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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an 04. 2024

【‘아직 꼰대’의 리더십】

“형님 저 떠납니다.”

“어 어딜 가? 임마.”하고 대답했지만 이미 느낌으로 나는 그가 퇴직함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주임 시절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으니, 나와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는 내내 영업에서 1등을 놓지 않고 승승장구해서 누구나 임원까지는 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선배, 후배에게도 너무나 친절하고 부드러워 지지자가 많았던 친구였다. 후배지만 어쩔 땐 형 같아 가끔씩 “너 내 앞에서 목소리 깔지 마.”하고 어깃장을 놓게 하는 어른스러운 동생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회사를 떠난단다. 저간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동안 그의 행동과 태도를 되짚어보게 되는 것은 누구나 조직을 떠날 날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후배는 입사부터 중간관리자로 성장하기까지 매우 성과가 높았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유능한 핵심인재였다. 그래서인지 부장이 되면서 경영기획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도 꽤 능력을 발휘했지만 1년 정도의 기간으로 관리자로서의 역량을 평가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그리고 이내 그는 시험대에 오른다. 시장이 불안정한 분야의 새로운 마케팅으로 가장 성과가 저조한 사업부의 장을 맡게 된 것이다. 새로운 사업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경험과 자원이 부족해 해당 부서의 직원들조차도 자신감과 열정이 없었고, 언제 접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한 번 일으켜보겠다는 각오로 불철주야 노력했고, 심지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살이 쪽 빠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성과가 나지 않은 것일까?     


리더십 행동이론 중 관계지향형 리더와 과업지향형 리더는 늘 대비되어 설명된다. 관계지향형 리더는 인간적이고 마음씨 좋은 온정적 리더로서 과업보다는 사람 중심의 사고와 신사적인 매너로 주변에는 사람이 많고, 새로운 사고도 개방적이다. 그는 전형적인 관계지향형 리더였다. 늘 팀원들이 어렵다고 하면 ‘그래’하고는 본인이 그 일을 해치우는 리더, 팀원의 행동이 느리고 답답하면 ‘이리 줘. 내가 하지 뭐’하는 리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사업의 영역보다는 옳은 일을 추구하며 사람을 중시하는 리더였다. 그런 그의 리더십은 결국 3년이 지나도 성과에 있어서 미진한 결과를 가져왔다. 조직은 철저하게 잔인하다. 기대성과에 미치지 못하면 책임을 묻게 된다.     


조직은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핵심인재이며, 매우 유능한 직원이 관리자로서 과연 역량있는 리더인가? 라는 점에서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조직의 성과는 ‘1+1=2’로는 평가받지 못한다. ‘1+1=3, 4, 5'처럼 개개의 합보다 전체의 합의 더 커야 한다. 그러려면 관계지향형의 바탕에 과업지향의 리더로서 현명한 잔인함을 조금은 갖춰야 한다. 때로는 문제해결을 위한 합리적 통제를, 조직의 목표를 위해 팀원의 자기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행동은 과업지향적으로, 가슴은 관계지향적으로 가지하 한다. 하지만 이런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게 착하고 마음씨 좋은 ‘아직 꼰대’가 떠난다고 인사를 왔을 때, 나는 그에게 ‘꿈’이란 글씨를 써서 부채 하나를 선물하며, 등을 두들겨 주었다. 이 시대 꼰대들의 리더십 행동 유형을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보다 유능했던 후배가 나보다 먼저 조직을 떠나는 모습은 그리 행복한 경험이 아니다. 시대와 환경에 정렬되지 않아 떠나는 그를 보며, 역할에 따른 리더십의 진화는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과 상반된 인간적 고뇌를 주고 있었다.     

그렇게 퇴직 후 한동안 연락이 없던 그 후배로부터 어느 날 연락이 왔다.      


“형님, 라멘 드시러 오세요.”

“그래, 내 꼭 가마.”     


그는 건대입구역 근처의 일본식 라멘집 경영자이자 주방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일대의 맛집으로 점심이면 대기 줄이 길다. 그의 성공을 논하기 전에 나는 그가 끓인 라멘에서 그의 참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작은 조직의 장은 이제 관계와 과업의 균형을 잡으며 멋진 경영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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