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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Aug 26. 2022

'위화'의 책들

[하나의책] <위화 읽기> 모임 후기


2022년 4월부터 8월까지 하나의책에서 <위화 읽기>를 진행했습니다.


위화를 언제부터 알게 됐을까요. 아마도 어렸을    책장에 꽂혀있던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처음 알았을 겁니다. 피를 파는 이야기,라는 점이 신선하고 신기해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한참 후에 초기 단편소설을 읽으며  강렬한 문장을 쓰는 작가구나,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그의 책을 여러  읽어보고 었고, <위화 읽기> 모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은 순서대로 『인생』,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허삼관 매혈기』, 『제7일』이었습니다.


순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인생』은 위화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하고 이듬해 영화로 제작되어 위화의 이름을 널리 알린 터라 안 읽을 수 없었습니다. 소설은 푸구이란 노인이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회상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치 중국판 포레스트 검프를 보는 듯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푸구이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펼쳐지는데요. 여러 사건들 가운데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가는 푸구이의 삶이 참 기구합니다. 원제는 활착, 번역하면 '살아간다는 것'이라는데요. 역사 속에 삶이 부서져가도,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위화가 현대 중국에 대해 쓴 에세이입니다. 부제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에서도 알 수 있듯 열 개의 단어(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를 통해 현대 중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톺아봅니다. 적나라한 묘사 때문인지(?) 중국에서는 금서로 지정당했다고 합니다.

앞 다섯 꼭지는 위화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는 에세이라 재미있기도 하고, 자기 이야기인지 글이 참 흡인력 있습니다. 반면에 뒤 다섯 꼭지는 우리는 안 쓰는 현지어들도 있는데 1970년대 후반 마오쩌둥 사후 중국이 개혁개방하면서 어떻게 급격한 사회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 변화들이 만든 현실은 어떤 것인지 살펴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 평소 중국을 바라보며 떠올랐을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됩니다. 지금 왜 중국에 대해 읽는지 궁금해서 모임에 나왔다는 회원분이 기억에 남기도 하고, 끝나고 우리끼리 우리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열 단어를 꼽아본 것도 기억에 남네요.


『허삼관 매혈기』도 『인생』과 비슷하게 한 노년의 남성의 삶이 펼쳐집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허삼관이라는 주인공이 피를 파는 이야기입니다. 허삼관이 피를 파는 건 가족을 위해서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읜 허삼관은 그래서일까 가족 사랑이 참 애틋합니다.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7일』은 현대 중국을 다룹니다. 양페이라는 젊은 남성이 죽고 난 후 연옥에서 7일을 보내는데, 자기와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연옥에 머무는 다른 영혼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인생』이나 『허삼관 매혈기』가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이 소설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 태어난 이들이 대거 등장하며 현대 중국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도 작가 자신이 염려하며 바라본 급격한 변화를 겪은 중국의 부작용이 드러납니다. 이야기를 읽어 가면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드는데, 아마도 해외 토픽에서 봤을 법한 기묘한 이야기들이 이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화 읽기>는 소설 3권, 에세이 1권으로 진행했는데, 더 읽고 싶었지만 못 읽어서 아쉬운 책이 있습니다. 바로 『내게는 이름이 없다』, 『형제1,2』『문성(文城)』입니다.


『내게는 이름이 없다』는 초기 단편들을 모아놓은 소설집인데 스산하고 폭력적인 위화의 초기 스타일이 잘 드러나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인생』이나 『허삼관 매혈기』 중 하나를 빼고 이 책을 읽었어도 좋았겠다 싶네요.

『형제1,2』는 위화의 소설 중 유일하게 2권(예전엔 3권으로 번역되었습니다)으로 이뤄진 소설이라 읽고 싶었는데, 역시나 독서모임에서 2권 이상의 책은 시도하기가 부담스럽네요.

『문성(文城)』은 2021년 위화가 낸 장편소설인데, 아직 국내에 번역이 되질 않아 읽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아쉬운데 빨리 번역본을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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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의 책 중 가장 좋았던 책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그중에서도 앞 부분 다섯 꼭지입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잘 썼고, 수려한 문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다음으로 좋았던 책은 아무래도 『인생』입니다. 기구한 운명 앞에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 푸구이가 지금도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짧게나마 만나 본 위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글은 참 잘 쓴다, 하지만 그가 그려내는 세계는 그리 넓지 않다, 란 생각입니다.

작가로서의 재능은 탁월해서 읽는 재미는 뛰어나지만 그려내는 세계가 한정적인 느낌입니다. 그가 그려내는 배경이 중국이고, 남성이 주요 등장인물로 그려내는 까닭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게 위화의 작가로서의 소명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중국 작가 읽기는 다음에도 또 도전해 보고 싶은 주제입니다.

다음엔 모옌이나 가오싱젠, 옌렌커 같은 작가 읽기를 해볼까 모르겠네요. 기회가 된다면 이들을 모아서 <중국 문학 읽기>를 꾸려봐도 좋겠습니다.


2022.4.14. 『인생』독서모임, 2022.5.12.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독서모임
2022.6.9. 『허삼관 매혈기』 독서모임
2022.8.4. 『제7일』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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