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인연의 소중함과 기적같은 삶-다키모리 고토
<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준 소중한 것>을 읽고
인연(因緣)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또는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을 뜻한다. 불교에서 특히 중시하는 인연은 인과 연을 아우르는 말로, 인(因)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緣)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라 한다. 석가모니는 모든 것은 인과 연이 합쳐져서 생겨나는 것이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고 했다.
일상의 삶에서도 우리는 종종 '인연'이란 단어를 쓴다. "우리는 인연인가봐", 혹은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봐." 라고 말한다. 만남의 이유도, 헤어짐의 이유도 인연이라는 모순된 핑계를 댄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 일에 마치 신이 그렇게 피조하셨다는 초월적 이유를 대는 것은 아닐까.
삶 속에서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인연이 얽히고설켜 관계를 이어간다. 만나야하는, 혹은 만나고 싶은 인연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럴 수 있는 인생이 아니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서 말하듯, 때로는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인연은 온전히 인간의 영역이라고만 할 수 없는 듯도 하다. 자발적인 선택과 외부적 요인이 맞물려 인연을 이어가는 듯도 하나, 또한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만 그 결과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좋은 인연으로 이어가려는 노력에 신이 가끔 답을 해주기도 하니, 그를 인연의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는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이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그저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피천득 수필가의 시 <인연>에서 그 답을 찾는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이 와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1974년생 방송작가 출신이며, 다섯 마리 반려묘와 살아가는 일본 작가 다키모리 고토의 <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준 소중한 것>-자음과모음 출판사-은 이런 삶 속의 인연에서 지켜야 할 소중한 것과 상처에 대한 진정한 용서를 잔잔히 풀어가는 힐링 소설이다.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인연으로 살아가는 것은 사람만은 아니다. 반려 동물들도 다양한 사연으로 사람과 얽혀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한 인연의 고리 중에 슬픔의 바닥에서 고통 받는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고, 다시 시작하게 하는 기적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제1부 울지 않는 고양이
제2부 인연의 조각
제3부 투명한 출발선
제4부 기적의 붉은 실
시골 한 구석 파친코 가게에서 일하는 고로, '입양 부모 찾기' 노트를 꼼꼼이 기록하며 유기 동물 보호를 위해 애쓰는 단골 유미코 아줌마, 한량 사장 가도쿠라 씨와 그의 자라지 못한 아들 쇼타로, 심부름 센터 견습생 히로무, 이들의 삶은 여러 고양이들과 함께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다. 노트에 적힌 한 줄 메시지로, 혹은 한 장의 사진으로 출발하여 그 인연의 실을 찾아가게 된다. 그 끝은 기적같은 사랑이었다. 혈연의 가족이 아니어도 더 진한 사랑을 지닐 수 있고, 혈연이었으나 서로 고통을 줄 수 있음을, 또 용서학고 보듬을 수 있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의 후반부에 들어서서는 각자의 삶을 관통해 온 고통을 제대로 바라보게 하고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이런 결말까지 오기에는 고양이의 역할이 크다. 이는 작위적이라기보다는 따스한 신의 배려같은 느낌을 준다. 결코 포기하지 말고 행복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라는 신의 메시지 같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기적이며, 오늘 이렇게 살아낸 것도 기적이니,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얽힌 실타래 끝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적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서로 사랑하며, 위로하며, 용서하며, 평안히 산, 오늘이 바로 기적같은 날이라 여기자.
사람은 말에 속고 말에 상처 입어 슬픔의 밑바닥에 빠져버린다. 그렇지만 그 슬픔의 밑바닥에서 끄집어내는 것도 말이다. 다만 그 말은 인간의 소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도 동물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마음의 소리에 의해 슬픔의 밑바닥에서 구원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P62
가족으로 산다는 것에 혈연 따위는 상관없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슬픔과 연약함을 서로 뒷받침해주고, 인성이라는 이름의 길을 서로 손 잡고 걷고 싶다고 바라는 것. 그 마음이 가족이라는 인연의 끈을 강하게 엮어주는 것이 아닐까......
<중략> 어쩌면 혹시 반짝반짝 빛나는 인연의 조각은 모든 사람의 손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가 품고 있는 인연 한 조각을 꺼내들면 그 어떤 보석도 흉내내지 못할, 이 세상에 오직 단 하나만 있는 반짝임이 뿜어져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모인 인연 조각은 가족족이라는 색채의 빛이기도 하고, 우정이라는 색채의 빛이기도 할 것이다. 같은 반짝임은 단 하나도 없는 인생의 보물일 것이다.
-P110
어쩌면 사람은 전진하기 위해 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만들어 새로운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P161
정말로 소중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존재가 아닌 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존재를 함께 믿어줄 가족이나 동료, 친구가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형태 따위 필요 없다. 마음 속에서 살아 있다는 말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P162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난다는걸 다들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이렇게 우리가 살아 있는거나, 소중한 사람이나 반려동물과 다시 만나는 건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야. 죽어버리면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현실을 도호쿠에 사는 우리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체험해 버렸으니.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게 아닐까....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난다는 것도, 다시 만나고픈 반려동물과 만나는것도, 모두 기적이라고 나는 생각해. -P199
원망하면 지는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원망하며 살면 난 나답게 살지못해. 남의 인생에 휘둘리기만 하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쪽 원망 안 해. -P232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인간 따윈 없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다른 사람에게 용서받으며,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는 거다. -P234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마이너스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불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모두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행복을 몇 십 배, 몇 백 배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억지부리거나 아닌 척하려는 게 아니라, 나는 마음속 깊이 그렇게 느꼈다. <중략>
이 세상에 태어난 기적
오늘을 사는 것도 기적
사람은 왜 태어난 것일까
사람은 왜 살아야만 할까
작디작은 인간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슬픔의 밑바닥을 헤매던 우리는 고양이에게 소중한 것을 배웠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면 우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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