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한 삶들이 실날같은 희망을 안고 찾는 곳, 지역 고용 센터의 <실여급여과>에서 금요일 퇴근 직전에 무장단체가 습격한다. 그 때의 총상으로 식물인간이 된 한 여인이 미스테리한 유체 이탈 상태로 겪는 경험들과 형사들이 범인을 검거해 가는 과정과 결과가 주된 서사이다. 일단 사건의 배경이 참신했다. 은행도 아닌 실여급여과에서 일어난 무장 습격이라니. 그것도 한국에서 총기 소유까지 한 습격이라니. 작가의 공무원 삶이 녹아 있는 배경이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절박한 실업의 상황에서 그나마 희망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찾는 곳인 만큼 온갖 사연이 넘치는 곳이니 무엇보다 다양한 사연투성이인 건 당연했다.
실업과를 찾는 이들만 사연이 가득한 것은 아니다. 고용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들 역시 그들의 각양각색의 고충을 일일이 듣고 적격 여부의 판단을 신중히 해야 하는 입장이면서도 본인 역시 개개의 사연들로 아픈 이들이었다.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마는 들여다 보면, 오는 이도 맞이하는 이도 결국은 나약한 인간들이다. 이런 '상실의 숲'이라 칭하는 공간에 무장 단체가 습격을 하고, 직원들은 고스란히 그 공포를 겪었으며, 이 와중에 직원 이안은 총상을 입고 의식불명의 긴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로부터 강력반 형사들의 검거 작전이 시작되고 범인들과의 지리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겉으로는 범죄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소설이다. 많은 이들이 관계 속에서 일어난 상실과 슬픔을 겪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주 흐름에서 살짝 벗어나면 영혼 유체이탈이라는 소재로 미스테리한 초현실적 세계 또한 다루고 있다. 현실과는 다른,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이 세상 너머의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현실에서는 맺어지지 못한 관계가 그 세계에서는 긴밀하게 엮이고 서로를 위로한다. 보이지 않는다 하여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그 세계에서는 절망으로 삶의 끈을 놓으려는 동료를 구하고, 악의적 욕망으로 타인을 쉽게 죽이려하나 그래도 다시 생명의 기회를 주는 그런대로 따뜻한 세계이다. 이는 현실에서 기적이라 부르는, 작가가 제목에 붙인 <특이사항>은 바로 현실에서 흔하지 않은 바로 그 기적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아 그런 기적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뿐.
이안 희진 호찬 세 명의 인물들과 함께 삶의 절망과 그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희망, 그러나 여전히 차가운 현실을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악의적인 발상과 계획으로 인하여 여러 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진정 우리 삶은 선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악마를 피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내 삶이 부서지고 사라질 수도 있기에.
긴장감 속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서사와 함께 매 페이지마다 작가의 삶을 관조하는 깊은 문장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닮고 싶은 문장들이 페이지마다 내 손끝을 놓아 주지 않는다. 이제사 알게 된 작가의 문체가 참 매력적이다. 결국 글은 그 사람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작가가 궁금해졌다.
인간의 마음은 믿음에 비례하여 힘을 얻는다. 무거운 인생에 비례하는 묵직한 믿음이 균형감각을 찾아주는지도 몰랐다. 삶은 어딘가에 등을 기대지 않으면 곧 무너질 위태로움으로 가득하니 말이다. -p43
말할 수 있지만 닿을 수 없는 슬픔은 크다. 삶의 슬픔은 대개 서로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흩어지는 언어때문에 생긴다. 도착지에 이르지 못하고 해체되어버리는 언어때문에. 내뱉었지만 의도대로 이르지 못했거나 마음 안에 찌꺼기처럼 남아버린 수많은 발화 때문에.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말이 오롯이 전해지는 것이다. 입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말까지 읽어내는 것이다.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내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듬거릴 수밖에 없다. -p67
시간이 풍화작용이 감정까지 깎아낸다는 사실이 축복이었다......과거를 대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과거를 과거 속에 잠기도록 두는 것이다 -p82
관계의 메마름은 언어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옥한 관계는 서로를 향한 충분한 언어를 토대로 구성된다. -p110
누구도 실존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는 모두 죽음으로 수렴된다. 실존은 나를 둘러싼 인간들이 내게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타자들이 나를 누구라고 규정함으로써 나는 연속성과 확실성으로 세계 속에 존재한다. -p129
타인을 읽어내는 일은 타인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지만, 읽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읽을 수도 있고 상대도 모르는 것을 읽어낼 때도 있다. -p184
평범한 걱정 속에 존재의 인정이 깃들어 있는 것만으로, 존재가 존재가 인정한다는 것, 서로를 향한 언어가 매끄럽게 서로에게 가 닿은 것. 서로를 향한 언어가 매끄럽게 서로에게 가 닿는 것, 그것만으로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서로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마다 사람은 존재한다. -p185
하나의 죽음은 수많은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해체시킨다. 갖가지 풍문으로 죽음의 이유를 상상하거나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죽음 뒤에는 어떤 이야기도 만들어질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이야기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야기를 만들어 싶어하는 인간들의 욕망만 난무한다.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