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전하지 못하는 진실
-하얀 거짓말의 끝이 두려운 나날
선의의 거짓말, 하얀 거짓말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과연 의도가 선의라면 거짓말은 해도 되는가. 그 선의라는 포장이 말하는 이의 해석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결과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의 오만한 판단으로 한 거짓은 아닌가. 단지 기만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거짓의 속성상 하나의 거짓은 그를 감추기 위한 더 많은 거짓을 낳는 법. 늘어나는 거짓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우리들. 그러나 이 거짓을 끝낼 용기가 없는 우리는 여전히 거짓말쟁이이다.
급작스런 슬픔은 한꺼번에 감당할 수 없어서 두고두고 삶을 잠식시키나보다. 시간은 공평하여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흐르는 것이라.
사흘 뒤가 첫 기일이다. 일년 전 그냥, 문득 우리 곁에서 사라진 열 세살 조카와 그 조카의 엄마, 남편의 하나뿐인 여동생, 나의 하나뿐인 아가씨. 아직 곁에 없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나 우리끼리는 그래도 공유했던 추억도 언급하며 때로는 원망하고 그립다 말하기도 하면서 애도 기간을 보내고 있다.
벌써 설날과 추석 두 번의 차례상을 치르며 조카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곤약을 잔뜩 넣어 탕국을 끓이고, "엄마는 왜 이렇게 숙모처럼 맛있게 못해?"라며 좋아했던 소고기 산적을 하며 그래도 조카 얘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은 아픔을 희석시켜 준다.
못하는 게 없을 만큼 재주꾼에 잘생긴, 인기 않은 그녀석의 마음까지 돌보지 못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믿고 싶은 대로 강풍 불던 그날 하필 호기심 많던 녀석의 실족이었을까. 그렇게 날지 못한 조카는 채 초등도 졸업하지 못한 앳띤 얼굴로 신의 곁으로 갔다.
가슴에 묻은 자식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한 그 어미는 결국 넉달의 몸부림 끝에 자식의 마지막과 같은 길로 따라 갔다. 요즘처럼 단풍이 그렇게도 예쁜 가을이었다. "난 내아들처럼 불효는 안 할거야 울엄마 맘 아프게 안할거야"라며 우리를 안심시켰으나 정작 본인의 생채기를 이기지 못했다. 온 몸을 휘감은 상실의 검은 손에 결국 생의 온기를 잃거가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저 시간이 약이려니 그런 통속적인 치유책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을, 여동생을. 이모를 또 신의 곁으로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하루 아침 막내딸을, 손자를 잃은 어머니께 이 무거운 진실을 전하지 못했다. 이미 병세가 짙은 노인에게 청천벽력의 소식은 삶의 끈을 놓기에 딱 좋다는 이유였다.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고....매일같이 오던 딸의 발걸음이 딱 끊어진 것을 영민하신 어머니께서 어찌 눈치채지 않을까. 다행 코로나는 좋은 핑계가 되어주어 앞선 조카의 심각한 병과 그로 인한 그 어미의 치료가 첫거짓이었고 코로나로 발이 묶였음이 그 다음 핑계였다. 이미 파킨슨으로 의사소통의 기력도 없으신 분이 어럽게 핸드폰을 가리키며 당신 보는 앞에서 막내딸에게 전화하라고 하실 때. 우리 모두 내려앉는 가슴 부여잡고, "이미 여러 번 시도했는데 연결이 안되네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랍니다"라고 또 거짓을 고했다.
과연 옳은지 누구도 판단하지 못하나, 우리는 그저 그 하얀 거짓말의 탄로 후가 두려운 것이다.뻔한 거짓말을 하고선 들킬까 노심초사하는 딱 초딩꼴이었다. 언제 진실을 전할 용기가 있을지, 누가 진실의 종을 울릴지 아직은 나서는 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