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은 그 자리에 앉혀준 임명권자가 시킨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고, 이름값은 임명권자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의 기대치에도 부응해야 하는 것이다. 밥값은 기본 필수요, 이름값은 그 너머 알파요, 명예라고 할 수 있다. '얼굴값'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이름값에 따라다녔다. 이름값이 얼굴값이고 얼굴값이 이름값이었다. 간혹 어머니께서는 훤칠하게 생긴 사람이 몹쓸 짓에 연루되면, "아이고, 반반한 얼굴값 하느라 저러는 것 같다"고 하셨다. 밥값이 때로 욕먹는 말인 것처럼, 얼굴값도 죽비가 되어 등짝을 내려치는 말이 되기도 했다.
출처: (조선일보. 태평로 ‘자리값’ 못하면 ‘죗값’ 치른다. 2018. 8. 28.)
연말 또는 2월 말에는 대규모 인사발령과 조직개편이 이루어진다. 꼰대들의 마음속에 ‘나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과 ‘혹시?’ 하는 마음이 교차 된다. 그만큼 추위를 느끼게 하는 때다. 또 12월이면 올 한 해 잘 살았는지 반추하며 성찰하게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정도면 뭐 꽤 잘 살았네’ 할 수도 있고, 미친 듯이 후회할 수도 있다. 그렇게 ‘괜찮았네.’ 하는 사람은 그저 밥값은 한 것이고, 마지막 이별 통보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오래된 꼰대들과 미친 듯이 후회하는 자들은 밥값만 해왔을 수 있다.
조직의 평가는 명확하다. 밥값을 못하면 바로 옷을 벗어야 하고, ‘밥값’만 하다가 연말에 승진명단에 이름이 오르면 ‘이름값’하라고 난리다. 이름값을 요구받다가 그 값을 못 하면 또 나간다. 이름값 좀 한다고 긴장을 늦추는 순간 우리는 얼굴값을 요구받는다. 그 얼굴값은 책임이다. 하는 일에 대한 성과만이 아닌 이후에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 즉 평판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누구나 얼굴값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얼굴값은 가늠이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동기를 가지고 사업을 해도 결과가 나쁘면 그것은 실패한 사업이 되어 꼴값이 된다. 반면 시작은 미약했으나, 또는 그저 일상적인 일이지만 시기와 운이 맞아 많은 이익을 가져오면 좋은 사업이 되어 이름값+얼굴값을 날리게 된다. 이는 그토록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도 대학졸업생이 가장 가고 싶은 회사에 이름을 올리는 그룹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그룹에서 밥값, 이름값만 하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과거에는 자신의 역할에 맞춰 밥값, 이름값만 해도 지장이 없었지만 이 시대는 얼굴값을 하면서 밥값과 이름값을 해야만 한다.
지금까지가 꼰대들의 이야기였다면, MZ들이 꼰대 되는 그날의 얼굴값을 생각하게 된다.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들도 얼굴값 해야 먹고살 것임을 먼저 간 꼰대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방법이 다를 것이다. AI를 꼼짝 못하게 하는 질문을 마구 날리는 MZ, 빅데이터를 떡 주무르듯 해 고객의 니즈가 어디에 있는지 단시간에 파악하는 MZ. 그들의 얼굴값은 뭐 그런 것들이 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하면 더 골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