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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Apr 30. 2024

준비가 필요한 이별

그림책 무릎딱지

엄마가 아침에 죽었다.


그림책 무릎 딱지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은 자고 일어난 사이 엄마가 죽고 없어진 아이의 불안한 심리와 엄마를 잊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을 잘 그려냈다. 어린아이기 받아들이는 죽음과 그리움. 그 와중에도 이 꼬마 아이는 등을 돌려 울고 있는 아빠의 등을 토닥거린다.


어제 나는 마당을 뛰어다니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에 상처가 나서 아팠다.

아픈 건 싫었지만 엄마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래서 아파도 좋았다.

나는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손톱 끝으로 긁어서 뜯어냈다.

다시 상처가 생겨서 피가 또 나오게.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오려 했지만 꾹 참았다.

피가 흐르면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 조금은 슬프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많이도 울었다.


어린 나의 기억 속에 아버지란 사람이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중, 고등학교 시절 가정환경 조사서에 아버지가 없다고 적었을 정도다.

아버지는 난폭했고 부도덕했으며, 가장 비참한 건 가족들을 부끄럽게 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다.

어제까지 통화하며 농담을 하던 아버지가.

어른이 된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동정이 생겼었다.

너무 어렸기에,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 몰랐다고…술에 취해 늘 비틀거렸기에 수치심을 알지 못했다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명절에 처음으로 본가에 가지 못했다. 극심한 우울과 수면장애로 몸무게가 한 달 사이 10kg이나 빠졌고 수시로 찾아오는 공황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엄마를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명절이 지나고 3일 후 울면서 전화하는 여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허망하게 나의 아버지는 세상을 등졌다.


슬프지 않을 줄 알았다. 그때까지도 술이 취하면 엄마를 힘들게 하던 아버지였기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실신을 했다.

왜 그랬을까?


아버가 돌아가신 지 13년이 지났다. 기일이 되면 늘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본다.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리면 어김없이 눈물이 흐른다.

“엄마, 이제 그만 울어.” 작은 아이가 친정으로 가는 길에 늘 하는 말이다.


그렇게나 미워하던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운 이유는 뭘까?

우리는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더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림책 속의 아이가 억지로 딱지를 긁어내고 피를 흘리며 엄마 목소리를 그리워하듯 내 마음속의 딱지를 계속 뜯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 내 마음에 상처를 내 가며 아버지를 소환한다.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로 남는다.

상처가 제대로 아물 수 있도록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는 기도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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