 전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월급은 뻔하고, 투자에는 정말 어둡습니다.


이렇게 봐도 평범하고, 저렇게 봐도 평범한 제가, 남들과는 좀 다른 선택을 한 게 있다면 '아파트 공화국'에서 단독주택을 지어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독주택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살면서, 즐겁고 좋았던 추억을 머릿속 사진첩처럼 많이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당시에 설계사에게 보낸 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좋은 대학,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지지 않더라도, 따뜻하고 밝은 '우리 집'에서 자유롭게 지내온 모든 순간들을 단단하게 딛고 서서, 조금 더 본인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와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머릿속, 가슴속 한편에 남아 어렵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사회적 제약이 없는 어린 시절에 내가 사는 공간에서 제약 없이 마음껏 뛰어놀고, 다채로운 활동을 한 경험들은 커서 조금 더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밤 11시가 넘은 지금 이 시간까지, 거실의 가구들을 마음대로 옮기면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니, 저는 비록 평범한 회사원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좋은 감정과 추억을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남들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기를 바라며, 그럴 수 있는 경험과 자존감을 갖추도록 믿고 도와준다면, 그것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저도 충분히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A가 자녀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었을 겁니다. A는 그러한 모습을 스스로 보여줌으로써, 저는 아이들에게 좀 더 자유와 선택권을 줌으로써 알려주고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겠죠.


어쨌든, 저는 저만의 방식대로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방식으로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11시다, 이제 자야지 얘들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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