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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이 Oct 25. 2020

선명하게 남는 것

글을 아무리 써도 말로 뱉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내 생각을 쏟아내 추리다 보면 정제된 글 무더기는 남겠지만 그렇게 쌓아두기만 하다 정작 필요할 때 꺼내먹을 수가 없다. 꺼내더라도 그 양에 허덕이다 체해버릴 것이다. 내 경험상 무엇이든 꼭꼭 씹어 내 것으로 만들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말하는 것, 특히 여러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같은 것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소화하는 방식이 다르다. 


한 주제를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든 알맹이든, 그 주제로부터 뻗어 나가는 뿌리든, 모든 것을 한 번에 바라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지금까지의 시간만큼을, 그 속에서 느끼는 것들만큼을 먹고 자라와 지금의 열매를 맺었다. 그렇게 맺은 열매를 모두와 나누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그렇기에 대화는 즐겁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도 함께 알아가는 과정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글을 내뱉기는 쉬워도 말을 내뱉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인터넷이 있으며,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이 있으며, 우리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수많은 매체가 있기에. 매체를 확성기 삼아 말하는 이들은 갖가지 의견을 두고 융화하거나, 혹은 대립하며 나름의 결론에 다다르곤 한다. 


그렇기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SNS에 달리는 댓글에 악플이라는 역기능이 있다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등 토론의 장으로서의 순기능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의견은 고이고, 종래엔 썩어버리기도 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세상이 우물 안 개구리의 세상보다 조금 더 넓다고 거기에 안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다행히 난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는 것 같다. 늘 호의적일 수는 없으나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대화로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일방적으로 던져대는 것이 아니기에 결말은 언제나 생각이 맞닿은 곳에서 닫힌다. 그렇게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고, 고민하는 법을 배웠고, 잘못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서로에게 배운다. 


사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사람이 대화하는 것 자체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금 느낀다. 감정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이며 인간이기에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싶어 한다고.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새로운 기억과 새로운 감각을 전한다. 


시끄러운 찻길과 소리가 소리를 덮으려 안간힘을 쓰는 거리의 음악 소리도, 카페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멋들어진 선곡이 자아내는 음악 소리도, 누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전해지는 색의 온도가 다르다. 


대화에 시간과 공간, 계절을 담는다. 표정과 음색과 소리를 담는다. 온도와 냄새와 맛도 눌러 담아본다. 그렇게 담고  담다보면 훗날 서로의 기억을 쓰다듬는 추억이 된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추억은 글보다 선명했다. 


그렇기에 조금 더 간절히 바라본다.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나도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이야기들을 함께 만들어나가기를. 우리는 모두 추억이라는 이야기를 먹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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