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은 금물
30대 중반임에도 아직까지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잘하는 ‘척’ 해 보이려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잘하는 척을 하고 싶어도 척 조차도 안 되는 것들도 많다. 요즘엔 글쓰기가 그렇다. 서로 공유하고 남들처럼 쉽게 읽혔으면 좋겠는데 힘만 잔뜩 들어가고 무심한 척 힘이 들어가지 않은 척 써보려 해 봐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포기하지 않은 척도 잘하기에 꾸준히 써보려 한다.
요즘 청소년들 만큼은 아니지만 정확히 고등학교 진학 전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말끝마다 불필요한 욕설들을 붙이며 스스로의 급을 낮추던 시절 나름 의젓한 고등학생이 되어보고자 ‘사춘기인 척’을 한다고 중학교 3학년 겨울 내내 스스로 입을 닫았다. 정말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입을 열면 욕설이 나오기에 입을 닫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3개월 간 말을 하지 않았더니 내 입에서 욕이 사라졌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욕설도 하지 않았지만 말하는 능력도 조금 줄어든 것 같다. 어쨌든 내 인생 첫 번째 ‘사춘기인 척’은 성공했다고 본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사냥개들’ 8부작을 이틀 만에 보았다. 두 명의 주인공이 자주 입고 등장하는 해병대 빨간 반바지 일명 ‘빤짝이’를 보며 군대 생활이 기억났다. 일단 나는 운이 정말 좋았다. 처음 3주 정도 선임 몇몇에게 주의 정도를 받았을 뿐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인복이 좋은 것도 있지만 아마도 성공했지 않나‘기합 바짝 들은 척’(이하 ‘기합인 척’)이 성공했지 않나 싶다. 이병, 일병 때 1년 간 24시간 내내 선임들에게 충성하는 척, 명령과 지시에 복명복창하며 빠릿빠릿하게 움직였고, 그 모습들이 긍정적으로 비친 덕분에 군대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기합인 척의 정도를 말할 것 같으면 1년 간 생활반에서 코를 골지 않다가 상병 진급한 날 첫날밤 바로 코를 골아 다음날 아침 병장 선임이 “승호 상병 진급하자마자 기합 빠져서 코 골더라?”라며 웃으며 아침을 맞았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도 군대 선·후임들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뿐이다.
위에 ‘기합인 척’은 어딜 가도 성공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30개 정도 해본 것 같다. 빼어나지 않은 외모 덕분에 서빙 업무를 빼고는 학원 강사 2년, 과외, 멘토링 봉사활동, 근로장학생, 빕스 주방, 대형마트 주차요원, 각종 전단지 배포, 현장 일용직, 에어컨 보수 및 청소, 크리스마스 때 인형탈, 웨딩플래너, 우체국, 각종 시험장 감독, 웨딩홀 뷔페, 쿠팡 창고 내 물품 분류, 행사 스텝 보조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쉬어가면서 해라’, ‘살살해라’ 등의 말을 많이 들었다. 혼자서 몰래 요령 피워가면서 힘들지 않게 하면서도 짧은 시간 내에 인정을 받았던 기억들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지 않았어도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면서 ‘첫인상 효과’와 ‘척 효과’를 접목시킨 것 같다.
그리고 척 중의 척은 ‘건강한 척’이다. 현재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바로 건강함이다. 아직까지 흡연 경험이 없으며(죽기 전 날 한 모금해볼 생각은 있음), 음주는 못하기도 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라 하는 사람들과는 한두 잔씩 마신다. 그 횟수가 1년에 손을 꼽을 정도로 적기에 술·담배에 있어서는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는 식단을 철저히 지키며, 하루도 빠짐없이 웨이트를 1~2시간씩 하는 ‘운동 중독’으로 알고들 있는데 이마저도 ‘건강한 척’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식단은 하지 않고, 밤마다 먹을 것에 굶주려 야식을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이고, 운동은 1년째 웨이트 없이 하루 10,000보 걷기에 새벽에 가끔 러닝 혹은 계단 오르기가 전부이다. 또 최근에는 살이 빠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운동량이 줄다 보니 근육량이 빠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변에서는 또 운동을 엄청 열심히 하고 있다고들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몇 년째 병원은 1년에 단 한 번 치과에 스케일링 목적으로만 다녀왔다. 결혼한 지 6년 차가 되어 가는데 아내가 ‘결혼 전부터 신랑이 병원에 간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실제로 건강한지는 모르겠지만 건강하고 싶고 아픈 곳도 없다.
그리고 과연 내 삶에서 언제까지 쓰고 있을지 모를 ‘착한 척’하는 모습은 이번 글쓰기 주제를 보고 일주일 간 생각을 반복했던 것 같다. ‘내가 진짜 착한 사람인가’라는 물음에 나의 대답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이다. 착한 사람도 아니고 좋은 사람은 더욱 아니다. 어쩌면 스스로에 대해 잘 알기에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척’을 활용하는 것 같다. 열심히 하는 척, 자기 관리하는 척, 노력하는 척, 성실한 척, 때론 어리바리한 척, 알면서 모르는 척 등 척들이 첩첩산중 쌓이니 이제는 ‘척’이 아닌 착실히 나의 것들로 되어가는 것 같다.
앞으로도 사랑꾼인 척, 자상한 아빠인 척, 몸짱인 척, 전문 작가인 척, 착한 사람인 척 등 ‘척 선수’가 되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에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척이라도 마음가짐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오늘도 작가인 척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