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회식 좀 하시죠.”
“어, 뭐라고?”
놀랐다! 유난히 무덥던 지난여름 어느 날, 내년에 과장이 될 김 대리가 회식하자고 한마디 던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직원들에게 회식하자고 하면 꼰대 소리 듣는다고 해서 꾹 참고 있었는데, 의외였다.
반가웠다! 내가 사원이었던 때에는 회식이 즐거웠다. 오랜만에 선배들의 지갑이 열리기도 하고, 또 풍족하지는 않지만 법인카드의 위용에 뱃속에 기름칠은 물론 약간의 일탈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년이 훌쩍 지난 어느 여름 팀활동비가 남았다.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참 반가운 말이 들린 것이다.
당황했다! 주 40/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고 저녁 6시면 우르르 회사를 박차고 나가는 직원들에게 “오늘 저녁이나 같이하지.” 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퇴근시간이면 상사 눈치 따위는 필요 없고, 복사 같은 사소한 일을 시키면 “왜 내가 해야 하냐?”고 따진다. 같은 팀원과의 대화도 메신저로 한다. 자기들끼리 소통은 잘 되나 그것이 상사의 뒷담화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심지어 야근하고 가라고 하면 다음날 사표를 낸다고 하여 상사를 당황스럽게 한다. 요즘 애들이.
섭섭하다! 이런 저런 상황이 자연스런 일이니 받아들이라고 한다. 이것들 담금질을 할까 하다가도 나이 먹은 꼰대 소리 듣기 싫어 참는다. 요즘 애들은 별나! ‘요즘 애들’이란 단어를 쓰면 100% 꼰대란다. 그래서 그런 단어도 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섭섭함이 점점 증폭되어 한숨과 탄식이 될 즈음 “우린 회식 안 하나요?”라고 하니, 무지하게 반가웠다. 그런데 잠시 후 그 녀석의 진정성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회식의 내포된 의미, 속마음을 꽤 뚫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동 없던 회식 제의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소통은 자기들끼리 하고 상사는 음식 값을 내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진짜 술 한 잔 하자는 것인가?
슬펐다! 왜 직원의 회식 제의를 나는 분석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이 나의 복사 지시에 ‘진심?, 레알?’하고 내면의 저의를 확인하듯 내가 지금 회식 제의에 마음 속 ‘레알?’ 하는 것이 슬펐다. 과거에는 퇴근 즈음하여 눈만 마주쳐도 술집에서 만나 대포 한 잔의 시작이 고주망태까지 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진심이 담긴 말에도 의심을 하는 꼰대가 되었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나는 슬프기 시작했다.
변했다! 그래 설사 직원들이 상사는 음식 값만 내고 가라고 해도 그 자리에 불러준 것이 어디냐. 기꺼이 내 지갑을 열어 너희들 뱃속에 기름칠을 해주고 바람과 함께 사라져 주마. 모처럼의 회식 제의를 무겁지 않게, 그리고 즐겁게 수락했다. 꼰대는 술 값 내주는 날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빨리 인지해야만 그 순간이 즐거움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