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설아 Sep 27. 2021

그렇게 좋던 어느 오후, 서해 바다

기대를 넘어선 하루


아이들에게 수영하는 법을 알려준 건 나다

물속에서 몸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나이와 상관없이 얼마나 신나게 놀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도 나다. 우리 세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수영을 곧잘 하고 물을 정말 좋아한다. 아이 셋 모두와 바다 수영을 한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큰 수영장이나 풀빌라를 찾아다니기만 했지 드넓은 바다에서 온몸을 담그고 그렇게 오래도록 아이들과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여태 몰랐다. 

10년도 넘게 바다가 지척인 서해안에 살면서 그 망망대해에 몸을 담글 수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바다’ 하면 늘 동해의 푸른 바다, 커다란 파도가 넘실대는 그 앞에 서있다 와야 바다를 보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일기예보가 철저히 빗나가는 바람에 영월 캠핑에서 대부도 해수욕장으로 방향을 틀게 된 우리의 휴가 계획. 숙소는 우리 집으로 두고 매일 바다와 벗하는 휴가가 시작되었다. 더운데 물에라도 담가보자며 기대 없이 아이들과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데, 뭐지? 보드라운 바닥면과 적당한 수온의 바닷물이 우리를 착 감싸 안는다. 


오, 이 느낌 되게 괜찮네


아이들도 나도 발만 담가보자던 첫 마음과 달리 온몸을 담그며 네 시간 동안 바다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첫날엔 수영복도 안 챙겨 갔다). 눈으로 만나는 바다가 아닌  몸으로 만나는 바다와 처음으로 친구가 된 날이랄까. 

해안선이 단조롭고 수심이 깊은 동해와 달리 해안선이 복잡하고 수심이 얕은 서해바다는 바다색만큼이나 수영하는 맛이 참 다르다. 모래사장에서 바다로 걸어 들어갈 때 발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부드럽고 고운 진흙의 느낌, 바다를 향해 200미터쯤 걸어가도 여전히 가슴 언저리인 수심 덕분에 정말 안전하게 바다를 탐험할 수 있다. 


아이들과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넘실대는 바다의 끝을 바라보며 서있자니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배를 타고 망망대해에 처음 나선 선장과 선원의 느낌이랄까. 우리가 뭔가 새로운 세상에 함께 도착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바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몸을 풀며 아이들과 놀자니 우주공간에 떠있는 듯 자유롭고 새로운 느낌이다. 어릴 적 목욕탕에 데려가면 엄마 몸을 놀이기구 삼아 오르락내리락 매달리고 놀던 녀석들. 그 장난기는 여전해서 사춘기가 된 지금도 엄마 곁을 맴돌고 몸을 엮어대며 즐겁게 바닷속을 유영한다. 며칠 전만 해도 퉁퉁 대던 사춘기 녀석이 맞나 싶게 너무도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얼굴과 몸짓이 내게 진한 행복을 건넨다. 


서해안은 물때가 있어서 그 시간을 잘 맞춰가면 안전하면서도 즐거운 바다수영을 즐길 수 있다. 요즘 이곳은 11시부터 4시가 물이 가득 차는 시간이다. 우린 이틀 동안 그 시간 내내 바다를 지켰고 덕분에 모두가 새빨갛게 익었다. 네시쯤 넘었을까 바다에서 나와 해변을 바라보니 햇살을 받아 빛나는 잔잔한 수면이 너무 이쁘다. 엄마품에 들어갔다 나온 듯 충만한 느낌이 몸 곳곳에 아직 남아있다. 해안가를 따라 조용히 걷는 이들, 엄마와 모래놀이를 시작한 아이들, 파라솔 아래 가만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이들을 보는데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생각난다. 


아. 오늘은 이렇게 또 기대를 넘어서는구나

아이들과 내내 즐거웠던, 평온하고 여유로운 바다수영이 오래도록 기억 날 것 같다.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 기대어 설아의 ‘그렇게 좋던 어느 날 오후’ 정도로 기록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