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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Sep 27. 2024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더라

-모두가 사는 법

 여름이 끝나리란 건 모두가 안다. 사계절의 나라에 영원한 여름은 없을테니. 그러나 어제도 오늘도 다가올 내일도 연이은 열대야가 말하듯 덥기만 하니 과연 끝나긴 할까 믿지 못할 날들이었다. 그저 체득한 더위를 피하는 법을 따라 하루를 견뎌내었다. 


 어느 순간 매미 소리는 사그라들고 풀벌레 소리가 들리며 아침 저녁 제법 선선한 바람에 가을을 느낀다. 오늘 아침, 늘 그러하듯 잠든 식구들을 뒤로 하고 나선 아침 출근길, 훅 하고 끼친 바람은 선선함을 넘어 쌀쌀함에 짧은 겉옷에 눈길을 주며 당황해 했다. 슬그머니 곁에 온 가을은 또 그렇게 우리를 쓸쓸하게도 설레게도 한다.


 살아가는 삶인들 다를까. 부모님께서 주신 고유 명사로 살아가는 삶의 마지막이 있음을 안다. 하루 일과 시작 전 노트북을 켜면 '누구누구 안타까운 죽음'이란 뉴스는 쉽게 접할 수 있다. 그것이 사고사이든 질병사이든 읽는 동안은 감출 수 없는 먹먹함이 있다. 멀지 않은 죽음이나, 멀다고만 여긴다. 다들 죽음이 친절히 그 시기를 알려 줄 것이라 착각하고 산다지 않는가. 나와는 상관 없는 먼 미래라 치부하며. 원인을 물문하고 나에게 닥친 부고는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처음부터 없는 결핍이 아닌, 엄연히 존재했던 것의 완전한 소멸, 땅꺼짐을 경험하게 한다. 

  

 길 것만 같던 여름이 물러나듯이 지극한 슬픔도 결국은 옅어지리란 걸 안다. 계절에 비할 수 없는 감정적인 문제이니 그 시간차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여름 내 온열사 하듯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은 어디쯤 머물러 있을까. 어느 계절을 보내고 있을까.


아직 뜨거운 슬픔에 젖어 있는 이도 있고, 그래도 선선헌 바람과 가을벌레 소리에 위안 받으며 한 걸음 앞으로 디뎌가는 이도 있다.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는 제각각의 애도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3년이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부모님과 여동생, 그녀의 어린 아들을 하늘로 보낸 우리 가족은 어느 계절을 보내고 있는 게 옳을까. 남들도 감히 묻지 못하는 이 슬픔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낙인으로 남아 제 자리를 찾기 위해 제 각각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한 남자와 여자, 둘이 티끌같은 지구에서 필연인 듯 우연으로 만나 사랑하였고, 운명이라 여겨 늘 붙어 있고 싶어 결혼이란 연결 고리를 채웠더니 갑자기 곁가지마냥 쭉쭉 늘어난 가족 구성원들과의 인연도 시작된다.


 남남으로 스쳐도 모를 사이가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같이 식사를 하고, 덕담을 주고 받고, 추억을 공유하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정이 쌓이고 또다른 애정의 감정으로 깊어진다. 같이 기뻐하고, 안타까워하는 묘한 감정의 교류는 때론 부부의 정보다 깊어 부부의 결점도 덮어주는 묘약이 되기도 한다.


 나의 늘어가는 주름과 근심에, 남편의 무심함과 실수에 사랑이란 호르몬을 묻어 버릴 즈음 내 나이가 지층마냥 쌓이듯 늙으신 부모님의 생사를 걱정하게 되었다. 마냥 언덕인지 버팀목인지 곁에 계실 것 갔던, 큰 세계가 전화 한 통으로 무너지는 경험을 연이어 겪었다. 네 번의 죽음은 희한하게 직접 목격하지는 못하고 전화선을 타고 전달되었다. 이를 두고 애석해 하는 이도, 다행이라 여기는 이도 있으나, 결국 뜬금없는 전화는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라는 말로 시작되는 전화로 소멸된 가족 소식을 듣는 기분은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그저 주저 앉게 할 뿐이다. 그 후로 가족의 전화라 할지라도 한 숨 쉬고 받게 되며, 별 일 없지?가 첫마디가 되었다.


  독하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고, 밤마다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남편을 보는 시간들도 그렇게 흘러가더라. 해야할 일 하고, 하기 싫어도 할 일 하는 시간이 쌓이고 보니, 결국 인간사 별 거 아니라는 진리를 느끼지만 결국 너무나 작은 우리는 그렇게 바닥에서 허우적 대면서도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아니, 언제든 또 잃을 수 있는 가족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야함을 알게 되었다. 또 다시 전화 한 통으로 비통함을 겪을 지언정 오늘 하루를 서로 사랑하며 더욱 아끼며 살아갈 것이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더 나은 변화를 끌어 안고 당당히 살아갈 것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또 있는 대로 시간은 흘러가더라. 그래도 목구멍으로 음식 삼키며 할 일 해가며 식구들 보살피는 하루가 그래도 어김 없이 뜨고 지더라. 울컥하는 서글픔 쓱 닦아내며 '저희 잘 살고 있어요' 한바탕 지르고 또 주먹 쥐고 나아가더라구. 여름이 갔듯이 그렇게 지나가는 삶을 잘 살 것이다.


 세상 떠들썩하게 지독히도 더웠던 여름을 보낸, 이 가을 초입에 잘 살아내고 있는 모두에게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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