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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May 31. 2024

All we have is now

타투

5년 전 인터넷을 한참 뒤지고 후기를 백만 개쯤 읽은 후, 내 몸에 글을 새기기로 마음먹었다.

타투를 하기로 했다. 엄마는 나를 호적에서 파 버린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집에서 쫓아낼 거라고 했다. 마흔이 넘어 시집간 딸에게 말이다.

아빠는 팔뚝에 아주 큰 사랑의 큐피드 문신이 있었다. 내 어린 기억에 아빠는 여름에도 긴팔 셔츠를 입고 다니셨다. 택시운전사였던 그는 손님들의 시선과 사회의 편견을 두려워했다. 엄마 말로는 군부시절에는 문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이 있다고 한다.


아빠의 부끄러움을 내가 지니고 살까 엄마는 말도 못 꺼내게 했다. 학교 선생님이 미쳤냐고 길길이 화를 냈다. 나는 프리랜서 교사라 공무원도 아니었고 내 집에 살았다. 엄마에게 쫓겨날 일 따위는 애초에 성립이 불가능한 일이다. 호적도 벌써 원 씨 집안으로 옮겨져 그 집 귀신으로 예약되어 있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그리고 세상이 변하고 내가 변했다. 부모님을 두려워하던 예전의 나는 없다.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타투는 thanks. 감사였다.

내 병을 인정하고 치료를 받으며, 삶의 질이 조금씩 나아질수록 나는 많은 것에 감사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있음이 감사했다. 두 번의 암을 겪으며 죽음이라는 말 앞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생활이었고 나를 반겨주는 학생들이 있는 직장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나의 방목에 이것저것 잘도 주워 먹으며 자유롭게, 바르게 자라주는 내 아이들에게도 감사했다.


사실 가장 감사한 것은 내가 불안과 수치심에 몸부림치지 않음이었다.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섬망도 더 이상 겪지 않았고, 술을 마시면 내재된 불만들을 쏟아내던 폭력과 허언도 사라졌다.


내가 thanks를 몸에 새긴 이유는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 속에서 스멀스멀 거리며 언제 어디서 다시 고개를 쳐들고 올라올지도 모르는 검은 그림자들을 막아내는 부적이었다. 감사라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하며 봉인된 우울들을 꾹꾹 늘러 밟았다.


그리고 Just breathe.

지친 나를 도닥여 주고 싶었다. 사실 이 글귀는 인스타 릴스에서 자주 등장해 반해버린 것이라는 고백을 한다.


오늘 나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문장을 새기고 왔다.

All we have is now

과거의 나에 갇혀 살지 않겠다는 마음.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당연한 말을 기억하기로 했다.


더 이상 뒷모습만 그리지 않고 나만의 색으로 가득 채워진 그림을 그리려 한다.

 가면 뒤에 비겁하게 숨지 않고 현재 이 순간의 나를 사랑하며 하루하루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산책하듯 걸을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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