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책이?
전체 차렷~!
벌써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섰고, 반장의 구령은 시작되었다. 쉬는 시간 담임 선생님의 호출로 잠시 교무실에 내려가서 과제 정리 일을 도와드리고 왔을 뿐인데. 오전에 보았던 서랍 속 역사 교재가 감쪽 같이 사라지고 없다. 순간 당혹감에 서랍을 뒤지는 손이 떨렸다. 열린 창밖에서 바람이 한 차례 불어, 머리칼을 흔들었으나, 열기만 느껴지는 초여름 오후였다.
왜? 책 없어?
짝지가 묻는다.
고개만 가로젖는 나.
자, 수업 시작하자.
책 없는 놈들 다들 일어나~!기본이 안된 학생들은 수업 들을 필요가 없다.
어쩌나, 일어나야하나. 이런 적이 없는데. 갑자기 공포가 밀려와 눈물이 절로 뚝 떨어졌다.
푹 숙인 고개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일어서려는 순간, 내 책상 위에 사라졌던 책이 툭 떨어졌다. 뒷자리를 돌아보니,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입모양으로만 '몰라'라고 한다.
어디갔다 온 것일까.
누가 장난을 친 것일까.
일단 돌아온 책에 안심하며, 진도 부분 페이지를 찾아 펼쳤다. 책 사이에 보이는 쪽지.
급하게 쓴 듯 다소 날려쓴 흔적이 역력한 글씨체이다.
Iam so sorry,
But you are so pretty, -theaf
그때 난, 순간 쪽지 속 문장에 쓰인 so는 '그래서'라는 접속사가 아니라, '너무'라는뜻의 부사구나라고 생각했다. 학원을 거부하고 독학으로 공부하며 한창 영어에 빠져있던 때였으니. 책을 훔쳤기에 theaf인지 다른 의미가 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성이 도이기에 그런 별명을 가진 장본인이 누군지 알만 했다
별명으로 밝힌 그를 노려봤다. 두 손을 기도하듯 합장하고 계속 빌고 있었다. 티나게 홱 고개돌려 기분 나쁜 나의 마음을 전했다.
얼른 쪽지를 필통에 집어넣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 바로 구겨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는 났으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던 것같다. 무서워서 두근댔던 심장의 연속인지, 느닷없는 고백에 다시 뛴 심장인지 진정되지 않는 가슴에 나머지 수업을 어찌 들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처음이 아니었다.복도를 지나칠 때 괜히 친구가 밀어 떠밀린 척 내 어깨와 부딪히기도 했고, 농구 코트를 지나칠 땐 굳이 내 앞에 공이 떨어져 그가 달려와 말을 걸기도 했다. 유달리 키가 크고, 날쌔서 그런 별명이 붙었나 싶게 유별난 아이였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이다.
그렇게 쪽지로 다가온 시작이었다. 흩어진 과거 기억들 중 뇌리에 각인된 사건들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어제 일마냥 또렷하다. 앞으로 이어질 우리의 많은 추억 중 지워지지 않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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