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계진 Sep 18. 2022

지기 싫은 마음

언어습관 돌이켜보기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비대면 공부모임을 했는데, 모임이 끝나고 거실로 나가니 옆지기가 내 말에 화와 짜증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듣고 나서 처음엔 황당했다가 점점 민망해졌다. 두 시간 동안 모임을 하면서 전혀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평소 언어습관에 대해 돌이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회사에서 업무상 수시로 소통하는 외부 기관 직원이 있는데, 어느 날 통화하다가 울분을 터뜨렸다. "왜 이렇게 명령조로 이야기하느냐, 이런 말까지 하지 않으려 했는데 내가 당신보다 십수 년은 나이가 더 먹었는데 왜 그러느냐, 전임자와 비교했을 때 당신이 제일 심하다."라는 말이었다. 충격적이었고, 순간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수긍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상대가 내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거나 내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덧붙이는 말에 쉽게 내 감정이 실렸다. 평소 급한 성격에다 센 자존심이 합해져서 그러지 않을까 싶었다.


왜 나는 말을 상냥하고 곱게 하지 못할까. 몇 주 고민하며 떠오른 생각은 말 이면에 깔린 마음이 본질이겠구나, 란 것이었다. 그건 지기 싫은 마음,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기 싫은 자존심이었다. 이 마음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어린 시절까지 올라가야할 게다.


오래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지기 싫어했다. 지기 싫은 마음은 주로 처신과 말에서 나타났다. 말다툼이 생기거나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꿈에도 싫었다. 그런 기질은 오래도록 몸과 마음에 새겨졌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말에 그런 마음이 드러났으리. 상대를 지긋이 아래에 두고 바라보거나, 나 홀로 고개를 치켜들거나 했다. 옆지기나 가족처럼 가까이에 두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 마음은 더 크게 드러났다. 내 말이 주변 사람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종종 옆지기가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넌 왜 항상 이기려고만 해? 지면 어떻게 돼?"


이건 알고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길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트러블이 생길 경우, 가장 먼저 올라오는 마음은 상대를 나무라고 싶은 마음이다. 내 잘못일 수도 있다는 사실보다도,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기보다도, 내가 옳고 상대는 틀렸으리라는 판단이 먼저인 것이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진전되며 드러나는 내 민낯이 몹시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얼마나 꼴불견일까? 내 곁에 있는 이들은 나를 얼마나 참고 살아온 걸까?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러니 이제는 좀 지면서 살아야겠다.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면서, 좀 지면서 살아도 세상이 무너지거나 내 삶이 부서지지 않는 다는 사실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이제껏 이렇게 살아왔으니 남은 평생 이렇게 살면 꼬부랑 노인이 되겠지. 그때쯤이면 좀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을까나.


매거진의 이전글 추석 연휴 대하소설 읽기 프로젝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