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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라비 Nov 19. 2022

한국어 못하는 영국인과 한국에서 결혼식 준비하기

"결혼 준비가 힘들어야 결혼을 또 안 하는 거야!"





10월의 어느 일요일, P와 나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내 결혼식이었지만.. 정말 너무 예뻤다! 한옥 처마 밑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청사초롱들, 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꽃 장식, 구름이 껴서 너무 덥지도 않고 사진에도 예뻤던 하늘. 지나고 나서 보니 너무나 감사했다.


내가 별도로 요청해서 주문했던 청사초롱

결혼 준비하면서 너무너무 바쁘고, 사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엄마가 하루는 "결혼 준비가 힘들어야 하지 또 결혼식을 안 하는 거야!"라고 하는데 정말 그 말에 백번 공감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끝나고 나니 다시 꼼꼼하게 더 잘 준비해서 사진도 더 많이 찍고 더 예쁘게 찍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P의 가족은 안타깝게도 아버님만 참석을 하시게 되었다. 어머님, 누나, 동생 모두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P가 너무 아쉬워해서 한편으로는 참 마음이 아팠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니.. 나중에 우리는 영국에서 살거니 결혼식은 꼭 한국에서 올리자고 한 것에 대해 동의해준 P에게 또 한편으로는 참 고마웠다. (사실 영국에서는 프러포즈하고 우리처럼 바로 결혼식 준비하는 사람들은 드물어서... 본인도 이렇게 빨리 할 줄은 몰랐다고)






[ 결혼 준비 목록 ]

1) 부모님께 허락 맡기

2) 예식장 정하기

3) 예식장과 조율하여 날짜 잡기

4) 드레스 샵 선정, 본식 한 달 전에 드레스 확정

5) 신랑 예복 샵 선정 (원단 고르기, 치수 확인, 1차 가봉, 2차 가봉)

6) 메이크업 업체 선정

7) 꽃장식 업체 선정 후 미팅

8) 음원/의자 렌털 업체 선정

9) 청첩장 업체, 디자인 선정, 청첩장 내용 선정

10) 스튜디오/본식 사진/DVD 업체 선정

11) 스튜디오 사진 수령 후 모바일 청첩장 제작

12) 꽃장식 업체 - PPT로 만들어서 다시 한번 중요한 포인트 알려주고, 포토존 위치/사진 데코/식사 팻말 도면에 표시해서 전달하기. 희망하는 부토니아/부케/코르사주 색상 전달, 푸드테이블 음식 선정

13) 데코용 사진 전달

14) 청첩장 수령 후 신랑 가족들에게 보내주기

15) 식순 짜기

16) 음원 선정, 음원 다운로드, 필요한 음원 편집

17) 식순지 영어로 번역 (신랑, 아버님)

18) 혼인서약서 작성 및 번역본

19) 아버님 축사 영문 번역

20) 사회자 멘트 정리, 통역 문장 넣기 (신랑, 아버님)

21) 우리 아빠가 쓴 성혼 성언 문 영어 번역본 (신랑, 아버님)



(12번부터는 결혼식 1-2주 전에 마무리해야 했던 내용들, 휴!)






나는 사실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없기도 했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사람들만 부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신랑 쪽 하객은 아버님 한 분만 오시는데, 한국에서 한다고 해서 다른 결혼식처럼 1-2백 명 부르기도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엄마 아빠도 적은 인원으로 하는 스몰웨딩에 대해 좋다고 해주셨고, 그렇게 우리는 50-60명 정도 인원을 잡고 결혼식을 준비했다.



한국인 남편과 모든 것을 해주는 웨딩홀에서 결혼했다면 준비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소와 식사만 제공하는 한옥에서 결혼식을 올리니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준비해야 했다. P는 내가 너무 스트레스받아하니 자기가 도와줄 건 없냐고 항상 물어보는데.. 한국어를 못하는데 어찌하나. P에게 부탁했던 건 딱 한 가지, 바로 음원이었다. 식순과 음원 선정까지 끝난 후 구글 스프레드에 해당 유튜브 링크를 다 넣어서 전달했고, 음원 다운로드와 편집은 모두 P가 담당해 주었다.



결혼식 1-2주 전이 제일 바빴던 것 같다. 사회자 대본은 친구와 지인에게 받은 사회자 대본을 우리에 맞게 수정해서 준비했다. 한국어를 못하는 신랑과 아버님을 위해 식순지, 동작 부연 설명지(?)를 영어로 만들었고, 사회자 대본에 추가로 영어 지시문도 추가했다. 아버님이 쓴 축사는 사회자의 동시통역을 위해 한국어로 번역을 했다. 반면, 우리 아빠가 쓴 덕담 겸 성혼선언문 동시통역까지는 진행하지 않았고 신랑과 아버님을 위해 번역본을 지면으로 준비했다.



신랑과 아버님을 위해 영어로 정리했던 식순과 동작 설명 안내문(?)






원래는 P의 가족을 위해 온라인 생중계를 계획했었기 때문에 본식 시간을 3시로 잡았는데, 나중에 영국에서 웨딩 파티를 할 때 실제 느낌이 나지 않을 것 같다며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나라면 실제 결혼식에 온라인으로라도 보면 좋을 거 같은데, 뭐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일단 알았다고 했다. 3시로 계약된 업체들을 다 일일이 변경하기가 번거로워서, 부득이하게 애매한 3시로 그대로 진행했다. (친척들이 무슨 결혼식이 3시냐고 하셨다는..)



우리가 결혼식을 올렸던 한옥은 외곽지에 위치해서 당연히 웨딩을 전문으로 하는 메이크업샵이 없었기 때문에, 차로 40-5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그 동네에선 잘하는 곳으로) 예약했다. 본식이 3시여도 집에서 8시에 나왔는데, 오전에 본식 하는 사람들을 아마 정말 피곤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차가 없는 우리 때문에, 아빠가 정말 고생을 했다. 신부/여혼주는 화장과 헤어 준비 시간을 3시간은 잡고 이동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 맞춰서 남자들이 도착하면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그래서 아빠 차로 엄마랑 나를 먼저 메이크업샵으로 데려다주고, 다시 40분 정도 이동해서 P와 아버님을 모시고 메이크업샵으로 도착했다.



한국 웨딩홀에서 올리는 결혼식 사진은 나에게 크게 와닿지 않아서 외국에서 찍은 결혼식 사진을 많이 봤다. 헤어스타일도 한국에서 흔히 하는 너무 단정한 것보다는 올림머리로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고, 뒤를 예쁘게 공을 들였는데 베일로 굳이 가리고 싶지 않아서 베일도 하지 않았다. 메이크업은 알아서 잘해주겠지 하고 많이 안 찾아갔는데, 결론적으로는 잘해주셨지만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구체적으로 찾아가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엄마. 화장기 없는 얼굴도 예쁜 우리 엄마는 화장이랑 헤어랑 예쁘게 하고 고운 한복도 입히니 너무 예뻤다! 아버님이 장난스럽게 우리 엄마가 결혼하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위트 있는 농담을 건네셨다.





오후 12시. 메이크업샵에서 베뉴까지는 차로 50분 정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짐을 다 챙겨서 이동을 시작했다. 드레스 이모님까지 하니 인원이 6명이 되다 보니, 부득이하게 택시를 불러야 했다. 택시를 불러서 P와 아버님만 보내고, 우리는 아빠 차로 이동했다.



너무 예뻤던 나의 부케

거의 1시가 되어 도착을 하니, 벌써 사진/DVD 작가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본식 사진은 이메일로, DVD는 유선으로 안내를 받았는데 다들 1시 30분 정도에 도착한다고 하셨는데 일찍들 오셨다.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아 주시는데 신뢰가 가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았다.



도착해서 짐도 꺼내고,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되는데 신부는 움직일 수가 없다. 나는 그나마 슬림 드레스여서 치맛자락만 잘 잡고 이동하면 할 수는 있으나, 이모님 도움 없이는 이동하는 게 힘들다. 이제 사진도 찍어야 하고, 리허설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은데 움직이지도 못하니 나도 모르게 P에게 짜증 아닌 짜증을 낸 것 같다. 그래도 다 받아주면서 "Smile, calm down."이라고 하는 고마운 신랑.




리허설 전에 신랑과 나는 본식 전 촬영을 해야 해서, 20분 정도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신부님~ 웃으세요!"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으니까 원래도 사진기 앞에서 예쁘게 잘 웃지 못하는데 더 그랬다. 원본 사진을 받으니 물론 한두 컷 정도 잘 나온 사진도 있긴 하지만, 왜 조금 더 즐기지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리허설을 도와주는 웨딩홀 직원이 없으니, 내가 사회자 대본이랑 식순지 들고 지휘를 시작했는데... 문제는 위치가 멀다 보니 어르신들이 일찍 출발하셨는지 본식까지 2시간이나 남았는데 한 명 두 명 도착을 시작했다. 엄마는 어른들에게 정신이 팔려 집중도 하지 않고, 정말 애를 먹었다. 고마웠던 게 사회자를 나의 직장 보스님에게 부탁했는데, 사회자님이 자세히 동작에 대해 설명해 주고, 한 번 쭉 정리를 해 주어서 너무 감사했다. 친구들이 돈 주고 불렀냐고 할 정도로 사회까지 너무 잘 봤던 우리 보스님.



그렇게 리허설을 마치고, 하객들이 슬슬 도착하기 시작했다. 2주 전에 일기예보에는 해가 떠있었는데, 어제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전 날 저녁에 부랴부랴 투명 우산을 3-4개 정도 구매를 했다. P에게 내일 비 오면 어떡하냐고 징징거리니 "It is what it is."라고 하며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받아들이라고 말을 한다. 다행히 본식 시작 전까지 비는 오지 않았고, 구름이 잔뜩 껴서 파란 게 아니라 하얀 하늘. 뭐, 해는 뜨지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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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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