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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디디아 Oct 06. 2020

하늘에서 온 편지

( 그가 떠난 지 2년 후 )

안녕 나의 마님! 


오늘은 내가 당신을 떠난 지 2년이 지난 날이군요. 그동안 잘 지냈나요? 여름 휴가는 잘 다녀왔나요? 당신에게 묻고 싶은게 너무 많네요.  여름이면 당신은 지도를 보며 어느 길로 여행을 할지 계획을 짜곤 했었는데 지난 여름도 그리 했나요? 당신이 그랬기를 바래요. 당신의 여행은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운전을 해야 하는 나는 늘 피곤했지만 동시에 언제나 새롭고 재밌었어요. 욕심 많은 아내를 둔 덕분에 좀 힘들긴 했어도, 길지 않은 내 인생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많은 곳을 여행하며 함께 한 추억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내가 죽기 3달 전에 갔던 북해도 여행은 참 좋았었는데, 그곳에 다시 가자던 약속을 지키기 못하게 돼서 미안해요. 빽빽하게 점을 찍은 여행 지도를 보여주며 야무진 계획을 설명하던 당신 모습이 그립네요.      


여보, 당신에게 이제야 편지를 써서 미안해요. 나도 갑작스러운 죽음과 이별이 힘들었고, 내 삶의 일부가 후회스럽고 나 자신이 미웠습니다. 죽음이 코끝에 걸려 있는 게 인생이란 걸 알면서도 내 인생이 이렇게 갑자기 끝나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당신 말처럼 비가 오는 날은 운동하러 가는 게 아니었는데...  당신 말을 듣지 않아서 미안해요. ‘사고는 한순간이니 방심하지 말고 조심해 운전하라’고 당신에게 잔소리를 자주 했는데, 내가 한순간 방심으로 죽음에 이르는 큰 사고를 내고 말았군요.      


여보, 작별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이리 죽고 나니 후회가 몰려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정리도 못하고 갑작스레 죽을 거였으면 이 땅에 어떤 기록도 남기지 말 것을... 책임지지 못할 일들은 벌이지도 말 것을... 사는 동안 욕심부리지 말고 있는 것에 자족하며 당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을... 당신에게 어떤 비밀도 만들지 말 것을... 일만 벌여놓고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하고 떠난 내가 왜 그리 미운지요.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당신과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면목이 없어요.


내가 이렇게 갑자기 죽게 되어 오랜 시간 당신을 홀로 지내게 만든 것도 미안하고, 아이들과 어머니를 돌보는 책임과 부담을 혼자 감당하게 해서 미안해요. 굳이 당신이 알지 않아도 되었을 내 삶의 흔적과 당신에게 말하지 못한 나의 고민을 보며 당신이 혼자 마음 아파 울었을 것을 생각하면 나 또한 마음이 아파요. 옆에서 위로해줄 나도 없는데 당신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 울었을까 생각하면 너무 속이 상하네요. 젊은 시절 당신에게 청혼을 할 때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는데... 오히려 너무 일찍 외롭게 만들었고, 너무 큰 부담을 남겨서 미안해요.     


여보!

언젠가 같이 TV를 보다가 ‘우리 중 하나가 먼저 가게 되면 남은 사람은 어떨까’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잖아요. 그때 난 “당신은 씩씩하니까 잘 지낼 거 같아”라고 얘기했어요. 기억나죠? 아마 당신은 내가 예상한 대로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한동안은 혼자인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많이 힘들고, 우리가 함께 상의하며 내가 처리해 왔던 일도 당신이 혼자 다 알아서 결정하고 처리해야 하니 당신이 해야 할 일도 많아졌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아는 당신은 누구보다 노력할 것이고, 빠르게 익숙해질 겁니다. 당신은 지혜로운 결정을 하려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이해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내가 없는 삶에 적응해 갈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당신은 그동안 당신이 해오던 일들을 꾸준히 하고 있을 것이며, 어쩌면 내가 없는 허전함과 외로움을 덜어내기 위해 또 다른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죠.

설령 아직 당신이 깊은 슬픔과 혼돈스러운 감정으로 위태롭게 느껴질 지라도, 당신 안에 내재된 도전의식과 용기,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 절대로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실 신을 향한 믿음이 있기에 당신은 점점 더 유연하고 유쾌하며 건강한 삶을 창조해 갈 거라고 나는 믿어요.     

    

여보!

나는 당신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은 뒤 스페인을 여행하며 당신이 좋아하는 가우디의 건축물 앞에서 웃기는 포즈로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나는 당신이 꿈꾸던 대로 캠핑카를 렌트해서 우리가 가보지 못한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싶었고, 당신과 함께 단풍 진 설악산과 눈 쌓인 한라산도 오르고 싶었어요. 당신의 소망처럼 은퇴 후엔 전국을 돌며 여기저기서 1년씩 살아보고 싶었어요.


우리 딸이 결혼할 때 나는 당신 옆에 앉아서 눈물을 글썽거릴게 분명한 당신 손을 꼭 잡아주며 수고했노라고, 당신은 좋은 엄마였다고 말해주었을 거예요. 여보, 나는 최고로 재밌는 할아버지가 될 자신이 있었고, 웃음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로 늙어가는 당신을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었어요. 내가 당신보다 딱 1년을 더 살 수 있었다면, 장례식에 찾아온 당신의 친구들에게 당신이 전하는 마지막 편지를 전하고 당신이 장례식에서 틀어달라고 부탁한 노래로 당신을 보낸 뒤 이 땅에서 당신의 삶을 정리하는 마음 아픈 일을 내가 했을 거예요.      


여보, 우리가 부부로 사는 동안 당신이 기대했던 것만큼 내가 많은 것을 해주진 못했지만, 아마도 나는 매해 가을이 되면 습관처럼 당신이 좋아하는 국화를 선물했을 것이고 당신의 생일이면 한 솥 가득 미역국을 끓였을 거예요. 나의 미래에는 언제는 당신이 있었고, 나는 당신을 나만의 방식으로 이렇게 사랑했답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 옆에 없어도,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아주지 못하고 우는 당신을 안아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당신이 사랑받았던 사람이었음”을 절대 잊지 말아요. 


그리고 당신이 나와 함께 하기로 꿈꾸었던 많은 일들을 내가 없다고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없어도 당신은 눈 덮인 한라산을 오르세요. 내가 없어도 당신은 최고로 멋진 웃음과 익살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세요. 내가 없어도 당신은 온 세상을 여행하고 당신이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살아보세요. 


당신은... 용감하고 씩씩하고 모험심이 넘치는 나의 아내였던 당신은 

내가 없어도 그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언제나 잘 웃는 당신 주변에는 당신과 함께 인생을 모험하고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내 아내여, 그러니 부디 이제 혼자 울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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