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그곳에 없었다(31)

숲은 바쁘더라

by 윤메로나

그러고 보니,

제주에 살면서도 완전한 숲속은 안가봤다 싶었다

주차 자리가 없어서, 바람이 심해서,

입구까지 갔다가 번번히 돌아 왔던 일을 떠올렸다


붉은 오름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온 낯선 곳.

남편은 아이들과 전망을 본다고

와글와글 산으로 향했다


'사진이나 찍고 있을께 나무가 엄청나네..'

이상하게도 사람이 거의 없이

고요하고 고요한 숲속에 나혼자 덩그러니 있자니

해방감보다 생경함에 가슴이 간질간질 했다


붉은 흙으로 다져진 이 길을

나도 모르게 조용히 소리를 줄이며

성큼성큼 걷지 못하고 타박타박 소리낼 수 없이

그렇게 길을 따라 느릿하게 걸었다


비로소 생경한 간지러움이 사라질 때쯤

눈앞에 작디 작은 것들이 크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두빛 물감보다 더 아름다운 이끼들과

쭉쭉 뻗은 나무들의 든든한 어깨들과

온갖 풀을 여기 죄다모아 놓겠다라는

신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한

셀수 없이 다양한 식물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하아.. 숲이 나를 안아 주는 것 같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했다

그 때, 옹알옹알 숲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쪽으로 옮기라구!!

저건 저렇게 가지고 가자!!

여기로 뻗어 봐, 그래 그 쪽이 자리가 있어'

' 그런데 저 인간 봤어?

저 인간은 왜 저런 표정이지?'

'뻔하지 뭐, 자기만 힘든 줄 알고 세상 우울한가봐

이봐 이봐 인간 신경 쓰지 말고 이거 좀 받아봐!'

'한 두명이냐구, 자 같이 들어 보자 저쪽으로!'


놀랍게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지나가는 사람은 마침 하나 없이

멈춰진 시간에 나만 있는 것 같았다

깜짝 놀라 발 아래를 보니

온갖 개미 거기 땅속의 벌레들까지

식물들과 이끼들과 붉은 흙들과 더불에

모두 생생히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경이로운지

미쳐 몰랐던 것 처럼


문득 땅을 밟고 있는 내 발모양 아래의 세상이

알수 없는 깊이로 이어져 내려가는 길이 느껴졌다

무수히 많은 생명들위에 얇은 흙으로 덮인 문,

그저 이곳에 사는 것 뿐.

내가 해야 할 일을 수고롭게 해내는 것,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면 되겠구나


'고생이 많구나.. 고생한다'

여전히 내 말은 듣지 않고 분주한 숲을 뒤로 하고

가족에게 향했다

남편은 정상이 날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음을 이야기하며 내게 물었다

'숲은 어땠어?'


'숲은 바쁘더라'

나는 창밖을 보며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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