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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라비 Nov 25. 2022

내가 맞는데 내가 부끄러운 이유

결혼식 현금영수증을 통해 배운 교훈, 본성이 나오는 세 가지 경우.






결혼식을 올리고 2주 정도 지나고 나서 신랑이 항상 가고 싶어 했던 제주도로 7박 8일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렸으니, 남들처럼 신혼도 즐겨야 할 시기인데... P는 잠시 영국으로 돌아간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일주일 뒤에 영국으로 출국을 했고, 내년 초에 다시 한국으로 오는 계획 했다. 총각으로 한국에 입국해서, 유부남으로 돌아간다. P의 인생도 참!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거라 한국에서 보관할 짐과 영국으로 가져갈 짐, 그리고 버릴 짐을 분리하니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렇게 P를 보내고 나니, 여유가(?) 생기면서 못했던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바로, 결혼식 현금영수증.




카드로 결제했던 몇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계좌이체로 진행했는데, 본식이 있는 주에 결제한 업체들은 정신이 없다 보니 현금영수증 요청을 하지 못했다. 계좌이체로 결제한 업체들은 스드메, 한옥웨딩베뉴, 플라워 장식, 본식 촬영, 본식 DVD, 한복 대여, 의자 렌탈, 음향 렌탈 업체였다. 신랑 예복 제외하고는 대부분인 것 같다. 그중, 업체가 컸던 스드메와 한복 대여 업체는 현금 결제를 하니 현금영수증 번호를 확인하고 바로 발급해 주었다. 반면, 나머지 업체들은 내가 요청을 해서 처리를 해 주었는데, 그중 문제가 되었던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바로, 한옥웨딩베뉴와 본식 DVD.






본식 DVD는 카톡으로 1차 가계약을 하고, 계약금 이체 후 이메일로 계약서를 보내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현금가, VAT 별도". 현금영수증을 요청하려고 보니, VAT 10%를 추가로 이체해야 현금영수증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세청(126)에 전화를 해서 문의해 보니, 소비자가 부가세를 납부하는 것이 맞지만, 소비자가에게 금액을 명시할 때는 부가세가 포함된 가격으로 하는 것이 맞다.




국세청 통화 후 해당 업체 홈페이지를 다시 확인해 보니, 현금영수증 관련된 FAQ에도 역시 "부가세 10% 납부 시 현금영수증 가능"이라고 되어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럼 내가 10%를 내지 않으면 세금 신고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하고 따지고 싶었지만, 본식 DVD는 12-1월에 나올 텐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10% 송금하니 현금영수증 발행해 주었고, 언짢긴 했지만 그렇게 넘어갔다.





(수정 - 다시 국세청 홈페이지 확인해 보니, [인물사진 및 행사용 영상 촬영업]도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이네요.)




한옥웨딩베뉴도 문제가 되었는데 이건 또 본식 DVD 업체랑 이야기가 약간 다르다. 현금영수증 요청을 하기 전부터 여긴 업체가 운영하지도 않고 개인사업장이라서 요청하면 탐탁지 않아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래서 요청 전에 국세청 홈페이지도 확인하고, 콜센터에 전화해서 2차로 확인했다. 확인해 보니, 소득세법에 의거하여 예식장업은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체에 속하며 그 말인 즉슨, 소비자가 요청하지 않아도 거래금액이 10만원 이상일 경우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행해야 하는 것이다. 미발행 시 혹은 발급 거부할 경우 소비자가 신고하면 사업자는 벌금을 물고, 신고자는 심지어 포상금까지 받는다. (국세청 홈페이지 참고)




확인 후에 문자메세지로 금액과 결제 날짜를 정리해서 요청했다. 그리고 걸려온 부재중 전화 2통. 일부러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확인했을 때가 조금 늦은 시간인 데다가 다음날은 주말이라서 그 사장님도 바쁘실 것 같아 당일에는 별도로 회신하지 않았다. 그리고 월요일, 다시 한번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아직 현금영수증이 발행이 되어 있지 않네요. 금액 xxx원 (3월00일), 금액 xxx원 (10월00일) 제 번호로 현금영수증 발행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국세청 홈페이지에 핸드폰 번호를 등록하면 발행된 현금영수증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한참 뒤 또 전화가 걸려와서 이번엔 받았다. 사장님 말씀은, 계약을 할 때 항상 카드 결제는 3% 추가금, 현금영수증은 10% 부가세 붙는다고 항상 말씀드린다고 한다. 듣는 순간 짜증이 확 났다. 본식DVD업체의 10% 금액은 사실 몇만 원 더 내면 그만이었지만, 여기는 결제 금액이 몇 백만 원인데 현금영수증 발급을 받으려면 몇 십만 원을 더 보내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 금액을 차치하고 부가세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을 소비자에게 고지한 것도 잘못이거니와 예식장업은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체인 것이 명백한 사실인데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친절하지 않은 말투로, 그런 것들은 사전에 글로 고지해야지 그렇게 구두로 하시면 우리가 어떻게 기억을 하냐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이 사장님의 훈계가 시작됐다. 행사를 좋게 잘 치렀으면 좋게 말을 해야지, 왜 말을 그런 식으로 하시냐. 내가 언제 퉁명스럽게 얘기한 적이 있냐. 내가 계약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 얘기하는 건데 본인이 기억을 못 해놓고서는, 기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해야지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냐라고 하시더라. 듣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퉁명스럽게 한 마디 하긴 했지만, 이 분께 소리를 지르거나 발행해달라고 때를 쓰고 화를 내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들으면서 오히려 '아, 말이 안 통하겠네. 그냥 10% 더 주고 발급받자'라고 생각을 했다. 말씀이 너무 많아 낄 틈도 없었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결혼식 준비하면서 다른 업체들은 다 해주는 게 왜 여기만 이렇게 하시냐라고 하니, 왜 다른 업체랑 비교하냐고 그러시더라. 뭐, 결론적으로는 한참 그렇게 훈계를 하시더니 마지막에 발행해주겠다고 하고 끊으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기분이 참 묘했다. 가감 없이 말하자면 기분이 너무 더러운데, 이 분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너무 창피했다. 이 분의 말씀이 말이 안 되는 것은 맞지만, 내게 말하면서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퉁명스럽게 말하거나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나는 이 사장님이 "10% 더 내셔야 하는데"라는 이 한 마디를 듣고, 자초지종을 더 자세히 파악하기 전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변해 버렸다. 내가 요청한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데, 내가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함으로써 내가 뭔가 못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글이 생각났다. 사람이 본성이 나올 때가 3가지 경우인데 첫 번째는 운전할 때이고 두 번 째는 술 취했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내가 손해 볼 때라고 한다. 사실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나는 술에 엄청 취해도 막말하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살면서 뭐 얼마나 손해 볼 일이 있었을까. (Am I too lucky?) 그런데 이번에 내가 몇 십만 원을 내야 한다고 듣는 그 상황, 내가 손해 보는 상황이 되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말투로 어른을 대했다. 조곤조곤 잘 말을 했어도 똑같은 결과였을 것 같은데,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일을 하면서 부득이하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때, 어떤 분은 이해한다는 말투로 "어쩔 수 없죠, 알았어요."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럼 뭐 어떡해요? 안된다면서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결론이 바뀌는 것은 없지만, 이 말투 하나에서 사람의 본성이 나오는 것 같다.




나이가 이제 30대 초반인데 더 나이들기 전에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반성하게 된 계기가 된, 결혼식 현금 영수증.








(신랑이 한국어를 했다면 신랑이 도와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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