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모 -2년 차, 어른 1년 차
재수생활을 끝마친 뒤, 나는 대학교로부터 3-40분 거리에 있는 동네로 자취방을 옮겼다. 이제 자취방 주변에는 재수학원 대신 이마트가, 언덕 대신 산책할 수 있는 하천이 있었다.
그제야 나는 자취다운 자취를 시작했다. 생애 처음으로 나 혼자 장을 봤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하교 후엔 서울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산책길을 걷기도 했다. 그러고 있자니 나 스스로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이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나 혼자 먹고 자고 걷고 있다니, 이 얼마나 독립적인 어른이란 말인가! 그렇다. 난 이제 막 홀로서기를 시작한 나 자신에게 잔뜩 도취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설렜다. 이대로 혼자서 천년만년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삶이란 재미만 느끼며 살 수 없는 법이지 않은가. 재수생활이 종료됨과 동시에 주말마다 찾아오던 엄마가 더 이상 자취방에 오지 않게 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가 관리하던 방에서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방으로 옮겨졌을 뿐인 자칭 '어른', 타칭 '새내기'인 내가 처음으로 내 한 몸을 책임지기 위한 일을 사부작거려야 했던 것이다.
화장실은 원래 물로 자연히 깨끗해지는 줄 알았건만, 물 떼라는 것이 그렇게 시시각각 증식하는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머리카락은 어찌나 많이 나오던지 머리카락들이 자웅동체처럼 알아서 번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심지어 그때의 난 치킨을 시켜 먹고 남은 뼈다귀를 대책 없이 수챗구멍에 버리기까지 했다. 결국 수도공을 불러서야 겨우 수챗구멍을 뚫을 수 있었으니, 그 당시의 내가 얼마나 대책 없이 살고 있었는지 감이 올 것이다.
나는 그때서야 내가 버리고 묻히고 흘린 모든 흔적들이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길로 깔끔한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라고 귀결되었다면 나도 좋고 우리 엄마도 흡족해하고 이 세상만사 다 평화롭게 물 흐르듯 흘러갔을 테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깔끔한 생활습관을 터득하는 대신 그냥저냥 집이 폭파하지 않는 정도로만 적당히 치우고 사는 요령만 터득했다. 그 덕에 잠 잘 자리를 빼고는 주변이 너저분했다. 일반쓰레기도 최대한 모아서 버렸다. 음식물 쓰레기는 냉동실에 냉동시켰으며 재활용 쓰레기는 재활용 박스가 넘쳐흐를 때까지 잔뜩 모았다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때 버렸다. 그게 최소한의 생체 에너지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아주 똑똑한 현대 1인 가구의 생활양식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기어코 그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여름.
무릇 여름이란 덥고 습한 것이 도리라지만 내가 살던 그 자취방에서 겪었던 여름은 차원이 달랐다. 한 마디로 습식 찜질방이었다. 그 말인즉슨, 벌레가 생겨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모기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소리가 나면 잡으면 되니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날파리였다. 일반쓰레기봉투에 붙어 있던 그 깨 같은 것이 날파리 번데기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의 그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였다.
'그'의 존재감은 실로 압도적이어서 급기야 지구 서열 1위 지성체인 인간의 삶까지 위협하고야 만다. 그와의 첫 대면 후, 나는 이사를 간 뒤 첫여름이 다가올 때마다 겨우내 봉인되어 있던 '그'가 깨어나는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서야만 했다. 안일한 자취생활을 근근이 이어나가고 있었던 내가 난생처음 홀로 맞는 여름. 그날 나는 밤을 꼴딱 새웠고 보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그들의 행태와 습성을 몇 시간 동안이나 검색해야만 했다.
'그'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은 새벽 2시. 바야흐로 대학생이라면 필수 덕목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 벼락치기'를 하고 있던 때였다. 잠깐 머리를 식힐 겸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런데 새하얀 벽지에 얼핏, 갈색 자국 같은 것이 보였다. 뭐지, 싶어서 다시 그 갈색 자국을 봤다. 그건 자국이 아니었다. '그'였다. 내 평생 처음 마주치는 그였다.
바(퀴벌레) 선생. 이름조차 소름 끼쳐서 해리포터마저도 감히 풀네임을 부를 수 없는 그 이름. 그는 내 손가락 두 개 정도의 꽤 우람한 몸체를 자랑하고 있었다. 상황을 판단하기까지는 약 3초간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고, 그러다 곧 현실을 깨달았고, 깨달음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헉! 하고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어른을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부를 어른이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새벽 두 시에 도망칠 곳도 없었다. 게다가 도망친다고 해도 그다음엔 어떻게 한단 말인가. 결국 그 상황을 해결하고 그 결과마저 감내해야 하는 것은 나였다. 내가 바로 그 어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잡아야 한다? 결국 오만가지 생각 끝에 나는 부엌에 있던 가장 큰 국그릇을 집었다. 그 그릇에는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직접 끓인 먹음직스러운 된장찌개가 듬뿍 담겨 있었더랬다. 몇 시간 뒤의 운명은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나는 최대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팔을 뻗다가 순식간에 그 국그릇으로 그를 덮치는 데 성공했다. 내가 녀석을 잡다니! 하지만 쾌감은 찰나였을 뿐, 이제 이 벽에 붙어 있는 녀석을, 국그릇 안에 갇혀 있는 그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국그릇을 힘을 주어 누르고 있는 것뿐. 슈뢰딩거의 바선생이었다면 그가 죽을 확률인 50퍼센트에 모든 것을 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 국그릇 안에는 그를 죽일만한 그 어떤 전기장치도 없었다. 방 안의 습도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결국 다시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바선생을 없앨 수 있는 어른은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 안경을 벗은 눈 (절대 그와 눈이 마주치면 안 돼)
- 고무장갑 (절대 그와 접촉하면 안 돼)
- 이어폰 + 상큼 발랄한 음악 (절대 그의 소리를 들으면 안 돼)
- 넉넉한 양의 바선생 스프레이. 없으면 국그릇으로 대체 (권장되진 않음)
- 선생을 끝끝내 죽이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 (필수)
그 시각, 난 여전히 국그릇을 벽에 붙이고 있었고,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천년만년 있다가 기력을 모두 소진해 말라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일단 국그릇을 아래로 끌고 내려가자. 난 천천히 그 국그릇을 벽에 댄 채로 밑으로 내렸다. 그가 얌전히 있기만을 바라면서...
하지만 왜 이 세상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일까. 동화책이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것처럼 끔찍하고 징그러운 것들은 우주가 알아서 잘 처리를 해주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세상은 그처럼 순순히 움직여주지 않는다. 제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그들만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고야 마는 것이다. 그게 우주의 섭리라지만, 종종 그 섭리가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마 그 순간, 내가 국그릇을 벽에 댄 채 아래로 끌고 내려가던 그 순간, 그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것 같았다. 어쩌면 그는 최대한 벽에 납작하게 달라붙어서 본인의 힘만으로 그 국그릇에 대항할 수 있노라고, 혹은 약간의 틈 사이로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오만, 내지는 희망을 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국그릇을 잡고 있는 인간도 어떻게든 그 꼴만은 보지 싶지 않아 국그릇을 세게 잡은 터였고, 결국 인간의 의지와 그의 의지가 서로 맞부딪치는 바람에... 그의 다리만이 국그릇 밖으로 삐져나왔다가 절단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게 반복되었다. 아, 그건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손에 쥐고 있던 과자를 잘라 과자 부스러기를 흘린 것이 아니라 호빵맨처럼, 자기 몸 일부를 떼어다가 벽지에 붙여놓은 꼴이었다는 것이다.
그 뒤의 일들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는 겨우겨우 국그릇을 벽 맨 아래까지 내릴 수 있었지만 건물을 무너뜨리지 않는 이상 벽과 바닥은 90도 각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아무리 빠르게 국그릇을 바닥으로 내려놓더라도 잠시간 국그릇이 허공에 떠 있는 일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하는 수 없이 그 일을 실행했다가 그가 빠져나왔고, 다리도 없이 도망치는 그를 또 잡았다가 어찌어찌 그를 화장실에 잘 버렸다. 다이어트가 필요하신 분이라면 음식을 먹고 싶을 때마다 이 글을 보시라.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로 나는 그 자취방에 대한 정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집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 내가 집에 대한 혐오를 버리는 수밖에.
얼마 가지 않아 그 일화는 맹수를 마주칠 일 없는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무용담이 되어 내세울 것 없는 이십 대에게 일종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삶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실제로 몇 년 뒤 다른 자취방에서 그를 또다시 마주쳤을 때에도 영락없이 녀석에게 벌벌 떠는 모습만 보였던 것이다.
그래도, 그 일로 나는 혼자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혼자 산다는 건 곧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밤새서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수 있다는 것 따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도시 촌놈이 생애 처음으로 자취방에서 바선생과 직면한 뒤에야 내가 사는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단순히 학교에 제출하는 과제에만 책임이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젠 내가 버린 것들, 내 습관, 심지어는 우연히 내 생활반경 안에 들어온 것들까지도 책임져야 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온전히 감당해 내는 어른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일로 내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던가 인생의 참된 교훈을 얻게 되었다던가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나마 내 행동에 조금 더 책임을 지기 시작했다는 것뿐이었으니까. 그 당시 나는 고작해야 대학교 1학년이었다.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 그 당시 나의 가장 중요한 책무였다. 그러니 그때의 나에게 건강이니 돈이니 습관이니 잔소리를 한다 한들 무슨 말이 들렸겠는가. 아직은 나 자신을 온전히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