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삭 속았수다의 여운이 가라앉아서
제주를 떠나 그 소박한 것이 그리웠던 어느 날에
폭삭 속았수다의 예고편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어
제주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야
꼭 봐야해 , 꼭!!'
친한 동생과 친구에게 내가 만든 것인양 실컷 홍보를
하고 정작 나는 아주 천천히 그것을 보았다
잠깐 잠깐 유튜브에서 지나가듯 보는 영상에도
마음이 먹먹해서 엄두가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친한 동생은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사람이였는데
그날은 유독 심심했다고 한다
내가 하도 보라고해서 별 생각 없이 틀었다가
새벽에 오열을 하며 보다 울다를 반복했다고 했다
학군지에 살다가 아버지의 고향인 제주로 이사와
제주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외국에서 원하던 공부도 하고
직장생활도 서울에서 했던 그녀는
제주의 하나 건너면 다 이어진듯한 인간관계와
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풍경들에
지겨움을 느끼곤 했다
부모님도 친척들도 그 들의 친구들도
비슷한 삶을 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드라마 한편에 그 친구는
처음으로 부모님의 삶을 슬며시 들여다 본 듯
숨이 막히는 이 감정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저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그저 무심하고 딱딱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손자들에게 하늘도 돌도 바다도 내어주고 싶어
그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이기도 하며,
대화가 잘 되지 않았던 어머니는
자신의 삶보다 자식의 삶이 빛나기를 한없이
바라고 또 바라는 애절한 사랑을 가졌음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참고 아껴두던 그것을 겨우 열었을 때.
나는 다행히 덜 울 수 있었다
하지만 천천히, 뭔가 힘겹게, 느리게 보다가
중간 에피소드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내 삶의 끝을 미리 보는 것처럼
보고 싶었지만 보지 않기로 했다
하필 내 엄마와 할머니의 이야기인듯
한림이라는 지역까지 같아서,
섬놈이랑은 결혼 안한다고 다짐 했다던
엄마의 목소리는 애순이의 앙칼진 목소리로 들렸고
공부를 잘 하고 꿈이 있어서 더 원망스러웠을
애순의 순응이 그저 안쓰러웠다
그리고 답답하고 답답한 하루도 쉬지 못하는
관식이는.
관식이를 보는 것은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차마 헤아릴 수가 없었기에
그러나 감사했다
그녀 애순덕분에,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그놈의 지긋지긋한 바다에
가족을 잃고 또 잃고도
다시 힘풀린 다리에 목숨을 걸고
아이들 입에 뭐라도 넣겠다고
자존심을 앞세울 수 없는 그들의 삶에
나는 숨이 멈춘듯 했다
숨을 쉬는 것도
소리내어 우는 것도 그저 물방울 같았다
살다보면 살아진다고
살다보면 살아진다고
묵묵히 목구멍에 밥 욱여넣으며
또 하루하루를 그저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의 부모님들의 삶에 비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