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

한 단어로부터 나오는 생각3

by Esther Jo

나는 무엇이든간에 '답' or '결론' 내리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융통성이 없는 편은 아니라, 나만의 답만 고집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만(이었을지도), 아무튼 답을 찾아나가는 것에 큰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질문이 많고,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생각의 꼬리를 물어가는 것을 즐겨왔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은 좋은 결과만 내지는 않았다. 답을 찾아간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의 끝을 바라보고 시작한다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세상을 둘러보는 삶이 아닌, 세상 끝에 가면 뭐가 있을지 목적을 향해 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너무 추상적인 시작이었을 것 같아서, 나의 글을 시작하기 전에 몇가지 질문을 던져보려고 한다. - 애초에 개인적인 질문일 수도 있겠다만 그래도 한번 공유를 해보려고 한다. (할 수 있다면) 여러분들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을 할것인가?



베토벤은 행복했을까? 그가 가장 사랑한 음악을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는데도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베토벤이 아니어도 좋다. 여러분들 마음 속에 있는 '불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라면 좋겠다. 혹은 '비극'의 결말을 가진 캐릭터도 좋을 것 같다. 과연 그들은 '행복'했을까?)



매일 매일하다가 1년뒤에 그만두는 것과, 드문 드문하는데 평생을 하는 것중에 과연, 무엇이 "꾸준히"일까?



Euphonium solo, The Green Hill 음악을 들으면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쳐지지는 것만 같아, 모두가 다 그런 생각을 갖겠지?



이 질문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요리보고 조리살펴본다면 정말 무수한 답변들이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이다. - 하나의 아이템을 가지고 여러가지의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 같다! 이제 내가 생각했던 답과 느낀 점을 공유해보도록 하겠다.




베토벤은 행복했을까? 그가 가장 사랑한 음악을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는데도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 행복이란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애초에 그의 환경과 태도를 나의 기준에서 찾으려하거나 정의하려고 하면 안되었던 것이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는 음악을 들어야 음악이 들린다. 하지만 절대적인 음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악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악보 속에서 모든 선율과 화성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베토벤은, 가히 우리가 말하는 '천.재'적인 음악가였다. 그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사는 물론, 방 문의 노크 소리도 들을 수 없었지만, 자신의 내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완벽하고 환상적인 음악에 의해 취해 삶을 마무리 했었을 수도 있다. 물론 반대로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고독하고 외로운 죽음을 맞았을 수도 있지만, 만일 그 정의들이 그저 우리의 추측일 뿐이라면... 베토벤은 천국에서 시트콤을 보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 혹은 억울하거나! 애초의 내가 생각하는 어떤 정의로 누군가의 행복을 '찾아내고' 싶었다는 것 자체가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매일하다가 1년뒤에 그만두는 것과, 드문 드문하는데 평생을 하는 것중에 과연, 무엇이 "꾸준히"일까?


-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둘 다 꾸준한 것 아닐까?" 나의 친언니에게 이 답을 들은 그 순간이야말로, 지금까지 나의 생각의 경로가 완전히 굳어있구나, 라고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가끔은 나의 생각과 태도를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서 '잘'하고 있다, 또는 '못'하고 있다 지도 받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인정받고 싶은건지, 교정받고 싶은건지, 나 대신 누군가 내 인생 좀 선택해주길 바란건지) 그래서 나의 행동에 대한 타인의 '답'으로 나의 '잘'과 '잘못'을 구별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애초에 '잘'과 '잘못'은 없다. 언니의 답변처럼 '정도'가 다를 뿐이지 둘 다 꾸준한 것이고 혹은 둘다 꾸준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 라고 말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짜릿한 깨우침이었다) 이런 이분법적인 답은 시험에서나 존재하지, 애초에 삶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냥 앞으로 가는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는 모든 것이 그저 과정일 뿐이며, 그게 다소 짧으면 1개월이겠지만, 잘 맞으면 10년 이상이 될 수도 있는 것 뿐이지, 그것이 길다, 짧다, 잘한다, 못한다로 나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 사람이 살아가는 행동의 정의는 객관식 문제가 아니라는 것, 하물며 객관식 답일지언정 타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의 의사로, 선택의 기로에서 가치를 위주로 그리고 만족과 진실성의 기반하여 선택하며 될 뿐이란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Euphonium solo, The Green Hill 음악을 들으면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쳐지지는 것만 같아, 모두가 다 그런 생각을 갖겠지?


- 한 날은 내가 좋아하는 브라브밴드 (나는 클래식 트럼펫 연주자이다) 곡 중 그린힐 이라는 곡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나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항상 넓은 초원과 광활한 들판을 생각했고 거대한 암석산이 펼쳐진 자연광경을 떠올랐다. 그리고 오빠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 음악이 너무 좋아,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광대한 자연 풍경이 떠오르거든. 나는 이 음악을 듣는 청중들고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 같이 공감하고 그런게 너무 좋아." 이 질문을 들은 오빠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광활한 초원지대를 가본 적도, 사진으로 본 적도 없는,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음악을 들려준다면 그들도 별이와 같은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생각도 못해봤던 '생각'이었다. 내가 이 날, 이 대화에서 느낀 것 충격은 가히 엄청났다. 그 곳에 가본 사람은 기억의 되짚음으로 그곳의 내음과 감정을 되새길 수 있겠고, 반면에 그런 곳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초원을 떠올리지도 않았을거란 것을... 그날 집에 돌아와 이런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음악으로 그들이 가진 경험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들 수 있지만, 내가 하는 음악으로 그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음악가가 되어줘야겠다고. 나만 황홀하고 좋다고 느끼는 음악이 아니라, 나의 음악을 듣는 그 누군가들에게도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음악가가 되야한다는 다짐을 말이다.




애매함이라는 것은 답을 모를 때 쓰는 표현이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그런 상태에서 쓰는 단어. 하지만 다른 말로 생각해보면 다양한 의미를, 표현을, 생각을 수용한다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지금 내가 그 단어의 의미를 '애매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 삶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에 답을 찾을 수 없다. 답이 존재하지 않은 질문이 있을 수도 있고, 모두가 정답을 모르는 질문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애초에 답을 찾아나간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도. 마침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답'을 알고 있는 듯한 태도, 어쩌면 알아야한다는 절박함을 내려놓고, 애매함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과 감정을 순수하게 받아드리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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